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미래에 대한 예고 (눅 21:1-19)

첨부 1


세상 사람들은 내용보다 겉모양을 보고 사람을 평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기관들은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하며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상좌와 잔치의 상석을 좋아했습니다.(20:45-47)
그러나 가난한 과부는 엽전 두 렙돈을 넣었습니다.(21:1-14)
사람들은 아름답고 웅장한 성전 건물을 보고 감탄하지만 예수님은 이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무너뜨리우리라(21:5-19)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겉모양 보다 내면을 보십니다. 그러므로 본문 말씀을 통하여 신앙의 내용을 충실히 하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Ⅰ.과부의 두 렙돈(1-4)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연보 궤에 헌금을 넣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시 성전 안 여인의 뜰 양쪽에는 13개의 헌금함이 놓여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쓰이는 목적이 다 달랐다고 합니다.
그 중에 9개는 ① 제사에 쓰는 나무를 위한 헌금함
② 향단에 피우는 향을 위한 헌금함
③ 성전용 금,은 기명 등의 유지비 헌금함 등등 성전 비용을 위한 것이고 나머지 4개는 빈민을 구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요사이 우리 교회 헌금 종류를 보면 선교 헌금, 장학 헌금, 건축 헌금, 20주년 기념 교회 건립을 위한 헌금 등등이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이런 헌금의 종류가 13가지나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 헌금함은 주둥이가 좁고 아래가 넓어 나팔과 같이 생겼다고 해서 “나팔들”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이 헌금함 사이에 있는 벤취에 앉아 헌금하는 모습들을 지켜보셨습니다. 부자들은 많은 돈을 헌금했습니다.(막12:41) 어떤 이들은 헌금을 많이 한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 13개의 헌금 궤를 모두 돌아다니며 보란 듯이 헌금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과부는 화폐 중에서 가장 적은 단위 두 렙돈을 헌금했습니다. 이렇게 헌금하는 광경을 예수님이 보셨습니다. 한 렙돈은 “빈약한 것”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한 렙돈은 한 데나리온의 1/128입니다.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입니다. 하루 품삯을 100,000원으로 계산하면 두 렙돈은 1,560원입니다. 이 돈은 부자들이 몇 만원씩 헌금하는 것에 비하면 너무나 적은 것입니다.
그래서 심히 부끄러워 누가 볼까 봐 마음을 졸이며 헌금을 했을 것입니다. 마치 요즘 주일날 십 원 짜리 동전 몇 개를 헌금하려면 창피한 것처럼 창피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발 소리가 나지 않으면 좋겠는데 웬 소리는 또 나는지 창피하게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이 과부의 헌금하는 모습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하셨습니다. 또, 마가복음 12:4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들을 다 불러 모아 주위를 환기시키고 칭찬을 하셨습니다. 또, 본문 3절에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라고 하심으로 이 일이 매우 중요한 일임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과부가 가장 많은 헌금을 했다고 칭찬을 했습니다.
이렇게 칭찬하시는 근거를 4절에 보십시오.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있는 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습니다.
이 과부가 드린 헌금은 두 렙돈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 헌금은 그 여자의 생활비 전부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1,560원이란 거액의 돈입니다.

월배 구역에 박 복남 집사님이 계십니다. 이젠 연세가 많아서 집안에서만 움직이시고 바깥 출입을 못하시니까 심방을 가면 누구한테 용돈을 얻었던 것인지 색동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돈으로 감사 헌금을 드리며 눈물을 글썽글썽 하는 것을 심방 갈 때마다 봅니다. 그 돈은 박 집사님에게는 큰 돈입니다. 본문에 이 여인도 쯤 되면 한 렙돈만 헌금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과부는 두 렙돈을 다 헌금했습니다.
어떤 헌물이든지 그 값을 결정하는데는 두 가지 기준이 있습니다.1) 하나는 바치는 자의 정신입니다.
달갑지 않게 내는 헌금, 인색하므로 바치는 헌금, 자기의 위신이나 혹은 자기의 선전을 위하여 바치는 헌금은 그 값을 상실합니다. 참된 헌금이란 견딜 수 없이 흘러 넘치는 사랑의 심정에서 드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드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기 때문에 드리는 것이 진정한 헌금입니다.
2) 둘째는 희생을 내포하고 있는 헌금이어야 합니다.
이 과부는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하나님께 드리고져 하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감사하여 드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구차한 중에서도 생활비 전부를 헌금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헌금 하므로서 엄청난 희생이 따릅니다. 당장에 먹을 쌀이 떨어지고 굶어야 하는 희생이 따릅니다. 당장 나가서 뛰지 않으면 안될 희생이 따릅니다. 하나님은 헌금을 드림으로 얼마만큼 자기의 생활에 희생을 치르느냐 하는 것을 기준으로 평가하십니다.

부자들은 이 과부에 비하면 엄청나게 많은 돈을 헌금함에 넣었지만, 그들의 헌금에는 희생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이 과부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희생이 담겨져 있는 헌금을 기뻐하십니다. 십일조 헌금은 어떤 의미에서 신자들이 의무적으로 드리는 최소한의 헌금입니다. 그런데 사실 십일조를 드리는 것도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우리 교우 가운데 몇몇 분은 선교사를 위해 혹은 농촌 교회 교역자를 위해 십일조만큼의 헌금을 드립니다. 그래서 가정 생활에 많은 희생을 치르고 있습니다. 이분들이 먹고 남는데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허리띠를 졸라매고 쓸데 덜 쓰고, 가고 싶은데도 덜 가고 자기 희생 속에서 드려지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마케도니아 교회들이 극한 가난 중에서도 넘치는 헌금을 드린 것과 같습니다.(고후8:1-5)
제가 신앙하기에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로마에 크리스챤 군인 하나가 있었습니다. 뚜르 지방에서 온 “마틴”이라고 하는 이 군인은 참으로 충성스러웠고 열심히 군복무 했던 선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추운 겨울 그는 거리를 지나다가 추위에 떨고 있는 거지를 보았습니다. 거지가 손을 내밀면서 “군인 아저씨, 나 돈 한 푼만 주세요” 하자 마틴은 주머니를 뒤져보았으나 돈이 한 푼도 없었습니다. 벌벌 떨고 있는 거지를 그냥 지나갈 수 없어서 그는 자신이 입고 있는 낡고 헤진 군복 외투를 벗어 반쪽으로 찢었습니다. 그리고는 그것을 둘둘 말아 떨고 있는 거지에게 감아 주었습니다. “미안하오, 내가 가진 것이 없어서 이렇게 옷을 찢어 줄 수밖에는 다른 길이 없소” 하고 돌아 왔습니다. 그날 밤, 마틴은 꿈을 꾸었습니다. 하늘 문이 열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그 군복 반쪽을 입고 서 계셨습니다. 천사 하나가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어찌하여 그 거지 같은 군복을 입고 계십니까” 그러자 주님이 이렇게 대답을 하셨습니다. “이것은 나의 종 마틴이 나에게 준 가장 값진 희생이 담긴 선물이다”
희생이 담긴 헌금, 바치는 자의 정신이 중요합니다.

Ⅱ.미래에 대한 예고(5-19)

마가복음 13:1절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가로되 선생님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나이까”
그 성전의 미석(美石)과 헌물로 꾸민 것을 보고 감탄하며 말했습니다.(5)
이 성전은 헤롯 대왕이 B.C19년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지은 것으로서 예수님 당시에도 완공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성전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은 당시 로마 세계에도 널리 알려졌습니다.
유대 랍비들은 “이 성전을 보지 못한 사람은 그의 일생에서 훌륭한 건축물을 전혀 보지 못한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실재로 이 성전은 아름답고 화려한 대리석으로 지어졌습니다. 성전 주위 회랑의 기둥까지도 모두 대리석 기둥으로 길이가 10m 되었다고 합니다.
지붕은 황금으로 씌우고, 성전의 전면은 동향인데 금으로 입혀 놓았습니다. 그래서 해가 뜰 때는 햇빛이 반사하여 눈을 뜰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멀리서 보면 꼭 흰 눈이 덮인 산과 같았다고 합니다. 또, 헌물도 굉장하였습니다. 헌물이란 기념품을 가리키는데 특히 헤롯 대왕이 기증한 순금으로 만든 포도나무가 가장 유명했다고 합니다. 이 포도나무에 달린 포도송이의 크기가 사람의 키만큼 되었다고 하니 얼마나 엄청난 허물인가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이런 성전을 보며 그 웅장함과 아름다움 그리고 기념품들을 보며 감탄을 연발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6절을 보십시오.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언제 이런 일이 있겠으며 이런 일이 이루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하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예루살렘 성전 멸망과 그 징조들에 대해 말씀하시며 말세의 징조와 인자의 재림에 대해서 예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예언대로 예루살렘은 주후 70년 로마 장군 디투스에 의해 철저히 멸망했습니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110만 명이 죽고 9만 7천 명이 포로로 잡혀갔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은 돌 놓고 보석 놓고 다시 돌 놓고 보석 놓고 벽을 쌓았다는 소문이 로마 병사들에게까지 퍼져서 그 보석을 찾느라 돌 하나 하나를 헤치는 바람에 예루살렘 성전은 돌 하나 돌 위에 남지 않고 완전히 훼파 되었습니다.
인간의 수고와 노력은 그것이 아무리 아름답고 위대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용납과 보호하심이 없으면 일장춘몽이요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입니다.(사127:1) 부자가 아무리 헌금을 많이 내고 대 헤롯이 아무리 성전을 화려하게 잘 지어도 거기에 신앙의 소재를 닮고 있지 않으면 완전히 무너질 것을 말씀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예루살렘의 참혹한 훼파와 파멸이 장차 세상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그림자이겠습니다. 다시 말씀 드려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내다보시며 장차 올 재림의 대를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면 그날에 어떤 징조가 일어납니까
첫째, 8절을 보십시오.
심판의 날이 가까이 오면 많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로다>하며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이들은 <때가 가까웠다>고 하며 심판을 강조하며 공포심을 심고 자기들을 믿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을 합니다.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이단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예수님의 말씀 곧 성경 말씀보다 그들의 교주의 말을 더 믿고 따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이단들은 성경 외에 그들이 만든 성경책이 또 있습니다.
통일교에서는 교주가 만든 <원리 강론>이란 책이 있습니다.
몰몬교에서는 <몰몬경>이 있습니다. 이들은 몰몬경을 성경보다 더 믿고 아예 성경은 보조 자료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습니다.
안식교에서는 <화이트 지이>라는 선지자의 말을 예수님의 말씀보다 더 믿고 의지합니다.
또, 구원파라든가 다미선교회, 영생교, 대성 교회 등 이단들이 많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자들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들이 무슨 말을 하든지 쫓아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들에게 미혹을 받지 않으려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둘째, 전쟁이 있을 것이라 했습니다.(9,10)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이 오면 난리와 난리의 소문이 일고,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다고 했습니다. 원래 전쟁이란 이기심에서 출발한다고 합니다.
파스칼은 그의 명상록에서 전쟁의 원인에 대해서 재미있는 비유를 들고 있습니다.
추운 겨울날, 거지가 양지 바른 곳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거지가 와서 그 앞에 서서 햇볕을 가리웠습니다. 그래서 먼저 온 거지가 추우니 비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나중에 온 거지가 저 햇볕이 너 혼자만의 것이냐 하며 대들었습니다. 그래서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이것이 좀 확대된 것이 전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세가 되면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쾌락을 사랑한다(딤후3:2)고 했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점점 극도의 이기주의로 치닫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는 돌아서라”<딤후 3:5> 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 이런 일은 있어야 하되 끝은 아니니라 하셨습니다.

셋째, 자연의 질서가 파괴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처처에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을 것이요,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서 큰 징조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주의 질서, 자연의 질서가 점차 파괴되어 이 땅이 점차 황폐하게 될 것을 예고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지구와 우주를 창조하실 때는 완전한 질서와 조화, 완전한 생태계로 창조하셨습니다.
올 해만 해도 일본의 고베 지진, 러시아 사할린 북부에 지진이 일어나서 2,000명이나 사망을 했습니다. 또, 예기치 않은 필리핀 삐나뚜보 화산이 폭발하여 온 시가지가 뜨거운 용암에 덮이기도 했습니다. 소말리아나 에디오피아는 심한 기근으로 기아에 허덕입니다. 이런 일들은 모두 다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임박하였음을 말해 주는 역사적인 징조들입니다.

그러면 이 모든 일이 일어나기 전에 제자들에게는 어떤 일이 있을 것이라 하십니까
제자들은 이 모든 일이 일어나기 전에 예수님의 이름을 인하여 핍박을 받을 것이며 회당과 옥에 넘겨지고 임금들과 관장들 앞에 끌려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이 도리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핍박을 받을 때 도리어 예수님을 증거할 기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4,15절을 보십시오.
“핍박을 받을 때에 어떻게 변명할 것인가 연구치 않기로 결심하라”고 했습니다. 그리하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재와 지혜를 주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또, 제자들에게 심지어 이런 어려움을 당한다고 하셨습니다.
16,17절을 보십시오.
“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너희를 넘겨주어 너희 중에 몇을 죽이게 하겠고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했습니다.
부모 형제 친척 친구들은 우리가 사랑하는 분들이요, 보호해 주고 울타리가 되어야 할 분들입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오히려 제자들을 죽이는데 내어 준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버림을 받고 쫓겨나는 일만큼 괴로운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교회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교회의 안에도 있습니다.
이게 얼마나 가슴 아픈 일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어떻게 보호하십니까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치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택하신 자들을 절대적인 주권과 사랑으로 보호해 주십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