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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은 은사입니다 (고전 12:3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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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안에서 서로를 사랑을 해야 된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도 그 사랑에 대한 압박감으로 자유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발견하지 못하고 오늘도 말못하는 고민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랑을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면서도 자신의 의지로 하려고 애를 쓰는데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데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살 수 밖에 없다고 고백하면서도 항상 자신의 의지로 무엇인가를 하려고 몸부림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성경이 말하고 있는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능력에 대해 이해하고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1. 우리가 사모해야 할 것(고전12:31)
초대교회 중 하나인 고린도교회는 부도덕한 문제와 초자연적인 은사 문제로 심한 분란을 일으켰던 교회였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바울 사도는 심각하면서도 분명하게 신앙인이 사모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진정한 신앙이 무엇인지를 강도있게 목소리 높히고 있는 부분이 바로 오늘 본문인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을 경험하는 방법으로 초자연적인 경험에 많은 의미를 부여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은사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며 예수님과 그 제자들이 기적을 행했다는 사실로 인해 성령께서 오늘날에도 그렇게 역사하실 것이라는 기대심으로 많은 시간을 하나님의 초자연적 간섭을 사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진정으로 우리가 사모해야 할 은사가 무엇인가를 밝히고 있는데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많은 은사들은 사건적인것이라면 그리고 개인적인 것이라면 사랑은 관계적인 것이며 인격적인 것이라는데 그 차이점이 있는 것입니다. 만약 초자연적인 은사를 인정한다면 모든 은사 중 가장 성숙하고 아름다운 은사가 사랑이라는데도 우리는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은사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가져야만 잘못된 신앙으로부터 진리의 가치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얼마전, 지난 19일 판암장로교회에서 어린아이와 할머니를 안수하다가 사망했던 사건이 뉴스를 타고 모든 사람들에게 전달된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서로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믿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 의심없이 안수를 부탁했고 안수자는 믿음으로 안수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너무도 어처구니 없는 일이 생겼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도 드러나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혼란만 가져왔습니다. 도대체 우리는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무엇을 사모하며 살아왔는지 이 시간에 정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진정한 자유와 참된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해 올바로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길들여진 방법으로 사랑을 이해하며 사랑을 합니다. 그래서 항상 사랑에 지치고 사랑에 갈증을 느낍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부정하는 새로운 결단에서 하나님 말씀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본문은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고린도교회의 수 많은 은사에 대한 사건이 있었던 배경을 가지고 사랑에 대한 권면을 하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더 큰 은사는 12장에서 열거하고 있는 많은 은사보다 지금부터 말하고자하는 어떤 것에 대한 강조인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더 큰 은사”에 대해 말하면서 부연하기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 말합니다. 다시말해 이제 말하고자 하는 은사는 우리의 인생에 가장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은사의 정체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2. 사랑이 없다면(고전13:1-3)
바울 사도는 이어서 “사랑이 없다면-”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고 강변합니다. 다시말해 우리가 사모해야 할 은사의 정체는 바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가지 우리가 분명하게 이해해야 할 것은 사랑을 은사로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결코 우리의 의지나 감정으로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못박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그리스도로부터 우리에게 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가져왔던 사랑에 대한 지식을 무효화 시키는 충격적인 가르침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사모하기 보다는 사랑하기 위한 우리의 의지적인 노력을 최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열심히 애썼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의지가 무너지는 순간 우리는 연약함과 부족함이라는 절망속에서 괴로워 하며 자학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내 의지적인 사랑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 대상에 대해 원망도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역시 사랑은 내가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자조적으로 고백해왔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이상을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라는 사실을 믿으면서도 그 사랑을 사모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이기적이고 감정적인 사랑의 방식과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사랑의 차이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랑의 혼돈속에서 방황하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들인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조금 더 읽다보면 그 사랑의 성격이 어떤 것인지 친절하게 바울 사도가 가르쳐 주고 있는 내용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사랑을 알고 경험하고 있는지에 대해 배려하기 보다는 진정한 사랑은 이런 것이라고 말하면서 우리의 사랑의 가치관을 돌아보기 원하는 사도 바울의 음성을 우리는 들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으면서도 우리가 서로에게서 그리스도를 경험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초자연적 사건이 없어서가 아니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는 사람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식 기적으로 병든자가 치유되었다는 소문도 듣습니다. 망한 사업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번창했다는 간증도 듣습니다. 자신의 문제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어떤식으로 해결되었다는 간증을 우리는 별로 어렵지 않게 듣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기적을 들으면서 어떻게 변했으며 어떤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했습니까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의 간섭을 사모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확실하게 경험함으로 자신의 믿음을 견고하기 원하는 그래서 사건적인 기적을 사모하는 그리스도인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그 사랑을 우리가 어떻게 배우며 어떤 댓가를 지불할 것인지를 사모하는 그리스도인은 그렇게 많치 않은 것입니다. 그 십자가에 나의 죄가 어떻게 소멸되었는지를 우리는 일회적인 구속사건으로 넘기고 마는 것입니다. 아무도 그 죄로부터 용서에 이르는 십자가의 피흘림의 사랑을 계속적으로 사모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첫 사랑을 버린 사람들은 예수님을 닮아가야 하는 인격적인 성숙이 짐스러울 것이며 도망하고 싶을 것입니다. 다시 자신의 욕망과 감정으로 살고 싶은 죄의 유혹앞에서 진정한 사랑을 사모하는 열정과 겸손은 점점 더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기독교의 비밀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독교를 사랑에 죵교라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성경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는 기적과 지식은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신앙의 시작이며 열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결코 우리의 사랑으로는 그리스도의 열매, 즉 성령의 열매를 거둘 수 없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나타는 결과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우리 방식의 사랑의 가치관에서 자유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사모함이 나에게 얼마나 강렬한지로부터 진정한 사랑의 시작을 발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하나님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의 신앙으로 변질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신앙의 감격이 점점 어렵게 느껴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변할 것을 기대해서는 안됩니다. 변해야 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몫일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부족한 사람이라면 우리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가치관으로부터 그리고 우리에게 익숙한 감정으로부터 벗어나기 원하는 결단이 생겨날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낯설고 어색하고 이해할 수 없는 신앙의 요구와 권면앞에 자신의 의지를 맡기고 순종하는 삶의 모험을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순간을 믿음으로 사는 삶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누가 얼마나 더 성경적으로 변하느냐 하는 심판자의 자세로 성령의 감동을 제안하는 유혹에 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랑은 그리스도와 나의 문제며 나의 축복인 것입니다. 그리고 변화된 한 사람의 의인만 있더라도 그 사랑은 점점 더 어떤 식으로 번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처음 우리 교회는 모두가 젊고 감성이 풍성한 사람들도 구성되어 작은 긴장에도 힘들어하며 은밀한 비밀속에 오해를 키워가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셀 생활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은밀한 비밀을 적나라하게 노출하고 공개적으로 수모도 뻔뻔함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에 대해서 하나가 되는데 점점 더 익숙해져 왔습니다. 사랑이 가지고 있는 오래참음과 온유, 그 밖에 요구하는 수 많은 도덕성들을 우리가 경험하려면 서로를 정직하게 보여주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거기서 우리는 진정한 형제며 자매의 경험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결혼이 가지고 있는 비밀 중 하나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서로에 대해 모든 것을 공유한다는데 있을 것입니다. 서로에게 좋은 경험을 주는 것도 있을 것이며, 서로에게 어려움을 주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받아들여 성숙한 사람으로 성장해 갈 수 있는 능력은 서로가 하나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부터일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서로 다른 우리를 하나로 연합시켜 주셨습니다. 친히 그 분이 우리의 머리가 되셨으며 우리를 지체로 연결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정체를 교회라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세워진 것이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교회의 아름다움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사모함으로 시작될 것입니다. 이 사랑을 우리 모두가 사모하기를 권면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비밀을 깨닫는 자가 되어 하나님을 풍성하게 누리는 모든 형제 자매가 되기를 권면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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