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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요에 기록된 기적-자비의 기적 (요 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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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장에서 살펴볼 기적은 예수께서 베데스다 연못에서 38년간 병으 로 고생하던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신 사건입니다. 『베데스다』의 뜻은 자비의 집입니다. 이 베데스다 연못은 예루살렘의 양문 곁에 있었습니다. 저는 이 양문(羊門)을 양문(양門)으로 잘못 알고 있던 적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는 양쪽에 문이 두 개 있 는 줄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양의 문(sheep ga te)입니다. 지금은 스데반의 문이라고 부르며 예루살렘 동북 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양의 문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성전에 제물로 드릴 속죄 양들을 이 문을 통해서 들여왔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의 문 안쪽으 로 들어가 보면 바로 옆에 베데스다 못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 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스데반의 문 위쪽에는 지금도 양을 사고 파는 장터가 있습니다.

 자비의 집이라는 뜻의 못에서 주께서 사랑의 기적을 베푸셨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합니다. 이 연못가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자기들 의 죄를 대신해 속죄의 제물로 죽어갈 양들이 그 문을 통과하는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이는 아주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희생을 치러야 할 양들이 그 문을 통과하는 모습은 예 수 그리스도의 구속(救贖)을 상징하였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1:29 ).

 이런 의미 있는 장소에서 예수께서 자비의 기적, 사랑의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이 기적의 주인공은 38년 된 병자였습니다. 3 8년이란 긴 세월을 병마와 싸운 한 사람을 상상해 보십시오. 3 8이란 숫자는 유대인에게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중요한 숫자입니다 . 우리에게 일제(日帝) 36년이란 잊을 수 없는 숫자가 있 는 것과 같습니다.

신명기 2장 14절에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너 기까지 삼십팔 년 동안이라 이때에는 그 시대의 모든 군인들이 여 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진 중에서 다 멸절되었나니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을 떠나 가나안 에 도착하기까지 40년이 걸렸는데, 그들은 가데스 바네아를 중심 으로 해서 광야를 38년이나 방황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사 람에게 38이란 숫자는 광야의 고생스러웠던 기간을 상기시킵니다.

 본문에 나오는 병자는 38년 동안 병을 앓았으니 얼마나 희망이 없는 삶을 살았겠습니까? 우리는 그가 구체적으로 어떤 병을 앓고 있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베데스다 못가에는 병자들이 상당히 많 이 있었습니다.

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 (3절).

아마도 이 사람은 세 가지 병을 모두 앓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 환자인지는 모르지만, 38년 동안 병을 앓 으면서 재산을 탕진하고 괴로움을 당했던 이 병자의 절망적인 세월 은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 사람에게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이 자비의 기적을 관 찰하면서 우리 주님의 자비의 본질, 사랑의 본질이 어떤 것인가 살펴봅시다. 38년 된 병자를 향한 주님의 자비가 세 가지 형태 로 나타났습니다.

 은혜로 선택하심

선택 그 자체가 은혜입니다. 베데스다 못가에는 굉장히 많은 병자 들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그 중에서 특별히 이 사람을 선택하셨 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에게 병 고침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이 세상에는 무수한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주께서 당신을 선택하여 하나님을 알게 하고 예수님을 믿게 하여 구원하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이고 자비입니다. 영어의 mercy라는 단어는 은혜, 사랑과 공통점이 있고 연관성이 있지만 그보다 휠씬 더 깊은 의미를 가진 강렬한 하나님의 사랑의 행동을 내포하 는 단어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자비는 행 동입니다.

 당신이 선택되었다는 것이 다른 사람은 다 버림을 받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선택은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의 출발점입니다. 주님이 당신을 선택하셨다는 것은 당신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나타내시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고 선택하신 것은 아브라함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고 사랑과 자비를 온 우주에 나타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브라함만 선택하고 다른 사람을 다 버린 것이 아닙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 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 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요 15:16).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당신이 먼저 하나님을 알게 되고 그 영광스 러운 구원과 사랑을 체험한 일은 놀라운 은혜입니다. 당신의 공로 로 선택받지 않았습니다.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사랑 덕분에 그분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38년 된 병자를 향한 주님의 자비는 이러 한 선택의 은혜로 시작되었습니다.

 6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 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이 말씀에서 행동의 주체는 예수님입니다. 병자는 고쳐 달라고 애 원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은 완전히 자포자기 상태에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현장에 주님이 먼저 다가가셨습니다. 우리가 간과 해서는 안 될 동사가 있는데, 보시고와 아시고입니다. 예 수께서 그 병자가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고생하고 고통스러워했는 지를 보시고 아셨습니다.

우리 역시 우리의 형편을 미리 아시고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가 아뢰기 전에 주께서 먼저 우리의 아픔과 절망과 슬픔을 보시고 아십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요 15:16)라는 말씀은 구원의 주체는 주님임을 강조합니다.

즉, 예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구 원은 우리를 일방적으로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사건입니다. 예 수께서 먼저 우리를 보시고 아시고 우리 삶의 장(장)에 뛰어드셨 습니다. 38년간 병으로 고생하던 사람을 향한 주님의 자비는 이 런 식으로 나타났습니다.

 소망을 주심

예수께서 병자의 마음에 희망을 심어 주는 것으로 치유를 시작하십 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6절).

병자에게 낫기를 원하느냐고 질문하는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이 사람은 아마도 자신의 병을 고치는 것을 포기하였던가 봅니다. 사 실 38년쯤 병을 앓으면 포기할 만도 합니다. 이 사람에게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희망을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낫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셨을 때, 그 병자는 어쩌면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새로운 희망을 품게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본 문에서 주님의 사랑을 엿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들에 게 희망과 삶의 의욕을 불러일으키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모습을 통해 배워야 합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희망을 싹 틔우는 메시지를 전해야 합니다.

 그 다음으로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8절).

이것은 주께서 내리신 구원의 명령입니다. 사실 이 말씀은 대단히 어이없는 명령입니다. 이 사람은 지금 일어날 수 없는 사람입니 다.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들은 병자는 주님을 무시할 수도 있 었습니다.

예수께서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명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명령 에는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어마어마한 권세가 들어 있었습니다.

 이 병자가 한 일은 무엇입니까? 아무 것도 없습니다. 순종밖에는 없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고 순종하여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38년간 앓던 사람이 자리를 들고 걸었습니다. 패배와 절망의 삶을 박차고 일어나 새로운 내일을 향 해서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값 비싼 대가를 치르심

본문을 묵상하면서 간과하지 않아야 할 사항은 주님이 병자를 치료 하신 시간입니다. 9절에 보면 이 날은 안식일이라고 했습니다 . 안식일에 병을 고치면 율법에 따른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개의치 않으시고 할 일을 하셨습니다. 바리새인과 율 법주의자들의 비난과 정죄와 고발을 감수하면서까지 병자를 고치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사랑은 때때로 핍박과 수고의 짐을 요구합니다. 예수께서는 이 짐 을 거부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바로 사랑의 증거입니 다. 십자가는 저주의 형틀입니다. 예수님 당시 가장 흉악한 범죄 자들이 받는 형벌이 십자가 처형이었습니다. 죄 없으신 주님이 그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심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 사랑의 짐을 지고 지금도 우리를 용서하고 자녀로 받 아들이십니다. 우리가 값없이 구원을 얻도록 하나님의 아들이 생명 을 버리셨습니다. 값 비싼 대가를 치르고 우리에게 영생을 허락하 셨습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 행한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 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8, 9).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 55:1).

놀랍게도 가장 귀한 것이 값없이 주어졌습니다. 어머니의 사랑, 늘 들이마시는 공기도 값없이 주어졌습니다. 가장 위대한 것은 하 나님께서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 은혜는 예수께서 피 흘리는 값 비싼 대가를 지불한 결과입니다.

당신은 이 짤막한 치유의 기적에서도 십자가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과 생명을 내놓으신 주님의 값 비싼 희생을 담보로 38년 된 병자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분은 지금도 그렇게 역사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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