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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약속의 땅 (신 3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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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저 언덕 너머에 있는 새해를 바라보며 지나간 일년을 회고하는 산언덕에 머물러 있다. 새해가 되면 .... 하고 기다리던 것이 엊 그제 같은데우리는 이 연말이라는 언덕에서 똑 같은 생각을 되풀이하고 있다.

본문에 나타난 기록은 이스라엘의 영도자 모세에 관한 기록이다. 아름다운복지를 바라보며 멀고 먼 땅을 향하여 신뢰와 순종과 인내로 저 장엄한 출애급역사를 장식하였던 인간 모세가 정들었던 광야 교회의 자기 백성들을 향하여 유서깊은 고별사와 축도를 마치던 순간의 기록이다.
모세는 영광스러운 백발을 모압 평지의 바람에 날리며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대망하던 가나안을 바라볼 수 있는 느보산 산정에 올라 간 것이다. 모세는거기에서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그의 후손들에게 약속되어 진 약속의 땅을바라 보게 된 것이다. 이 땅은 모세에게 있어서 오래동안 그리워하고 사모하던대망의 복지였다. 이것은 모세에게 있어서 사실상 광야교회의 마지막결선지점이기도 한 것이다.
모세는 지금 눈 앞에 전개 된 가나안의 전경 앞에서 크게 감격의 기쁨을 맛보고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모세는 잠시 후에 있을 너무나도 심한 비극의 장면을생각하며 괴로워하고 있었던지도 모른다.

여러분은 그것이 무엇 때문인지 알 것이다.
본문에서 말 한대로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들어가지못하리라." 는 엄숙한 하나님의 선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이대망하던 약속의 땅을 바로 눈 앞에 두고 숨져 간 그의 죽음에서 몇가지 사실을생각하여 보고자 한다.

I. 종된 자의 마지막 순간

종은 히브리 말로 에벧이라고 하는데1) 노예적인 관계의 종
2) 삯군으로서의 종이 있다.
본문은 전자를 뜻한다. 광야 교회의 지도자 모세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영예로운죽음을 만난 자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A.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께서 그의 생애를 얼마나 유용하게 사용하셨는가를 보여 준다.

모세는 한 평생을 하나님의 종으로 분주하게 살았다. 그는 주인에게 매인소처럼 하나님이 서라고 하는 곳에서 섰고,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일을 즐겨하였다. 하나님께서 가라고하는 곳에 가고 하나님이 행하라 하는 일에만 부지런히움직인 종이었다.

B. 하나님의 종은 그의 인내와 충성심을 보여 주는 이름이다.

일하는 종에게 수반되는 필수 요건은 충성이다.
모세 그는 인간이었다. 때문에 실수가 있었다. 혈기를 참지 못하여 백성들앞에서 흥분을 나타낸 때도 있었다. 그러나 모세를 생각할 때마다 우리의 심금을강하게 움직이고 그에게 점수를 후히 주게 하는 것은 그의 충성심이다.

C. 하나님의 종이란 역시 섬기는 자의 삶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모세는 하나님을 섬기는 종이었다.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을 섬기는 종이었다. 모세의 한 평생은 이렇게 종으로시작하였다가 종의 신분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에덴의 어느 한 귀퉁이에서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다가 쓰러진 아벨이나 300 년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며 충성되게움직이던 에녹이 역시 그러한 사람이었다.
예루살렘 성문 밖에서 돌에 맞아 죽어 간 스데반의 피가 그 당시 사람들의 눈에는한 푼의 가치조차 평가 받지 못한 무의미한 것이었는지 모르나 의를 위하여 죽은그의 피는 오늘 이 땅 위의 교회에 거룩한 씨가 되어 환란 중에 살고 있는 모든성도들에게 감격을 주는 신앙의 푯대요 믿음의 금자탑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다 종으로서의 충성됨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모세는 가나안을 눈 앞에 두고 보기만 하고 죽었다. 그러나 그는 영예로운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의 일만 하다가 하나님 앞에 간 자랑스러운 종인 것이다.

II. 말씀대로 산 자의 마지막 순간

모세는 물에서 건져 내다는 뜻이다.
모세는 그의 이름 그대로 개척자의 생을 가진 이름이다. 그의 인생의 시작이물에서 건져낸 것이기도 하지만 비단 자신만이 아니라 자신과 동족을 바로왕의무서운 폭정의 강물 속에서 건져내기도 한 인물인 것이다. 이러한 일을하기까지에는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들이 있었던가

동족들의 불신앙, 불이행, 배신과 원망, 바로왕의 세력, 그리고 광야에서의 수많은 시련들이 그의 후반기 생을 맹렬하게 위협하였다. 모세는 가는 곳마다백성들에게 새롭게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하여 이해를 시켜야 하였고 설득을 해야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일이 반복 될 때마다 하나님 앞에 엎드리기를 얼마나하였던지 ......

천막을 치고 헐고, 치고 또 뜯고 .... 홍해를 만났을 때에는 진통을 겪어야하였다. 양식을 달라고 부르짖고, 애급의 고기를 먹고 싶다고 요구하는 백성들에게그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떡과 고기를 구하였다. 아마 그때 하나님께서 만나와메추라기를 허락하여 주시지 않았더라면 어디에서 몰매맞아 죽었을런지 모른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히브리민족이 모여있는 그곳은 살벌한 광야교회라고 말할 수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역사의 상황 앞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엎드렸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세에게 언제나 큰 힘을 주는 것이었다. 어려운난관에 부딛힐 때마다 무릎을 꿇은 모세에게 하나님은 언제나 가까이 계셔서 친히대면하여 주시고 말씀하여 주셨다.
모세를 힘 있게 한 것은 자신에게 나타나셔서 들려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이 위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그를 광야에서 붙들어 주었고 그의 백성들을 붙들어주었다. 무서운 바로 앞에 서게 한 것도 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애급의장자에게 사망의 재앙이 엄습하여 올 때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움 없이 지낼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바른 때문이다. 이것이 유명한 유월절 이야기이다.
모세는 백성들과 함께 천막을 옮길 때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인도하며 지시하는대로 움직였다. 하나님이 천막 칠 곳을 지시하는대로 따라 움직였던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에 운명을 건 사람이다.
광야교회의 운명 역시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것이다.
이렇게 그는 말씀 앞에서 출발하였고 말씀대로 진행하여 마침내 그의 최후의 생을조용히 정리하였다. 그는 한 평생을 이렇게 여호와의 말씀대로 살다가 말씀대로죽었다.

III. 약속의 땅으로 인도한 것은 모세가 아니다. 그것은 진리이다.

모세는 40 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백성들을 돌아 볼 마음이 생겨서 어느 날 애급 사람을 죽이고 광야로도망하였다가 거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후에 영적인 준비를 계속하여 온 후에80이 다 되어 백성들을 거느리고 광야에서 또 다시 40년을 지냈으니 이제 그의 나이120 이 다 되었다.
이제 죽음의 문턱에 선 모세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의 전도는 끝이 난 것으로생각이 된다만 하나님의 일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 인간 모세는 죽어도 하나님의일은 죽지 않고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 후의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비록그들의 앞에는 가나안의 7 족속이 있고 뒤에는 바로왕의 후손들이 험상 궂은 얼굴로원한의 복수의 칼을 갈고 있지만 하나님의 일이 전적으로 모세에게 걸려 있는것만은 아니다. 이제 모세는 죽어도 하나님의 진리가 죽을 수가 없는 것이다.
진리가 모세로 부터 온 것인가 아니다. 모세가 진리 자체도 아닐 뿐 더러진리가 모세에게서 나온 것도 아니다. 진리를 모세가 이끌고 온 것도 아니다.
다만 진리 그 자체가 모세를 붙잡고 40 년동안의 광야교회의 역사를 이끌어 온것이다.

출애급의 시작이 모세로 부터인가
아니다. 출애급 역사의 원인자, 발주자, 시행자는 진리 그 자체, 하나님 그자체이다. 다만 진리 그 분이 모세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이다. 진리 그 분이운동하고 샅은대로 모세를 이끌고 온 것 뿐이다. 그러므로 모세를 이끌고광야교회의 역사를 이끌어 오신 분 진리이신 하나님이 또 다른 사람을 이끌어서가나안을 향한 남은 여정을 행진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계시다는 것을우리는 믿어야 한다.
모세는 늙어 죽어도 진리가 늙거나 죽는 법은 없다.
모세는 장사되었으나 진리가 사라지거나 장사되는 일은 없다. 이렇게 진리는영원히 살아있고 영속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위대한 말씀 그 자체의 세력앞에 붙들려야만 하는 것이다.
모세 그는 실로 광야교회의 소리였다.
그러나 그 소리는 자기 소리가 아닌 여호와의 소리 즉 진리의 소리였다.
그러므로 모세는 떠난지 오래이나 오늘도 그는 수 많은 백성을 향하여 설교하고있다. 이 위대한 영도자가 쓰러진 느보산상에는 위대한 영도자가 나오게 되었다.즉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여 후계자를 삼은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진리운동의 영속성을 보여 주는 것이다. 다만 백성은 쉴새 없이 진리를 붙들고 남은행진을 계속할 따름이다.

IV. 나의 종말이 주는 새로운 의미

인간 모세는 이 세상에 더이상 머무르지 않고 떠나가 버렸다.
그는 육체의 법을 따라 말하자면 한줌의 흙으로 돌아 간 버린 것이다. 그를따르던 많은 백성들은 크게 슬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나안 입구에서 희망의노래를 불러야 할 백성들이 모세의 죽음으로 인하여 크게 애곡을 하는 모습은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그것은 큰 비극이다. 그러나 그것은 퍽이나 자연스러운일이다. 실로 모세는 그들과 희로애락을 같이 하던 위대한 영도자였다. 그들이철없이 불신앙으로 졸라댈 때에 모세는 저들에게 아버지 역할을 한 것이었다.
그 지도자 모세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 법치국가의 생활을 조직하고 또 시작할 수있었다.그리고 그들의 지도자 모세로 인하여 광야교회의 생활이 안전을 보장 받을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모세가 살았을 때에 자주자주 불순종하고 무시하고반역하던 사람들이었다.
이제 모세가 죽으니 백성들은 그렇게도 거역하던 옛 사실들이 생각났음인가새삼스럽게 주의 종으로서의 그의 위대한 인내와 능력을 인식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그 백성들은 30 일을 밤 낮으로 울었다. 성경은 백성들이 모세를 위하여애곡하였더라 고 전하고 있다. 지난 날의 괴롭고 시련 받던 광야교회의 행진들이주마등처럼 떠 올랐던가 그들은 30 일동안 애곡하고 또 애곡하였던 것이다.

이제 모세는 가 버렸다.
그는 여호와의 종으로서 죽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죽었다. 그리고거룩한 진리의운동을 계승하고 죽었다. 그후에 모세는 백성들의 경건한 애도를받았다. 그러나 역사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울고만 있게 하지는 않았다. 그들은흘러 내리는 눈물을 닦고 다시 남은 광야 행진을 계속하도록 재촉 받았다. 우리는이 모세의 죽음 앞에서 엄숙히 내 생의 태도를 재 인식하여야 한다. 남은 생애를여호와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야만 한다. 오고 오는 자손들에게 거룩한 진리를계승하고 죽어야 한다. 그리고 뜨거운 애도를 받는 보람있는 생을 보내야 한다.
그리고 그 계승에 박차를 가하는 마지막 순간을 가져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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