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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를 바라보는 자들 (시 16:1-11)

첨부 1


다윗은 하나님의 보호를 기원하는 간구로서 본 시편을 시작합니다. 다윗은 그의 전생에 동안 많은 시련과 환난을 겪으면서 하나님의 보호를 필요로 했고 또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항상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우편에 계신 수호자로 삼아 영영히 요동치 않으리라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그의 시는 언제든지 생동감이 넘치고 현장감이 풍부합니다. 그의 시가 우리에게 무한한 감동을 주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상 국내외적으로 가장 강력한 왕권을 수립한 자로서 메시아 왕권을 상징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메시아를 상징하는 인물만은 아니였습니다. 그는 예언자의 기능이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알았던 자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일천여 년 전에 사역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으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본 시편을 노래했습니다.

베드로전서1:3-9
3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5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함이라
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본문은 수신자에 대한 인사말에 이어 하나님께 대한 찬미가 나타납니다.
바울의 서신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찬미가 나타나는데 본서의 경우는 저자가 순교를 앞두고 수신자들도 박해에 직면해 이었다는 데에서 이 찬송의 뜻이 더욱 깊다. 이것은 역경중의 찬송입니다. 이 찬미의 내용은 먼저 그리스도를 통해 거듭난 것, 그러므로 썩지 않는 산 소망을 가지게 된 것, 이 구원이 장차 완성될 때까지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있는 것 등을 담고 있습니다.
찬송의 대상은 성부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성자의 아버지요 또한 하나님 이십니다. 신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성자로 말미암고 그를 믿음으로 양자가 되어 아버지를 부르는 것입니다. 또한 성부가 성자의 하나님이시란 것은 그의 창조란 뜻이 아니며 동일한 하나님으로서의 입장에서 부르는 것입니다. 이 찬송의 대상인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은 그 아들을 통해 세례를 받음으로 죽음에서 같이 죽고 그의 부활에서 같이 살게 하셨습니다. 이 것이 산 소망이며 이 소망은 썩지 않고 쇠하지 않은 기업으로 장차 주실 영원한 빛나는 하늘의 소망입니다. 이와 같이 성도의 소망은 미래적이며 천국적이란 것이 신약의 기본사상입니다.

요한복음20:19-31
제자들은 새벽 예수님의 무덤 사건과 여인들의 보고, 그리고 엠마오로 가다가 돌아온 두 제자들의 보고 등으로 회의와 유대인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그 가운데 나타나신 것입니다. 공간의 제한니 없이 문이 닫힌 방 안으로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누가도 이 때의 상황을 묘사하면서 주님의 몸은 하나의 환영의(헛기운,환상) 상상이 아니라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느낄 수 있는 참된 실재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바울이 말한 ‘신령한 몸’의 표본이 예수님을 통해 보여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제자들 중 도마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습니다. 도마가 왜 다른 제자들과 함께 있지 아니했는지 분명히는 알 수는 없으나 아마도 그는 무서움으로 혼자 도피해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망이 무너지자 도마는 제자들과 어울릴 마음이 없었을 것이고 주님의 대한 모든 것은 불신앙으로 기울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도마는 불신앙의 위험 속에 처해 있었으나 의심이 심했던 도마의 신앙고백은 참으로 획기적인 일이었습니다. 이 신앙고백은 예수님이 바로 메시아임을 믿음이요, 또 이 고백은 고백을 통하여 궁극적으로 영생을 얻게 되는 고백이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요한복음이 기록되어진 목적이 되기도 합니다.

1.그리스도를 바라본 자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었습니다.
당시의 왕은 모든 백성의 생사 여탈 권을 지닌 자로서 막강한 부와 권력과 명예를 한 몸에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러한 외형적인 조건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을 그의 온전한 기쁨으로 삼았습니다.
세상의 재물이나 권세나 명에가 우리에게 기쁨을 줄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한 조건들은 상대적이며 만족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것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심한 회의와 고독만을 느낄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 인하여 오는 기쁨은 어떤가 하면,
그 기쁨은 우리의 말초 (사물의 끝 부분, 나뭇가지의 끝 부분)신경을 자극하는 일시적인 기쁨이 아닙니다.
그것은 영혼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실된 기쁨을 가져다 줍니다. 그러니 만큼 그 기쁨엔 회의도 없으며 허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기쁨을 참된 기쁨이라고 합니다. 이 기쁨은 바로 자기가 바라보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영광과 앞으로 누릴 지속적인 생명을 인하여 누릴 기쁨이요 즐거움입니다.
오늘 성도들은 비록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이는 영광은 없을지라도 이러한 영광을 가질 수 있고 이러한 영광으로 인한 놀라운 기쁨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 그를 바라보는 자마다 결코 이러한 확신과 기쁨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일생을 이러한 확신과 기쁨 속에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2.부활의 예수님을 만난 자들
예수님께서는 비록 실의와 좌절에 빠져 있는 자들 이라 하더라도 예수님을 바라보며 소망을 갖고 있었던 자들에게 친히 부활의 몸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들을 만나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스승처럼 처형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면서 뿔뿔이 흩어진 제자들을 만나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평강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평강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고난당하실 때 그들은 무정하게 예수님을 버렸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찾아와 평강의 말씀으로 그들을 위로하셨습니다.
그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부활을 믿지 않음을 보시고 그들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고 그들에게 부활의 증거를 보이셨습니다.(손과,옆구리에 남아 있는 못자국과 창자국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을 안심시키셨습니다.)
제자들조차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기를 주저 했다는 사실이 그만큼 그 부활의 위대성을 반증해 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스승의 부활로 말미암아 그들 역시 부활에 참예할 수 있음을 알고 더욱더 감격했을 것입니다.

3.예수님을 만난 자들의 사명은
예수님께서는 부활체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부활을 증명하시고 그들에게 귀한 전도의 사명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사역은 끝나고 제자들에게 복음사역을 위임하십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행한 모든 사역의 증인들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복음을 온 세계에 전할 사명이 그들에게 부여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복음을 전파하도록 파송된다는 것은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부활의 복음, 구원의 복음을 온 세계에 선포해야 합니다. 복음의 선포는 인간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성령을 부여받을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복음 전도자들이 성령으로 무장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노력은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는 헛된 것이 되고 맙니다.
즉 성령을 부여받는다는 것은 복음 사역자가 되는 데 필수적입니다.

소망의 하나님, 부활의 증거자로서 사명을 가지고 나아가도록 저희들을 인도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귀한 사명을 망각하지 않는 한 좌절과 고통은 우리에게서 떠나게 되며 극복될 수 있을 것임을 믿습니다. 주여, 믿음 더욱 주시옵소서.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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