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요나의 표적 (눅 11:29-32)

첨부 1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한 벙어리 귀신을 쫓아내시고 그 벙어리가 말을 하게 되자 옆에서 보고 있던 무리들이 예수님께 두가지의 질문중 두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14절에서 예수님께서 벙어리 귀신들린자를 치료해주자 15절에서 몇몇사람이 예수님의 벙어리의 치료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쫓아낸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17절부터 28절까지 15절의 의혹에 대한 답변으로서 지금까지의 역사는 예수님을 중심으로한 빛과 사랑의 나라와 사탄을 중심으로 한 어두움과 사망의 나라의 대결로서 모든 사람은 이 둘중에 어느 한편에 속하기 때문에 예수님 자신이 귀신을 내어 쫓은것은 귀신의 왕의 힘을 빌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답변하여 주십니다. 즉 절대로 같은 편끼리는 싸울 수 없으며 원수끼리만이 싸울 수 있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두번째 의혹인 16절에서 예수님이 하늘에 속한자라면 그에 합당한 표적을 보여야 된다는 그들의 요구에 예수님께서 거기에 대한 두번째 답변으로서 오늘 우리가 읽은 29절부터 30절까지의 내용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즉 첫번째 비난에 대한 답변을 마치시고 두번째 표적에 대한 요구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요나의 표적을 예로들어 답변하시고 게신것입니다. 주님앞에 나오기는 나왔으나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나 베푸신 구원의 행동을 열린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일일이 의심하며 꼬투리를 잡고 있는 악한세대에게는 주님께서 다른 표적을 보일 수 없고 오직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요나의 표적은 무엇인가 그것을 주제로하여 말씀을 나누겠읍니다. 첫째로 요나의 표적이란 요나가 그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에 의하여 죽었다가 살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나를 부르셔서 니느웨성을 구원시키시고자 했던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요나는 하나님께서 가라고 명령한 니느웨와는 정반대인 다시스로 도망을 가고자 배를 타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은 죄의 심판으로 죽을 고비를 맞게하여 큰 물고기의 뱃속에다 집어 넣으십니다.

물론 당시에 요나의 형편으로는 니느웨에다 하나님께서 그 성을 심판하실 것이니 회개하라는 구원의 말씀을 선포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읍니다. 왜냐하면 당시에 니느웨는 세계에서 가장 강대한 나라인 앗수르의 수도일 뿐만 아니라 또한 앗수르가 도처에서 저지른 잔혹한 짓이나 앞으로 요나가 살고있는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킬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적대국의 나라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요나에게는 순종할 만큼 기쁜일은 아니었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니느웨성을 심판하시기 전에 그들을 돌이키도록 하시고자 하는 배려를 요나는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물고기의 뱃속에서 죽음을 맛보도록 하면서 심판의 결과로 오는 죽음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가를 알게함으로써 회개하여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선포하도록 합니다.

그러므로 요나는 하나님의 진노안에서 맛본 죽음을 통한 고난과 고통을 당하므로써 자신의죄에 대하여 속죄함 받았을 뿐만 아니라,요나가 겪은 죽음의 고통을 통하여 니느웨 사람들에게 올 심판이 면하여 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나의 불순종을 심판하시며 감당하게 하므로써 니느웨가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처럼 죄도 없으시고 만왕의 왕이 되신 예수님께서 요나와 같은 비참한 처지를 당하셨을때 그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말씀하고 계신것입니다.

죄인인 요나 선지자가 겪은 고통으로서 하나님의 진노를 무마시키고 죄의성 니느웨를 깨끗게 할수있었다면, 만물의 왕이되신 그분께서 겪은 죽음으로서 하나님앞에 온전히 드려진 그 결과는 어느 정도가 되겠는가를 말씀하고 계신것입니다. 요나가 밤낮 사흘을 물고기의 뱃속에서 있으므로서 니느웨는 하나님의 심판을 모면했던것처럼 예수님께서 사흘 밤낮을 땅속에 계심으로 인하여 악한 세대들에게 내릴 심판은 멈춰질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둘째로 요나의 표적이 갖는 의미는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자신이 죄로 말미암아 겪었던 하나님의 심판을 요나가 니느웨사람들에게 직접 증거하므로써 그들이 회개하였다는 것입니다. 조그마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선지자가 외친 하나님의 말씀에 니느웨 사람들은 모두 회개하였다것으로서 눈에 보일 만한 이적이나 구원에 대한 특별한 치료의 능력이 없이도 하나님의 심판이 니느웨에 임한다는 말씀에 니느웨 사람들은 모두 회개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지자중의 선지자요 만왕의 왕 되신 예수께서 지금 모든 이적과 말씀들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여서 그 나라에 들어온 자들만 구원이 주어질 것을 보여주시고 있는데 이 악한 세대들은 아무 반응이 없다는 것입니다. 요나 보다 크신이가 지금 직접 오셔서 그들을 회개하도록 하기 위하여 보이실만한 모든 증거는 다 보이시고 있는데 그들은 전혀 반응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나는 40일 이라는 시간의 여유를 두고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했는데도 니느웨 사람들은 즉시 모두 회개하였는데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거부하는 자에게 임할 임박한심판을 선포하여도 전혀 반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은혜베품을 조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나가 실제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았다는 증거로서 마치 죽은자가 부활한 것처럼 큰 물고기의 뱃속에서 기적처럼 구출된 후에 하나님의 심판과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할때 니느웨는 모두 회개하여 하나님의 임박한 진노를 피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반면에 그들을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시어 다시 살아나실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앞에 이 악한 세대들은 회개하지 않고 돌이키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요나의 외침에 니느웨 사람들은 어린아이에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아니 집에서 기르는 모든 가축까지도 먹을 것을 끊고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였는데 이 악한 세대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될 것이라는 예수님의 선포에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세번째로 요나의 표적의 의미는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므로 살았던 것처럼, 이 악한세대도 회개하면 산다는 것입니다. 옛날 니느웨 사람들이 요나의 외침에 왕은 겸손히 그의 권좌에 내려와 재위에 앉았고 교만하였던 그 모든 백성들은 요나의 선포와 요나가 당했던 심판과 구원의 체험을 증거하였을때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며 자신들이 죄인임을 고백하므로써 한영혼도 멸망당하지 않았던 것처럼 병든자가 낫고 벙어리가 입을 열고 귀먹은 자가 들으며 문둥병자가 치료되는 표적 앞에서 하나님의 구원이 선포되어지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아오는 자에게는 니느웨 사람들에게 내려졌던 동일한 은혜가 내려질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요나의 표적으로 말씀하신 것은 요나가 자신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에 의하여 죽었다가 살았다는 것과 요나의 지도로 니느웨 사람들은 회개하였다는 것이며 그러므로 말미암아 회개하므로써 하나님의 심판을 모두 면하였다는 것을 말하여 주십니다. 그러면서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심판이 마지막때가 왔을때 지금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거부했던 사람들에게 남방의 여왕과 니느웨 사람들이 이악한 세대들을 고발하게 될 것을 말하여 줍니다.

왜 그들이 고발자가 되고 징치하는 자가 되는가 그것은 요나와 같은 선지자의 외침과 적은 표적에도 니느웨 사람들은 모두 회개했는데 하물며 요나보다 크신이가 선포를 하고 있음에도 회개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요나가 자신이 체험했던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를 증거하였어도 그들은 모두 회개하였는데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각 도처에서 많은 이들에게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표적들이 보여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방의 여왕 또한 이악한 세대를 정죄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비록 솔로몬이 지혜의 왕이라 할지라도 지혜 그 자체이신 예수님보다는 적은자인 솔로몬 앞에 그 지혜를 듣기 위하여 그 먼곳에서부터 그것도 예물을 들고 찾아 왔는데, 지혜자 되시며 솔로몬보다 크신이가 지혜를 말하고 계시는데 들으려 하지도 않고 손수찾아오셔서 가르쳐 주고 있는데도 전혀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요나의 시대에 예수께서 직접 선포하시고 많은 이적과 표적들을 보이셨다면 니느웨 사람들은 다시는 범죄하지 않았을 것이고 솔로몬 시대에 예수께서 직접 지혜를 가르치셨다면 남방의 왕은 계속적인 가르침을 받기 위하여 아예 예수님 앞에서 떠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역사 이래로 큰 표적을 보인적이 없으며 큰 지혜를 나타낸 적이 없건만 이 세대들은 전혀 반응하지 않음으로 그에 대한 결과는 비참한 심판일 수 밖에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읍니다. 이처럼 좋은 기회를 놓치고 소홀히하여 오히려 그것을 악용하려는 그들을 예수님께서 용서하여 주고 싶을 지라도 니느웨 사람들과 남방 여왕은 고발할 것이며 그로 말미암아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을 말하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마지막으로 니느웨 사람과 남방여왕이 마지막때에 정죄할 것이라는 말씀속에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읍니다. 즉 예수님께서 다시오실 그 심판의 때에는 모든 세대의 사람들이 한곳에 모인다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는자나 그렇지 못한자, 또 우리와 같은 세대의 사람이나 그 이전의 사람들 또한 미래의 시대의 모든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것입니다. 그때 과연 우리는 다른 시대에 믿었던 사람들로부터 정죄를 받는 위치에 있을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위치에 있을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나의 부모 형제, 나의 직장동료, 나의 친구들, 이웃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 또한 한곳에서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때 과연 우리가 전하지 않은 것때문에 비참하게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야 할 사람들을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아니 그들이 원망 어린 눈초리로 우리를 쳐다보며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에 못이겨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는 것을 정죄할지도 모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읍니다.
우리는 이미 요나보다도 솔로몬보다도 더 크신 이로부터 더 큰 표적과 확실한 말씀의 증거로써 하나님 앞에 나왔읍니다. 그리고 우리의 잘못을 회개하고 하나님으로 부터 용서함을 받았읍니다. 그러나 우리의 주위에는 아직도 그 표적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있읍니다. 그들은 우리가 언젠가는 다시 만나야 될 사람들입니다. 특별히 하나님 앞에서 그들을 만나게 될때 우리의 얼굴이 뜨겁지않고 하나님께서 민망 스럽지 않으시도록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복음의 사명을 잘 감당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