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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욥의 고난과 하나님의 승리 (욥 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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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은 왜 고난의 시험을 허용하시는가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욥 1:1)사람이었는 데 인간 역사상 촤악의 고난을 받았습니다. 자기는 죄가 없다 하더라도 남의 죄나 자식들의 죄로 인해 고난을 당한 예도 많습니다. 그러나 욥은 그것도 아닌데, 오 히려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잘 섬기기 때문에 시련을 주셨다고 성경은 말합 니다. 우리의 지혜로는 이해가 안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사랑하는 자녀에게는 시련을 주시고 만약 징계가 없으면 사생아요, 참아들이 아니라고 말씀 합니다(히 12:8). 그리스도인들이 당하는 시련은 죄의 댓가로 벌을 받보다는 하나님의 바라시는 수준에 도달시키기 위한 도구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녀들을 사랑하시기 때무에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려고 하십니다 . 그런데 너무나 철부지여서 그것을 맡길 수가 없습니다. 마치 철부지 아들이 재 벌이신 아버지의 그 많은 재산과 특권을 알지 못하고 백원 짜리나 천원짜리로 만 족하고 과자나 장난감을 요구하는 것과 같습니다.이 자녀에게 단돈 만원이 무슨 필요가 있고 재산등기나 몇 천마원의 예금통장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아버지는 이 자녀가 아버지의 유사을 관리할 특권을 누릴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될 때까지는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만약 그 아들이 아버지의 원하는 수준 에 이르지 못할 때 여러가지 방법으로 교육시키을 시켜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들이 아버지의 큰 재산을 관리하고 그 많은 사 원들을 지도할 능력이 없을 때에는 그가 아들이라도 도리어 다른 사람에게관리 책임을 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 대해 계획을 가지시고 무궁한 하늘나라를주시 려고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너무 어려서 그 가치도 모르고 그것을 누리지 못하 고 비참하게 살고 위해서 우리를 훈련시키신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아들을 하인에게 밑겨놓고 먼 나라에 가서 돈을 많이 벌어가 지고 귀인이 되어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은 하인과 간이 살면서 하인의 종노릇을 하고 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로 아버지의 수준에 이르도록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모르고 옛날 하인과 함께 사는 것이 훨씬 자유롭고 행복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먹고 싶을 때 어느때나 먹고, 자고 싶을 때 마음껏 자고, 놀고 싶은 대로 마음껏 놀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음식도 사사 건건 간섭을 합니다. 그것이 바록 고통스럽게 보이지만 가문과 기업을 다스리고 통솔하여 번영을 이루기 위해서는 겪어야 할 훈련 과정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 (엡 2:2-3)였다는 우리의 과거 신분에서 하 나님의 자녀의 신분으로 우리를 구속해 주셨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다 된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과 함께 영광을 얻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입 니다.

욥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셨습니까 욥으로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에 때문인 것입니다.신앙이 어릴수록 시험 문제는 쉽습니다.그러나 성장해 갈수록 시 험 문제는 어려워시고 주는 신앙, 감사하는 신앙으로 바꾸어집니다. 어른이 되면 부모를 위해, 자녀들을 위해 베풀어 주는 인격으로 바꾸어 지는 것입니다.욥의 시험은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어려운 시험입니다. 유치원생이 대학 생 시험을 이해하겠습니까 이렇게 욥을 하나님의 원하시는 수준에 오려 놓으시려 고 어려운 시험의 문제를 내셨다는 것입니다.

 2.욥이 당한 시험 1) 많은 재산을 잃은 고난 피땀 흘려 모은 재산, 평생토록 애써서 모은 재산을 하루 아침에 잃어버리고 거 지가 되어버렸습니다. 양 7,000마리, 약대 3,000마리, 소 500마리,암나귀 500마 리, 그리고 많은 종들을 일시에 잃어 버렸습니다.이런 부자가 아무런 잘못도 없이 어떤 대책도 세워 볼 여지도 없이 스바 사람과 갈대아 사람이 와서 무참하게 약탈 해 가 버린 것입니다. 이런 억울한 일이 또 어디 자기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을 것입니다. 일 순간에 자기를 둘러싸고 든 소유가 다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눈 앞에서 벌어지고

2) 자식을 잃은 고난 욥이 자기의 소유가 다 사라지는 것을 목도하면서 그 허망함을 제대로 느끼지도 전에 이제는 자기의 손과 발이 잘려지고 창자가 끊어지고 심장이 터지는것같은 비극적인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서은 기쁨이요, 자랑이요,보배같은 사랑스런 자 녀들의 참사 소식입니다.

욥은 7남 3녀의 자녀를 두었는데, 그들은 신앙으로 잘 자랐습니다. 보모 공경 잘하고 형제들과 우애하고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이렇게 귀한 자녀들이 하루는 형 집에서 잔치를 하다가 집이 무너져서 한꺼번에 몰사해 버린 것입니다.이세상 에 이런 애통한 일이 어디 수 없는데 일시에 10자녀를 다 잃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누구라도 눈이 뒤집히고 혼절하고 환장해 버리고 말 것입니다.

 3) 건강을 잃은 고난 욥은 그 비극들을 보고 들으면서 이제는 자기의 몸이 다 망가진 것을 깨닫았읍 니다.욥은 숨 돌릴 새도 없이 몰아치는 비극으로 정신을 가다듬을 수가 없었습니 다. 재산이나 자식이나 다 앓어도 건강만 잃지 않으면 어느 때인가는 슬픔을 딛고 일어설 수 . 욥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 몸에 종기가 나서 잿더미에 기왓장으로 긁고 다. 속으로 병이 나는 것은 아무리 아파도 그래도 위신을 세울 수 나 욥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 몸에 종기가 나서 잿더미에서 기왓장으로 긁고 습니다.

그러나 욥의 병은 피부가 곪고 못 볼 형편이었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병든 몸에서 나는악취는 사랑하는 아내 마저 병든 남편을 포기할 정도로 심했습니다. 그래서 욥은나의 이 가죽이 썩은 후에 (욥 19:26)라고 말하고 스럽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죽는 것이 차라리 낫습니다. 그래서 아내마저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합니다.

 4) 아내를 잃은 고난 모든 것을 다 잃고도 아내만이라도 옆에서 고난에 동참하면서 같이 울어 주었다 면 얼마나 위로가 되었겠습니까그런데당신이 믿은 하나님을 저주하고 자살하 여 죽어 버리라 고 하고는 곁을 떠나 버립니다.

음성 나환자촌인 전남 여천의 애양원에 사는 나병환자들은 대개 가정을 가지고 다.그러나 남편이 환자인 경우는 건강한 아내가 나환자인 남편을 섬기며 일생을 같이 사는 것을 보았습니다. 남편의 고난에 아내가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욥의 아내는 그런 고통을 당한 남편을 버리고 떠나버렸습니다. 그녀가 얼마나 몰인정한 악처인가 하고 우리는 생각할 수 욥의 아내로서도 감당할 수 없는 극악한 욥의 형편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욥의 아내도 마찬가지로 집의 소유와 자녀들이사라지는 참번을 겪으면서 장상적인 사 고가 불가능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구누라도 그러할 것입니다. 더구나 남편까지 송장처럼 되어버리니 그녀는 집에 남아 래부터 어렵고 힘들게 살다가 이런 일을 당해도 황망하거늘 더할 나위 없는명예 와 부와 건강과 권세의 복을 누리다가 한꺼번에 그 모든 것을 다 잃고 나니살아 야 할 이유도 소망도 방법도 없고, 스스로를 주체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더우기 아내가 옆에 더 역겨웠습니다.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해서 아내의위로마저도 빼앗으신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욥 홀로 그 일들을 당하게 하신 것입니다.

 5)친구을 잃은 고난 세 친구가 위로를 하려고 욥에게 발치로 앉아서 일주일을 같이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잘 생각해 보아라, 죄없이 고난당한 자가 어디 당한 자가 어디 할 수 (욥 16:20)라고 했겠습니 까 죄가 말은 위로가 아니라 질책하고 책망하는 말입니다.

친구들로서는,그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서는 하나님을 믿느다고 다 형통하 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욥과 같이 이렇게 형편 없이 되는 것은 죄에 대한하나 님의 책벌로 밖에는 이해할 길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들로서는 알 수 없는 무슨 죄를 하나님께 지은 것이 분명하니 그것을 고백하여 하나님께 용서를 받으라고 충고하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친구, 경건한 친구, 하나님의 벗 이라고 불리우는 이 친구에게 어찌 이런 일이 닥친다는 말이가 하고 함께 괴로워 하는 그들이 내린 결론은 그래도 욥에게 어떤 문제가 은 자신의 무죄함을 거듭거듭 항변하였습니다. 그러자 친구들은 욥을 비웃고 욥에게 교만함을 버리라고 말했습니다.

친구들은 욥과 욥의 일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 위로하기 위해 고난 당하는 친구 욥과 더불어 논쟁을 벌입니다. 하나님께서 욥이 당하게 하신 일은 친구들도 위로해 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6)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음 욥은주께서 왜 나에게 얼굴을 돌리시고 나를 원수같이 여기십니까 라고 했습 니다(욥 13:14). 이 세상 사람들이 다 나를 조롱하고, 아내가 나를 배신하고, 모 든 것을 잃었다 해도 임마누엘이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실 때 소망이 안이때 그 이상 비참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 상에서 운명하실 때 나 의 하나님 나의 한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꺄 하고 외치셨습니다. 이 외침 은 비통한 외침입니다. 하나님께서 외아들에게 등을 돌릴신 것입니다. 욥에게는 모든 고통보다 하니님이 자기에개서 등을 돌려버리셨다는 것입니다. 욥에게는 모 든 고통보다 하나님이 자기에게서 등을 돌려버리셨다고 생각될 때의 고통이극치 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혹독한 고난 속에서도 아무런 설명도 위로도 없었습니다.

그것이 더욱 고통스러웠습니다. 좋은 의미가 합니다. 그러나 아무런 이유도 알지 못하고 그런 극심한 고난을 당한다면 누구라

3. 욥의 훌륭한 신앙

그러나 욥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이런 고난 속에서도 승리했습니다.

1) 욥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옹호하였고 하나님을 신뢰하였습니다.

주신 자도 하나님이시요 취하신 자도 하나님이시기니 하나님이 주셨으니그분 이 임의로 거두어 가실 수 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당신을 신뢰하고 의지할 때 가장 기뻐하십니다(히 11:6) 어떤 엄마가 딸을 어려서 데려다 키웠는데 후에 그 딸이 자기 엄마가 친엄마가 아닌 것을 알고 더이상 엄마을 신뢰하지 않고 따르지 않았습니다. 별스런 말로 설 득을 해도 믿어주지를 않았습니다. 그 엄마는 큰 배신감을 느끼고 그렇게 비참해 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당신의자녀들이 당신을 신뢰하고 못하고 안달하고 염려할 때, 그 래서 자기 지혜와 자기 힘으로 살려고 할때 가장 섭섭해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내 인생을 맡겨 드릴 때 가장 훌륭한 작품이 될 것입니다.

욥은 그런 고난 가운데서 누구를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재산을 약탈 한 스바 사람들이나 갈대아 사람을 원망하지 않았고,충성스럽게 양을 지키지 못한 종들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도망한 아내도 미워하지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셨 다가 하나님께서 도로 가져가셨으니 나는 할말이 없습니다. 하는 마음으로 고난을 견디고 주님을 찬양하고 팔았다고 근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생명을 구원 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에 보냈나이다 라고 했습니다.요셉도 자기의 고난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 들였습니다. 우리의 고난은 하나님의 계획속에 들어

2) 욥은 하나님의 섭리와 내세에 대해 확실한 신앙을 가졌습니다.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킬까 그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 것을 행하시나니 (욥 23:13)라고 욥은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주권적이 십니다.

그분은 선하시고 지혜로우시고 전능하시기 때문에 어떤 경우라도 당신의 뜻을 이 루십니다. 때문에 왜 이런 고난을 당해야 하는지 나도 모르고 누구도 모를 것입니 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작정하시는 뜻이 대장균, 박테리아 같은 단세포는 2,800 종류의 단백질로 되어 이 일정한 순서로 배열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지구에서 본 달과 태양의 크기가똑 같습니다.

일식과 월식을 통해서 볼 수가 두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연히 되었을까요 이런 것이 우연히 되려면 무한대 분의 일의 활률로도 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단세포 하나까지도 설 계와 계획에 의해서 창조하셨다면 우리의 생을 얼마나 치밀하고 정확하게 설계하 셨으며, 그 설계대로 지어져 가는 것도 얼마나 믿을 만하겠습니까 욥기의 끝 부분 하나님의 대답에서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지금 보기에는 모순처럼 보이고 부조리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작정하신뜻이 반드시 사실도 믿어야 합니다.

욥은 자신의 고난이 죽음으로 끝나도 결코 그것이 끝이 아님을 알고 그래서 욥은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욥 19:26)고 하였습니다. 육체에 대한 소망은 다 끊겼어도 자신이 하나님 앞에 살아 것과 부활의 소망을 고백했습니다. 이렇게 내세관이 분명할때 이런 시련을이길 수가 망하지 않고 최소한의 생명과 의식을 가지고 하나님을 고백하고

4.욥의 교만과 회개

그러나 욥기 19장을 보면 욥이 하나님을 경외함이 특심했어도 형제들과 친구들 에게까지 수치거리, 조롱거리가 되는 일언 지경에 이를 때는 그 속에서 어떤 원한 과 적개심이 일어났습니다. 한탄과 비탄이 마음에서 용소움쳤을 것입니다.

그럴수록 그는 자신의 무죄함을 항변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하나님을 욕하고 저 주할 수는 없었다 해도 하나님께서 자기를 돌아보지 아니한 데 대하여 불평까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친구들이 자기의 고난이 죄에 대한 댓가라고 너무 우기니 까 거기에 대한 반동으로 자신의 의를 더욱 강조하고 반면에 하나님의 돌아보지 않으시는 처사에 대한 불만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 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는 말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결백함을 입증 해 주셔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죽은 후에 하나님을 뵈온다는 말도 실은 자신 의 무죄를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되어서 이세상에서는 육체의 고 난을 당하지만 죽은 후에는 당당하게 하나님 앞에 설 수 이제는 하나님께서 육체를 고쳐 주시고 자기의 고난을 돌아 보시기를 바라는 그런 희망을 포기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욥의 잘못은 무엇입니까 바로 자기의 무죄와 의로움을 세세하게 구체적 으로 입중하면서(29장과 3`1장) 때때로 세상에서 보여지는 하나님의 불의에대한 방관, 불공평함과 비교를 해서 말했던 것입니다 (24:12,22, 21:17-21).그리고 자 신이 그 고난 중에서 애타게 하나님을 으시고 침묵하신 것을 비난하였습니다 (23:3-9, 19:7).그리고는 다름 아닌 바로 하나님께서 자기로 이 고난을 당하게 하셨다고 항변합니다(30:18-19, 19:6-12).또한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이제는 돌이킬수가 없게 된 줄로 알았습니다.(23:13).

하나님께서는 무죄함에서도 불구하고 고난을 허용하시는 그런 하나님이심을체념 하듯이 고백하였습니다.하나님께서는 그런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하나님은 무죄 한 자로 낙심케 하시고 두렵게 하셨다는 것입니다(24:14-17).

이렇게 스스로 의롭다 하였고(32:1), 하나님 보다 자기를 의롭다고 했던 (32:2) 것이 욥의 잘못으로 드러났습니다. 자기가 어떻게 의롭게 살았는가를 욥은여러 방면으로 세밀히 설명합니다.그러면서 자기가 곤고한 자, 어려움에 처한자,빈한 한 자,억울한 자를 지나치지 않고 글들을 성심껏 돌보았는데, 하나님은 자기의

당한 엄청난 곤고와 수치에서 자기를 건져주지 않으신다는 것이 대조되도록했습 니다. 이렇게 욥은 자기의 의를 주장하면서 자기의 그 의는 세밀하고 틀림이 없으 나, 하나님은 때때로 세상에서 의로운 자로 억울함을 당케하시고 악한 자로 형통 케 하시는 그런 부조리와 모순을 허용하시는, 당신의 뜻대로 주권적으로 그렇게 하시는 분임을 은근히 비교하고 욥이 하나님의 주권과 자기의 의를 변호하는 것은 잘못이 없으나이제는아주 자기 중심적이 되어서 자기의 의가 다 자신의 지혜와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말했습니다. 욤의 생애에 에서 고백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주와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을 한 개인인 욥의 수준에서 판단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일견 보이는 부조리와 모 순을 길게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관점과 시간으로 보지 않고 자기 규모와 수준의 의로운 행위와 비교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폭풍 가운데서 하시는 말씀은 온갖 창조 질서의 신묘함이었 습니다.피조물과 자연 법칙과 그 모든 생물의 기질과 질서가 하나님의 주권적인 지혜와 능력으로 되었음을 하나님은 드러내십니다. 욥이 너무 자기에게 집착되어 자기 중심적인 사고로 하나님을 재고 하려고 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제 거 꾸로 욥의 수준과 규모를 깨닫게 하십니다. 욥은 하나님과 비교하면 참으로 미미 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지혜롭고 권능 것에도 무지합니다.(38,39장).

욥은 자기의 일로 세상이 다 무너져 내리는듯한 절망감이 이 없는 세상을 보여 주십니다.

다음에 계속되는 하나님의 말씀(40:8-14)은 하나님의 심판이 세상에서는때로 불공평하고, 때로 방관하신다는 욥의 비난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입니다. 스스로 의롭다 하려 하여 하나님을 불의하다고 한 (40:8)욥에게 하나님은 심판은 내가 하 는 것이다. 그런데 왜 너는 나의 심판을 업신여기느냐 너는 무엇으로 심판을 할 것이냐 무엇을 네가 아느냐 나의 심판이 그렇게 못마땅하면 그럼 네가 하나님이 되어서 한번 해 보아라.너는 아주 잘 할 수 하는 그 교만한 녀석들은 하나도 빠뜨 리지 않고 끝까지 다 자리에서 끝장을 내버려라.네가 한번 너처럼 의롭지 못해서 그렇게 못하는데 너는 그렇게 할 수 스로를 구원할 수 것입니다.

이 말씀은 불의한 자를 심판하는 자도 나고 의로운 자를 구원하는 자도바로 나다. 내가 한다. 그런데 왜 너는 네 스스로 구원 얻는 것처럼 나의 심판에 대하 여 왈가왈부하느냐 하는 말씀입니다. 너를 구원할 자도 나고 그들을 심판할 자 도 나다 는 말씀입니다. 욥은 지금 자기의 의로 충만해 와 은혜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의로움이 자기를 구원하기에 충족한 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람이 다룰 수 없고 오히려 두려움을 느끼는 동물들 하마와 악어를 예로 드시면서 온 천하욘 님 자신이 그것들을 지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누구도 나에게 왜 그렇게 지었느냐고 힐문할 수 없다 고 하십니다.

이사야 45:7의 말씀대로 하나님은 어두움도 창조하시고 환난도 창조하시는 분이십 니다. 우리가 이해 할 수 없는 일들이 는 것도 사실이나 그것이 오히려 하나님께 속한 문제이지 인간이 자기의 의로운 하나님의 처사를 판단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욥은 한낱 미물인 동물 들에게도 그토록 무지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자기의 당한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처사를 그토록 무지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자기의 당한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처 사를 그토록 자신 하나님은 나타니시지 않고 자기의 하소연은 응답이 없어서 욥은 고통과 수치 속에서 낙심하고 원망에 차 니다. 욥은 하나님을 뵈올 수가 없다고 불펑하였는데 이제 하나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욥은 자기가 고난을 당하여서 갖게 된 속마음을 다 털어 놓자 하나님은 그 때 나타나신 것입니다. 죽은 후에야 뵈올 수 결국 욥의 생전에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을 뵈옵는 것이 얼마나두려운 일입니까 그래서 욥은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 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니다 (욥 42:5, 6)라고 고백하였습니다.욥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일을 자기의 수준에서 판단하였 던 자기 중심적인 사고와 교만한 마음을 깨닫고 뉘우쳤습니다.

 5> 욥이 다시 받은 복

하나님께서는 욥이 고난받기 이전의 모든 것을 다시 회복시키셨습니다. 소유는 갑절이나 주셨습니다. 몸은 더욱 건강해졌고 수명도 거의 배를 더 누렸습니다. 자 녀도 다시 열을 낳았습니다.

 맺는말

여러분, 우리는 욥의 인내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욥의 신앙과 기도와 찬송을 배워야 합니다.욥이 어떻게 시련을 극복했는지 배워야 합니다. 성경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약 1:2)고 했습니다.

욥의 친구들을 통해서 우리가 배울 수 가 어떠해야 하는가입니다. 우리들도 고통을 당하는 이웃에게 위로를 한답시고 왜 얼굴이 그렇게 못되었는냐 그동안 많이늙었구나 , 왜 자식이 그모양이니 , 몹쓸 일을 당했구나 하는 말로 위로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을 더욱 아프 게 돋보이게 하는 일입니다. 이런 위로하는 말로 위로가 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정적인 위로보다 긍정적인고 적극적인 말로 소망을 주 어야 합니다.욥은 친구들에게 입좀 다물어라. 너희는 나를 조롱하는구나 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고난 당한 형제들을 무엇이라고 위로하였습니까아마 욥은 친 구들이 일주일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같이 슬퍼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을 당하는 형제에게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라고 해야 할것입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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