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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 (시 12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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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말씀은 기나긴 포로생활의 고통 속에서 해방된 벅찬 감격을 하나님 앞에서 시로 노래하면서 성전에 올라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나타내 주고 있는 내용의 말씀입니다.이 시는 해방의 자유가 너무 멀게 느껴지고 도무지 포로의 암울함 속에서 견딜 수 없었던 날들이 고통으로 사무쳐있던 그들에게 해방이 주어졌을 때 고난 속에서 또 다른 은혜의 역사를 펴나가시던 하나님의 일하시는 은혜로운 손길을 느꼈던 학사 선지자 에스라에의해 작시된 노래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해방을 얻고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릅니다.그 감격한 모습은 1절로3절에 나타나고 있습니다.그러나 아직도 미봉된 채 해결되지 않는 잔존 포로들을 위하여 속히 귀환될 것도 기원하고 있음을 4절의 말씀 속에서 느끼게 됩니다.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리소서.그런데 그들은 절망적인 역사의 어려운 현실 가운데서도 "눈물을 흘리며씨를 뿌리는 자의 삶"을 살려는 정신적인 태도로서 현실을 극복하려는 대단한 몸부림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비록 지금은 눈물을 흘리는 아픔이 있을지래도 훗날에는 다음 세대가 기쁨으로 단을 거두어 들일 수 있는 역사적인식과,현실은 너무 절망적이나 정신적 기반을 가지고서 다음 계절과 나라의 다음 세대를 위하여 마음의 여유와 믿음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살아갔던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은 삶의 내용이없습니다.정치인들에게 있어서 백성들의 의식을 건전하게 형성시킬만한 무엇도 없었고 경제인들에게 있어서도 당장의 현실만을 인식하는 얄퍅한 장사수단만을 가지고 있을 뿐 차세대를 위한 비젼을 갖고 있지를 못합니다.수입이 불가피하게 개방이 되자 수입되어지는 상품을 대항하기 위한 신상품을개발하거나 기존재품의 질을 높이면서도 가격은 낮추어서 수입상품과의 판매경쟁에서 살아남아 보려는 노력도 없이 우선 돈을 벌기 위해 대기업들이앞다투어 수입을 자행하여 사치와 낭비풍토를 오히려 조장하고 있는 현실이아닙니까신기술 개발과 신상품 생산을 위한 투자보다는 부동산 투기에 열을 올리고 수입상품으로 떼돈을 벌려는 이 일은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자의 태도가 아닌 것입니다.

지금 사과나무를 심고 있는 내가 사과를 당대에서 따 먹지 못한다하여도언젠가는 나 자신의 후손들이 열매를 풍성하게 거두는 때가 온다는 깊은 역사인식을 갖고 있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지난 새벽기도회에서 예화)
제가 신학교에 복학을 했을 때 순복음신학교에는 학식이 높은 이희숙교수님이 계셨습니다.그런데 이 분이 바른 소리를 잘한다고 교수직에서 밀려나는 어설픈 사건이 생겼습니다.어쩌면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학교를 위한 발언을 하여도 전혀 먹혀들어가지 않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워 스스로가 신학교의 교수직을 포기하고 교단을 떠나는 길을 택한 것만 같았습니다.교단을 떠난 후 서울 어느 빈촌지역에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1 년도채 안되었는데도 100여명의 성도로 급성장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여러가지로 어려움이 뒤따랐습니다.그 어려움이란 쉽게 판단하기에 재정적인 문제로 생각이 되었지만 그 보다 더 근본적인 선결문제가 있었습니다.그것은 다름아닌 성도들의 정신구조와 생활의식과 삶의 태도였습니다.어려운 처지에 있기 때문에 여러모로 돈쓸 일이 많기도 하지만 그들에겐 정신적인 기반이 너무 약했습니다.절약정신도 없고 저축정신도 없고

근면 성실함보다는 남이 잘되고 있는 일을 대단히 부정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며 잘 사는 사람들을 죄악시 여기고 살아가는데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어쩌다가 교회를 위해서 헌금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는 성도들이 등록하여 하나님을 잘 섬기노라면 경멸하는 눈초리를 보내며 잘 살고 있는 일에 대하여 부정적인 쑥덕공론을 하기도 하고 또 목회자가 교회 안에서어떤 직분이라도 맡기면 돈이 없는 우리는 사랑치 않고 돈있는 그 성도만을사랑한다고 대단한 불평을 노골적으로 털어놓는 것이었습니다.그 때문에 자신들보다 상당히 잘사는 성도들이 그 교회에 붙어있질 못해 타 교회로 가는일이 빈번하게 생기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시대에 있어서는 눈물 흘리면서 씨뿌리는 고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역사인식이 전혀 없었고 하루하루 번 돈은 그날 그날 탕진하는데 술이나 도박에 주로 쓰고 있는 어쩌면 경제적인 문제보다는 정신적인 문제가 더크게 대두되는 것이었습니다.자녀들 또한 부모들의 삶의 습성을 그대로 배워가고 있어서 앞날에 대한 자기 비젼이 없이 그날그날 닥치는대로 그냥 살가면 된다는 의식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 본문과 같은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도 다음 시대를 위하여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가 아무도 없었던 것입니다.그러기에 그들은 가난 그 자체가 계속하여 유산처럼 상속되고 있었으며 그 까닭에 가난해질 수 밖에 없는 자들이었던 것입니다.이런 그들을 복음으로 가르친다는 것은 성령의 역사없이 너무 어려웠으며 자신들이 교회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겠다는 의식보다 교회가 자기들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은근히 기대하는 입장이 있어서 참으로 어려움이 많았다는 목회실화를 감명깊게 들려준 적이있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어느 시대나 자기시대에 있어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자들이 있어서 역사의 주인되시는 하나님이 후대에 가서 30배,60배,100배로거두게 하셨다는 많은 기록을 남기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벧론의 포로생활을 마치고 본국으로 귀환했을 때 그들은 기대에 부푼 꿈과는 달리 산산 조각이 나버린 깨어진 꿈들을 주어모아하나 둘씩 꿰어 맞추어야 하는 어려운 현실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이스라엘의 중심축 역할을 했던 예루살렘은 훼파되어질대로 훼파되어져 있었고 남아있는 동족들은 가난과 헐벗음에 시달려 지쳐있는 모습이 너무 비참했었으며 거기다가 이방의 주변국들은 호시탐탐 이스라엘을 침공하려는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어서 긴장과 불안이 쌍곡선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현실은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는 실정이었습니다.모든 물질적인것이 결핍된 상황이요,희망과 위로와 용기를 가질 수 있는 정신적인 것도결핍되어 있었으며 더군다나 강대국들 틈바구니에 끼어있는 그들의 앞날은불투명하기 그지없었고 이방민족들이 겨냥하고 있는 위협의 화살때문에 한시라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는 그들이 꿈꾸는 것 같아(1)입에는웃음이 가득하고 혀에는 찬양이 가득차 있었지만(2) 막상 본국으로 돌아와보니 현실은 너무나 암담하여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그래서그들은 그들이 처한 상황을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사람"으로 시대를시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여기에서 씨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신약적인 의미로는 복음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이스라엘의 지금 당하고 있는시대적 상황으로는 미래 역사의 진행방향과 자신들의 삶의 현실을 뒤바꾸어놓을만한 그 어떤 값어치있는 일을 행하여서 절망스런 환경을 극복하고 더나아가서는 폐허된 예루살렘 성벽과 성전을 재건하여 훗날을 위한 새로운의식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우침 받아야 한다는 것 입니다.

그들이 포로로 잡혀 갔을 때보다 더 절망스런 고국의 현실을 바라보면서해야 할 일이 있다면 바로 눈물 흘리며 씨를 뿌려야 할 일이었습니다.그 일

은 폐허가 된 삶의 현장에서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요,무너진 성벽과 성전을연장을 들고 재건하는 일이요,다른 한 손으로는 쟁기를 잡고 뒤를 바라다보지않고 밭을 갈아 엎을 수 있는 역사를 만들어 가는 일이었습니다.그러면어떻게 하는 것이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작년에 수도 서울에서는 정의,평화,창조의 보존대회(JPIC)가 열렸습니다.
국제적인 모임이었는데 그 대회에는 동구권에 있는 기독교 대표자들인 목사님들이 많이 참석했었습니다.그 가운데에는 동독에서 오신 목사님이 계셨는데 그 분은 일반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신학을 하신 분으로서 동독 어느 조그마한 마을 도시에서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그 분은 낮에는 공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공장 근로자들을 불러 모아놓고 성경공부를 시켰으며 한걸음 더 나아가서는 미래를 내다보면서 성경을 토대로 한 공산주의의 허구성을 가르치는 이념교육도 실시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바로 얼마전 자기 교회를 중심으로 대규모 시위를 할 계획도 세워놓고 통일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도 하였다고 합니다.그는 최저의 생활수준으로 역사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책임감을 갖고미래의 새 역사를 기대하면서 말씀을 가르치고며 기도를 했는데 하나님은인류가 원하는 기대 이상의 대역사를 이루어 주셨습니다.할렐루야! 이처럼씨는 적은 것이지만 그 씨를 애통해 하며 뿌릴 때에 대단히 놀라운 역사가일어나는 것입니다.작년 동구권 철의장막이 무너지고 공산주의의 종주국 소련이 공산주의를 헌신짝처럼 팽개칠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눈물 흘리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교회의 입장에서 씨를 뿌리는 일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까 그 일은 우리의 지금하는 일을 통해서 미래에 누군가가 열매를 거둘 수 있는 것을 들 수 있는데 기도원을 설립하기 위해 우리모두가 앞장서서 협력하는 것이요,목사관을 짓기 위해 우리가 기도하며 동참하는 일일 것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와같은 일을 위하여 눈물흘리며 씨를 뿌릴 수 있는 것은 선민으로서 이끌림받는 역사 속에서 경험하는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때문이었습니다.이는 그들의 두뇌로 생각한 산물이 아니고 그들의 철학이나 지성도 아니었습니다.다만 전능하신 하나님을 섬겨오면서 깨달은 신앙 체험의결과였습니다.분명 어느 시대이든지 울며 씨를 뿌리면 누군가가 기쁨으로단을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희생을 제공하면 영광의 열매는 거두는 것 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언제든지 자기시대에는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야 하는 정신적 기반을 가지고 말씀 안에서 앞날의 역사를 꿰뚫어 볼 수 있어야만 합니다.우리 시대에 눈물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가 없으면 다음 세대에서도 기쁨으로 단을 거두어 들일 자는 생겨나지 않습니다.이 길이 바로 십자가의길입니다.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고자 하는 자도 언제나 자기 시대에는 복음의 씨앗을 뿌려야만 합니다.그래야만 교회는 갈수록 부흥하게 되고 또 다음 세대가 신앙의 열조들이 씨앗을 뿌려서 이 열매를 거둔다며 눈물흘리며씨뿌리는 일을 멈춘다면 그 교회의 차세대의 성장도 멈추고 말 것입니다.
신앙열조들이 뿌려놓은 열매를 거두어 들이면서도 계속해서 눈물흘리며씨 뿌리는 일을 진행한다면 교회는 부흥되는 일만 반복되는 역사를 만들어갈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손으로 우리의 기도로 기도원을 짓고 설령 거기에 가서 은혜를 받는 신앙적 체험을 한번이라도 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할지래도 우리는다음세대가 기쁨의 단을 거두어 들이게 하기 위하여 이 일에 앞장서야 할줄로 믿습니다.이러한 자만이 천국 시민으로서 역사성과 주안에서 올바른정신적 기반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참된 청지기가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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