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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시 23:1-6, 계 07: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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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이 말씀 속에서 양떼를 자신있게 인도해 가는 목자의 모습과 그 목자를 신뢰하고 따르는 양들을 그려 볼 수 있습니다.

많은 가축들 중에 유독 돌보아주는 목자가 필요한 것은 양떼들 뿐입니 다. 양들은 시력이 좋지 않다고 합니다. 양들은 3, 4 미터 앞 밖에 볼 수 없다고 합니다. 따라서 목자가 길을 인도하지 않으면 양들이 길 잃어버리 는 것은 아주 흔한 일입니다.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목자와 양의 이런 관계는 하나님과 그가 지으신 인간과의 관계와 아주 흡사하다고 하겠습니다. 사람들도 양들과 같이 역사를 보는 눈이 밝지 못 하여 멀리 보지를 못합니다.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하물며 먼 역사의 미래는 더더욱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양과 같이 길을 잃 어버리거나 잘못된 길을 선택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의 길 을 정하여 놓으신 하나님께서 세워 놓은 이정표를 잘 살피면서 그 인도를 따라 갈 때만 우리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정표대로 가기보다는 자기들의 판단에 따라 행동하기를 좋아합니다. 생의 갈림길에서 하나님은좁은 길 쪽으로 가라고 이정표를 세우셨지만 우리는 넓은 길 쪽으로 선택을 하곤 합니다. 그 길이 좋아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애급에서 구원하여 광야길로 인도하셨습니 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약속하셨는데 어찌하여 광야로 인도하시는지 저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저들은 불평하고 원망하였습니다. 그 러나 하나님은 이들과 그 자손들이 대대로 살아갈 참 삶의 길을 가르치시 려고 광야로 나갔던 것입니다. 시내산에서 그들과 계약을 맺으시고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 율법은 그들의 삶의 길의 이정표(리정표)였습니다. "그러 므로 너희는,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성 심껏 지 켜야 하며,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나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너희는 주 너 희의 하나님이 명하신 그 모든 길만을 따라가야 한다. 그러 면 너희가 차 지할 땅에서 풍성한 복을 얻고, 오래오래 잘 살 것이다." (신5:32-33)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삶을 얻고 복을 얻을 길을 분명하게 보여 주셔서 그 길로 인도하시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 인도대로 따르지 아니하였습니다. 그 길에서 벗어나 바알 우상에게로 갔 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보다 좋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 엘의 역사는 배반의 역사요, 잘못된 길에서 방황한 역사였습니다. 하나님 께서는 예언자들을 보내셔서 수시로 저들의 길을 바로 잡아주려 하셨지만 듣지 아니하였습니다. 결국 그들은 잘못된 길에서 수없는 고난을 당했던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삶은 지뢰밭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탄이 묻어 놓은 지뢰가 수없이 많은 것입니다. 지뢰는 땅에 묻어 놓았기 때문에 눈에 보이 지 않습니다. 겉에는 오히려 유혹의 장미가 아름답게 피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장미를 따려다가 생명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한발만 잘못 내 디디면 지뢰를 밟아 생명을 잃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지뢰밭을 무사 히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그 길로 따라올 것을 명하 시면서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좌우는 죽음의 밭이 기에 반드시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길로만 나가야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의 진리와 유사한 사상이 좌우에 많이 있습니다. 칼 맑스 가 주장한 공산주의 이념도 성경이 제시하는 이상과 아주 가깝습니다. 그 러나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부정하므로 좌로 치우친 사상입니다. 인본주의 (Humanism) 사상도 아주 기독교 진리와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그 윤리적 인 면에서 보면 거의 같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인간 중심이 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기독교 진리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지나치게 우로 치우친 것입니다. 사상적으로만 아니라 같은 기독교라는 이름 안에서도 전 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무리들이 많이 있습니다. 같은 성경을 보면서도 전혀 다르게 해석하므로 잘못된 길로 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오늘날의 기 독교인들이 얼마나 충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있을까요 촬스 알렌(Charles Allen)이란 사람이 조사한 세계교회 신앙상태에 따르면, 교 인중 주일예배에 잘 참석하지 않는 사람이 20%, 개인기도를 전혀 하지 않 는 사람이 25%, 성경을 보지 않는 교인이 35%,십일조 헌금을 하지 않는 교 인이 40%, 기독교 서적을 읽지 않는 교인이 60%, 교회 봉사를 열심히 안 하는 교인이 75%, 불신자를 한명도 인도하지 않은 교인이 85%라고 합니 다. 가장 기본적인 신앙생활에 있어서 조차 말씀대로 행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통계라고 하겠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믿는 사람들이 충실하 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인도하 시는 길에 전혀 융통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목자는 대체로 양떼들을 절벽으로 난 샛길로 인도하지는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우리를 아 슬 아슬한 절벽길과 같이 조금만 벗어나도 당장 심판을 받아 떨어져 죽는

길로 인도하시지는 않습니다. 앞서 지뢰밭과 같다고 하였습니다만, 하나님 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앞서 보내셔서 여기에 길을 내셨습니다. 길이 너무 좁아서 도저히 우리가 갈 수 없음을 아신 하나님은 우리가 넓게 갈 수 있도록 독생자를 먼저 보내셔서 그 지뢰들을 다 폭발시키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몸을 던져 길을 닦아 놓으신 것입니다. 이제 우 리는 그가 닦아 놓으신 길로만 가면 안전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길은 생 명의 길입니다. 우리가 그 길로만 행하면 거기서 넘어져도 혹은 좀 멈추 어 서도 문제는 없습니다. 거기서 벗어나지만 않으면 됩니다. 그러나 기 왕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 앞에 훤하게 닦아 놓으신 길을 천천히 갈 것이 아니라 부지런히 열심을 가지고 달려가야 할 것입니다.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인도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까닭은 자기의 이름 때문이라 고 하였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이름은 그 사람의 실재를 나타내며, 그 사 람의 본질적 인격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물들이 이름을 가지 기 전까지는 미완성의 상태인데, 이름을 붙여주므로 비로소 완성됩니다.

 따라서 이름을 삭제한다는 것은 그 존재를 말살시키는 것입니다. 그런 의 미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더욱 중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스스로 있는 자"이신 "야웨" 하나님의 이름은 거룩하며 영광스러우며, 위대하시며, 명 예롭고 고귀하시며, 동시에 두려운 이름입니다. 야웨의 이름은 하나님 자 신과 같습니다. 그래서 야웨의 이름은 망령되게 불러서는 안된다고 하였습 니다.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특별한 곳에 두게 하시며(사18:7), 성전은 그의 이름을 위하여 세워졌으며, 그 이름이 있는 곳에 야웨께서 임재하십 니다. 야웨의 이름으로 말하거나 행하는 것은 그대로 이루어진다고 보았습 니다. 야웨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저주하고 맹세합니다. 야웨의 이름에는 도움이 있고(시124:8), 피난처를 찾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야웨의 이 름이 불려지는 곳에 하나님의 능력이 실제로 나타났습니다(삼상17:45).

특히 야웨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자신의 이름과 더불어 자신의 성품을 함께 말씀하셨습니다. 출애급기 34장 6절에 주께서 모세의 앞으로 지나가시면서 선포하셨습니다. "주, 나 주는 자비롭고 은혜로우며, 노하기 를 더디하고, 한결같은 사랑과 진실이 풍성한 하나님이다"고 하였습니다.

야웨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구원의 역사는 그의 자비와 은혜와 인자와 진 실을 바탕으로 하였다는 것입니다. 야웨의 이름은 긍휼이 많으신 분의 이 름이기 때문에 그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역사가 긍휼을 바탕으로 이루어 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 는 말씀은 바로 야웨의 이름이 거룩하시고 자비로우시며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의 이름이기 때문에 그는 양떼들을 자기의 이름에 걸맞게 바른 길로 인도하실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명예(명예)"나 "명성(명성)"이란 말이 다 이름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이름이 좋게 알려진다는 것은 그의 인격이나 삶이 다른 사람들에게 높 은 평가를 받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한번 알려진 이름을 더럽 히지 않기 위해서는 그 이름에 합당한 삶을 더욱 힘써 가는 것입니다. 우 리 나라에서는 특히 그 이름을 중요시 하기 때문에 그 이름을 욕되게 하 는 것이 가장 큰 모욕이요 형벌로 여겨졌습니다. 사람의 명성도 그렇거늘 야웨 하나님의 명성은 더 말할 것도 없이 분명하고 확실하며 변함이 없는 것이기에 우리가 그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다는 것은 은혜요 사랑이며 복된 삶인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야웨의 이름에 대한 신뢰를 갖는다는 것은 오늘의 고난을 헤쳐갈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이 됩니다. 특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의 길을 열어 놓으시므로 우리가 그의 이름으로 기도 하고 그의 이름을 의지할 때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셔서 우리 를 구원하시며 은혜로 인도하시고 긍휼로 감싸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야웨 하나님은 그의 존귀하신 이름 때문에 우리를 의 의 길 곧 생명의 길, 은총의 길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중요한 것은 이제 그 이름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그가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믿고 따 르며, 특히 그가 주신 말씀에 대하여 무조건 순종하고 따라가야 하겠습니 다. 오늘 우리를 미혹하는 세상의 훌륭한 철학이나 이념, 우리를 매혹시키 는 발전하는 과학의 눈부신 성과들, 또한 우리를 현혹하는 잘못된 사이비 신앙들이 너무나 우리를 강력하게 잡아 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제 우 리는 더욱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집중하여 우리의 목자되신 예수 그리스도 의 말씀을 들으며 그 말씀따라 살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잠시는 고난이요 잠시는 가시밭 길일지는 몰라도 그 길이야말로 생명의 길임을 조 금도 의심치 않고 따라가야 하겠습니다.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에게만 영광을 돌리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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