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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의의 면류관 받는 제직 (딤후 0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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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일은 92년도 일할 일꾼을 임명하는 주일입니다. 지난해도 내맡은 직분을 하나님께 인정받고 상받게 살 아왔습니다. 다음해는 더 열심히 일해서 하나님께로부터 상받는 일꾼되시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사람들이 진리를 멀리하고 거짓 교훈을 좇아가는 영적 무지를 범할지라도 이에 현혹되지 말 고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복음 전도자로서의 직분을 충실히 수행하라고 간곡히 부탁한다.

모든 일에 근신하여 이 말은 무슨 일에나 조급하여 경솔하게 하지 말고, 자신의 감정과 식욕과 정신을 자제할 수 있는 운동 선수와 같이 침착하고 자제하라는 뜻이다. '호르트'(HORT)는 '근신'을 모둔 마음의 동요 상태로부터 개방되어있는 정신 상태, 혹은 모든 기능이 완전히 활동해서 모든 사실과 생각해야 할 문제를 직시하는 정신상태 라고 설명한다. 모든 일에 근신하라는 바울의 권고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기조차 거절하며 진리를 외곡하 여 성도를 유혹하는 거짓 교사들이 교회내외에서 극성을 부리고 있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전도자 디모데가 뜨거 운 영적 체험을 경험하지 못한 어린 전도자라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참으로 합당한 요구였다. '네 직무를 다하라' 이말은 '너의 직무를 충분히 수행하라' 즉 직무를 수행하는 것을 한정한 것이 아니라 시간적인 면과 질적 정도에 서도 끝까지 완전하게 수행하라는 의미이다. 디모데의 직무는 다른 사람을 위한 봉사를 가르킨다. 그 봉사를 구체 적으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설교하고 가르치며, 권면하고 위로하는 등등의 목회 사업이다. 그밖 에도 가난한 자들과 고아, 과부들을 돌보고 구제하는 일, 방문객들을 접대하는 일, 다른 교회와 관계된 일을 처리 하는 일 등이 초대 교회 지도자들의 구체적인 직무였다(채근필).
교회 생활뿐만 아니라 사회 생활에 있어서도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확실하게 책임껏 처리하는 태도가 요구된다.

성도가 복음을 맡은 직분자로서 근신하며 고난을 받으며 복음의 결실을 거두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책임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본문에서 그의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네 직무를 다하라고 권면했습니다. 이는 디모데 뿐만아니라
실상 오늘날 모든 성도에게 하는 권면이기도 합니다. 살펴보겠습니다.

1. 직분의 종류

각 사람의 성격이 다른 것과 같이 각 직분의 범위와 종류도 다양합니다. 예를 들어 부모에게는 자녀를 양육하고 사랑해야 할 책임이 있고, 자녀에게는 부모에게 효도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선생은 학생을 잘 가르쳐야 하고 제자는 스승의 교훈을 따르고 존경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이렇듯 각 직분에는 책임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우리 성도들에게는 성직을 감당하는 직분,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의 직분,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직분 등이 부여 되 어 있습니다. 성직을 맡은 자들은 그 직분이 하나님께로 부터 받은 것이므로 그것을 소중히 여기고 하나님의 말씀 으로 성도들을 올바로 양육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성도들의 인격과 신앙이 성숙하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봉사의 직분을 맡은 자는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힘껏 봉사해야 합니다. 이러한 일들은 어느 누구의 일도 아니 요, 하나님의 일이요, 곧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 자신의 일이기도 합니다.
즉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또 주의 영광을 위해 기꺼이 그일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므 로 직분의 종류는 다르다 할찌라도 그의 대한 책임은 그 각자가 감당해야 합니다. 단순한 책임감이 아닌 하나님께 대한 믿음으로 성실하게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직분 수행의 원리

고어에 우리 인생은 생삼사일(생삼사일)이라고 했습니다. 생삼이란 임금과 스승과 부모를 가르키는 것으로 이 말 은 그들에게 한마음으로 봉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임금은 오늘날의 국가요, 스승은 사회의 대표요, 부모 는 가정의 대표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세 대상에 대하여 충성과 존경과 효도로 대해야 합니다. 하늘나라의 직분 에 대해서는 믿음이 기본적인 출발점이 됩니다. 따라서 하늘 직분에는 충성과 존경과 효도외에 믿음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이 원리를 수행하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직분을 맡은 자는 그리스도를 닯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직분에 대해 자랑만 할 뿐 제 직분을 책임감 있게 감담하지 못하게 됩니다. 아울러 그리스도처럼 겸손함을 갖추어야 합니다. 직분자가 너무 책임만을 강조하다 보면 권위와 고집이 강조되어 교만하게 되며 반대로 책임감이 희박하게 되고 태만해집니다. 따라서 직분에 따라 조화 있는 책임감을 지니는 것이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한 자는 직분을 성실히 수행하므로 도에 지나치지 않습니다.
또한 직분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실천력도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는 모든 인류를 죄에서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는데 그리스도는 자신이 가르친 것처럼 땀과 눈물과 피를 흘려 사랑을 실행으로 옮긴 것입니다. 이처럼 직분 맡은 자는 그것을 위해 여러모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특히 복음 전하는 직분을 감당해야 합니다.

3. 복음 전파하는 직분

이 직분 수행에는
(1) 믿음의 책임이 있어야 합니다.
(2) 인내심이 있었야 합니다
(3) 충성스럽게 전해야 합니다.
이 직분을 위에 충성하면 하나님나라에서 상급이 있을 것입니다. 무슨 상급입니까

바울은 이제 자신의 사역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하고 자신이 최후까지 믿음을 잘지켰노라고 자부한다.
그리고 디모데와 주를 사모하는 모든 주의 백성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면류관이 내려질 것이라고 말한다.

관제. 관제는 어린양 제물을 제단에 올려 놓고 포도주를 부어 바치는 제사로, 전제라고도 불리운다. 민 15:1-10에 따르면, 어린양이 제물로 바쳐지는 때는 포도주 한 힌의 사분의 일로된 관제를 드렸고 제물이 수양인 때 규정 된 관제는 한 힌의 삼분의 일을, 수송아지의 경우는 반힌을 각기 드렸다. 관제는 야곱이 최초로 드렸고(참조 창 35:14), 번제와 함께 드려졌다. 한때 피를 전체로 드리기도 했는데 이는 이방풍의 제사 풍습에 기인한 것이었다.
(참조, 시 16:4). 전체 제사에 있어 포도주는 단계적으로 부어졌고 마지막 순서에 해당되기 때문에 바울이 자신을 관제로 비유한 것은 바울의 생애가 점진적으로 쇠퇴함과 동시에 그가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고 있다
는 사실 및 그의 전믿음을 '산제사'(롬 12:1)로 생각하고 있음을 암시한다(Hendricksen). 한편 혹자는 관제와 같이 부음이 되었다는 바울의 고백을 그가 자신의 순교할 날이 자신 앞에 임박하였다는 절박한 느낌을 가지고 이미 자신 의 눈물과 땀과 피까지를 포함한 모든 생명력을 전부 짜내어 하나님께 바쳤다는 말로 이해하기도 한다(Weiss).
'주의 나타내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 이구절은 등에 기름을 준비하고 신랑이 오기를 기다리는 열처녀의 비유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참조, 마25:1). 즉 열 처녀의 비유에서 열 처녀와 이 구절에 묘사된 성도들은 모두 그리스 도의 재림을 열망하고 믿음으로 준비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우리가 진정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이라고 한다면 우리의 일과는 보다 신중하고 의미로워야 할 것이다.

성경에는 의의 면류관 외에 '생명의 면류관'(약 1:12, 계 2:10), '영광의 면류관'(렘 13:18, 벧전 5:4),'자랑의 면류관'(살전 2:19), '썩지 않은 면류관'(고전 9:25), '열두 별의 면류관'(계 12:1), '금면류관'(계 4:4,14:14),
'화려한 면류관'(겔 16:12) 등의 표현이 있는가 하면 그반대로 '가시 면류관'(마 27:29, 요 19:5), '썩을 면류관' (고전 9:25), '교만한 면류관'(사 28:1) 등의 표현도 있습니다. 전자는 모두 충성스런 성도들이 내세에서 받을 상 급을 표시한 것이고, 후자는 그 반대로 하나님께 충성하지 못하고 교만하여 주를 떠나 불순종한 자들에게 주어질 저주들을 표시한 것입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자기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충성스럽게 달려왔음을 자랑하고 내세 에서 받을 의의 면류관을 대망하며 기뻐합니다. 한편 그것은 바울에게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충성하는 모든 주 의 종들에게 예비되어 있다는 것이 바울이 본문에서 주장하는 요지입니다. 이제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면류관은 믿음의 경주를 마친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7절). 의의 면류관은 맡겨진 사명을 다하 고 믿음의 경주를 마친 성도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달음질하는 선수가 정해진 코오스를 주파하고 나서 상급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성도들도 하나님이 정해 주신 일생을 유감없이 마치고, 맡겨주신 사명을 남김없이 수행해야 의의 면류관을 얻을 자격을 받습니다. 성경에는 복음전도자의 사명 수행을 운동 선수들의 달음질에 비유한 구절이 여럿 있습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 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전 9:24)고 했고,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 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3:13,14)
고도 했습니다.
복음 사역을 위한 경기는 원거리 경기이고 또 장애물도 많은 경기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장애물을 극복하고 끝까 지 달려가는 사람이 상을 받듯이 그리스도 예수를 향하여 나아가는 사람이 의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 므로 의의 면류관 받기를 원하는 자들은 믿음의 경주를 중단해서는 안됩니다. 고독과 외로움이 수시로 찾아들고 자 주 지치게 되지만 그럴수록 더욱 힘을 내어 믿음의 경주를 해야 합니다(참조, 히12:12-13).

(2) 믿음을 지킨 사람이 의의 면류관을 받습니다.

경기를 하는 선수들은 경기 규칙을 지킬 것을 선서합니다. 마라톤 선수가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중간에서 정기 코오스가 아닌 쉬운 길로 질러간다거나 다른 기구를 타고 간다거나 또는 쉬어 간다거나 하는 것은 경기의 규칙을 지키는 행위가 아닙니다. 그와 같이 복음 전도자의 사명이나 성도의 신앙 생활도 선수가 경기의 규칙을 지키는 행위가 아닙니다. 그와 같이 복음 전도자의 사명이나 성도의 신앙생활도 선수가 경기의 규칙을 지키며 달리 듯이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여기 믿음은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이요 더 좁은 의미로는 개인적 신앙입니다.
전도자가 빠지기 쉬운 과오가 남에게 믿음을 가르치면서 자신은 믿음을 지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남에게 신앙을 전하기 전에 자신의 믿음을 지켜 신실하고 온전한 생활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 나니'(요일 2:3-5).
의의 면류관은 주가 베푸신 사랑의 계명을 지키고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하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그러므 로 부끄러운 구원이 아니라 영광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을 받기 위해서는 환란이나 핍박 속에서도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신앙의 업적을 남기더라도 한 번 믿음의 변절을 하게 되면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많은 믿음의 결실도 바른 믿음의 자세를 통해 얻은 것일 때 참으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3) 의의 면류관은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주어집니다.

의의 면류관은 특수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주의 재림을 오매 불망 기다리며 사모하는 모든 자들 에게 주어집니다. 의의 면류관은 위대한 신앙의 업적을 남긴 사도나 전도자들에게만 보장된 상급이 아닙니다. 상급 을 약속 받은 대상자는 전성도입니다. 최선의 헌신과 봉사를 한 성도에게 주어집니다. 다른 사람들이 모르거나 그 가 한 일이 표가 나지 않아도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의의 면류관을 상급으로 주시는 하나님은 은밀한 중에 보 시고 갚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참조, 마6:4). 외모를 보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참조, 삼상 16:7). 주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믿음의 실적이 아니라 진실한 삶의 흔적입니다. 주께서 원하시는 신앙인은 단순히 세속에 떼묻지 않은 신앙인이 아니라 많은 떼를 묻혔을지라 도 그리스도의 뜻을 이 땅에서 실현하기 위해 믿음의 싸움을 싸우고 많은 상처를 입은 투쟁적인 신앙인입니다.
이러한 자에게는 예수께서 신앙의 결실 유무에 상관없이 의의 면류관을 씌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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