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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의 도 (갈 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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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를 가리켜 흔히 “십자가의 도 혹은 종의 도”라고도 합니다. 그것은 성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과 행위 속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본래 하나님의 아들로써 하나님과 동등된 분이시지만 그 영광의 자리를 버리시고 인간의 천한 종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셔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기까지 겸손한 사랑으로 가르쳐 주시고 친히 본을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기독교가 종의 도라고 말하니까 기독교는 약자의 종교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종의 도를 알고 실천하기만 하면 누구보다도 강한 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종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의 뜻대로 못하고 주인의 뜻대로 해야 하고 남을 섬겨야 하고 겸비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종의 도를 따라서 산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이므로 약자같이 보이고 바보스럽게 보일런지도 모르지만 이런 삶을 살기만 하면 승리자가 될 수 있고 진정으로 강한 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누구의 종이 되어야 하고 어떻게 사는 것이 종의 도를 따라 사는 삶이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피차에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인간은 하나님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인간의 뜻대로 사는 삶이 가장 멋있고 행복할 것 같으나 사실은 하나님의 뜻대로 복종하며 살아야 거기에 참 행복과 보람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종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인간의 자유를 속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참으로 인간이 자유롭게 되기 위함인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달리는 기차가 자유가 좋다고 해서 철로를 벗어난다고 하면 그 기차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기차는 전복되고 말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인간도 창조주 되신 하나님의 말씀이 법도 안에서 자유로와야지 그 법도를 벗어난 자유는 진정한 자유가 될 수 없고 따라서 비극만이 닥쳐오고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인류 사회 속에서 빚어지는 비극의 원인은 내 뜻대로 살려고 하는 방종한 삶에 기인한 것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종이 되지 아니하면 마귀의 종이 되고, 죄의 종이 되고 따라서 비극은 끊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누가복음 15장에 탕자의 비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면 이 탕자와 같은 신체가 되며 우리의 삶에는 비극만이 오고 따라서 불행해지고 참 평안과 참 행복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자기의 뜻을 꺾어 버리고 하나님께 스스로 복종하려고 할 때 그는 가장 위대한 삶을 살 수 있고 진정한 자유를 소유한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내 마음대로 살아 자기의 종이 되면 그 삶을 후회하는 날이 분명코 오고 말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순종하며 그의 뜻대로 사는 삶에는 어떤 비극도 후회도 없습니다. 마귀는 처음에는 달콤한 맛을 갖다 주지만 후에는 몇 천배 몇 만배의 쓰디쓴 맛을 가져다줍니다. 반대로 주님을 믿으면 처음에는 부자유스럽지만 참고, 믿고, 견디면 후에는 수천 배, 수만 배의 단맛을 얻게 됩니다.

2. 형제와 이웃간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고 했습니다. 알버트 슈바이처는 많은 학위를 가지고 있으나 그는 누구도 돌보지 않은 아프리카 람바레네라는 곳에 가서 그곳의 토인들과 식인종들을 치료해 주면서 일평생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를 가리켜 20세기의 태양이라고 합니다. 어느날 청년 하나가 슈바이처 박사에게 “인생을 참 행복하게 사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의 대답은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사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비결이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나 혼자의 행복을 위해 산다면 오히려 불행해지고 원망과 불평만이 그 속에 가득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고 남을 위해 살려고 하면 그에게는 진정한 만족과, 평안과, 행복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사람이 위대하다 함은 학식과, 권세와,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가 얼마나 남을 위해 살았느냐 하는 척도에 따라 결정되는 것입니다. 개인이나 가정에서나 교회에서 남이 나를 알아주기만을 바란다면 개인이나, 가정이나, 교회는 불행한 삶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섬겨 보겠다고 하는 마음의 자세를 갖게 될 때 그곳은 참 기쁨과 행복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쓸데없이 높아져서 교만해지고 남이 나를 섬겨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삶의 자세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종의 도를 가르치셨습니다. 손수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이렇게 섬기는 교회가 은혜스러운 교회입니다.

3. 겸비한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종은 자기가 잘났다고 우쭐대거나 교만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겸비한 태도를 취하는 자입니다. 우리의 생활도 겸비한 자세를 취하는 자가 진정 복된 자요 지혜있는 자입니다. 잠 16:18-19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겸손한 자와 함께 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 하며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또 잠 11:2에서는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약 4:6에서는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교만한 사람들이 모인 가정은 항상 불화, 불목하고 분쟁이 그치지 않습니다. 서로 자기가 옳다고 하고 자기가 제일이라고 하기 때문에 그런 가정과 교회에는 평화와 은혜가 있을 수 없습니다. 종은 자기 권리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랑을 얻고자 함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 기독교인이 살아야 하는 삶의 태도인 것입니다. 눅 17:9에 “종이 밭에서 돌아오면 명한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로 하여금 할 일을 한 것 뿐이라 할찌니라”고 주님께서 종의 도를 말씀하였습니다. 우리가 주의 일을 할 때에도 주님이 나를 택하여 일을 주신 것만 해도 감사해 할 줄 알아야 그가 참 신앙의 사람이요 그런 사람이 겸손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드린 종의 도를 명심하여서 종의 도를 따라 사는 성도들의 삶이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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