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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으로 기뻐하심 (눅 10: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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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어보면 주님께서 기뻐하셨다는 기록은 별로 없고 오히려 슬퍼하셨다는 내용을 많이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우리 주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셨다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기뻐하신 사실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죄인인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을 본문은 “어린 아이에게 나타내신 하나님의 지혜”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알려진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기쁨이 되십니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 더 이상 죄가 왕노릇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죄는 우리 인생의 비애의 원인이 됩니다. 죄 많은 이 세상은 근심된 일이 참으로 많고 평안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곤고한 일이 많고 안식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우리 인간들에게는 죄악이 쌓이고 쌓여 참 기쁨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시인은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만 있나이다”라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기쁨의 근원은 오직 주님뿐이십니다. 세상은 괴롭고, 세상은 안정되게 정착할 장소는 못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님의 기쁨의 이유가 되는 “하나님의 지혜를 어린 아이에게 나타내심”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이 세상에서 참다운 기쁨을 어떻게 가질 수 있나 생각해 봅시다.

1. 단순성의 지혜를 말합니다 어린 아이에게 나타내신 지혜는 단순성의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복잡한 철학자의 지혜가 아닙니다. 심령이 깨끗한 자에게만 보이는 지혜입니다. 주님께서는 산상보훈에서 일찌기 말씀하셨습니다. “심령이 깨끗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가 하나님을 볼 것이요.” 구약의 예레미야도 그때의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는 말이 “오 예루살렘아 너희 속을 깨끗이 하라 너희 속 마음에 있는 생각을 깨끗이 하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도 “깨끗한 마음과 거짓없는 믿음을 가지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원래 깨끗하고 단순했으나 에덴동산에서부터 하나님을 떠나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과 멀어졌고, 하나님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더럽게 하는 죄가 있지만 옛날부터 보통 일곱 가지로 생각합니다. 즉 ① 음욕 ② 탐심 ③ 시기 ④ 교만 ⑤ 미워하는 것 ⑥ 혈기 ⑦ 거짓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것이 우리 마음에 섞이면 마음이 더러워집니다. 썩어집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합니다. “일락을 좋아하는 사람은 살았으나 죽은 것이라” (딤전 5:6). “죄의 값은 사망이니라” (롬 6:23).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하다” (잠 23:7). 이렇게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어린이에게 이 지혜를 보여준 것을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어린 아이는 단순합니다. 전적으로 그 부모를 의지합니다. 사실 어린 아이는 부모없이 못 삽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다는 신앙을 가진 자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는 데에는 어린애처럼 인간의 선입주견을 버려야 합니다. 깨끗한 마음으로 돌아가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지혜를 보는 눈 21절에 “어린 아이에게 나타나 보이심을 감사하나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23-24절에는 “너희의 보는 것을 보는 눈이 복이 있도다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화의간산 무악석 선심도강진생어 (畵意看山 無惡石 禪心渡江盡生魚)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그림 그리려는 목적에서 산을 보면 미운 돌이 없고, 부처의 마음으로 강을 건니면 다 산 고기라」는 뜻입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반들반들한 다듬잇돈을 구하러 다니는 부인이야 기암괴석이 무비무용하고 밉게 보이나 화가로서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려면 무비경개 절승한 아름다운 그림 재료가 될 것입니다. 자비한 마음으로 금붕어를 볼 때는 산 고기로 보이나 술꾼들의 눈으로 보면 술안주감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사람에 따라 사물을 보는 바가 다 다릅니다. 무엇을 바로 보고 보지 못하는 것이 일생의 흥망의 열쇠가 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바로 보려면 보이는 것보다 되이지 않는 것, 영원한 것을 보라고 가르칩니다. (1) 먼저 내 자신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느냐”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자신을 먼저 볼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2) 타인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남의 단점을 보면 스스로 반성할 것이요 장점을 보면 모방을 해야 합니다. (3) 환경 또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산중에 토끼들이 한번은 회의를 열고 의논하기를 수많은 짐승 중에 우리가 제일 못나서 바삭거리는 소리만 나도 숨고 마음을 놓지 못하고 사니 그럴바에는 차라리 죽는 것이 좋다 하고 모두 산 아래에 있는 연못에 내려와 빠져 죽으려고 여럿이 내려왔습니다. 그러는 중 연못가에 있던 개구리떼들이 토끼가 뛰어오는 것이 무서워서 못 속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이 모양을 본 토끼는 그만 죽기를 정지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위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4) 내적인 면을 보아야 합니다. 겉만 의아서는 안됩니다. 속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 속담에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이 있습니다. 밖으로 보기에는 빛이 아름답고 먹음직해 보이지만 실상은 아무 맛도 없다는 말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좋다고 속까지 좋은 것은 아닙니다. 영적인 세계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이지 아니한 영적인 세계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왕은 눈에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컵 속에 있는 물은 깨끗하게 보이나 현미경으로 보면 그 안에 더러운 것이 가득 차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육안으로는 겉 모양만 보이지만 믿음의 눈은 깊은 속을 봅니다. 영적 세계를 바라봅니다. 미래의 일을 봅니다. 영원한 세계를 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눈을 가진 자는 낙심할 줄 모릅니다. 믿음의 눈을 가진 자는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으로 영원한 세계를 바라봅시다. 믿음으로 천국과 지옥을 바라봅시다. 여러분! 보이는 세계만 바라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고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고 영생을 얻어 살기를 바랍니다. 멀리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고후 4:18에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 했고, 롬 8:24-25에는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쳐다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땅에 있는 것들만 내려다보지 말고 위에 있는 것을 쳐다보고 안위를 얻으며 희망의 생활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마 13:10에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제 볼 바를 바로 보아서 늘 기쁨이 충만하게 넘치기를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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