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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윗의 소유를 여호와께서 악하게 봄 (삼하 11: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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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기에서 본문 27절에 “그러나 다윗의 소위를 여호와께서 악하게 여기시더라”고 한 것을 보게 됩니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다윗 왕의 숨은 죄를 아시고 그 모든 행위를 다 아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행위를 아시고 또 그 죄의 행위를 악하게 여기는 하나님께서 이 악을 어떻게 처단하시는지 우리는 이 다윗 왕의 범죄에서 배워야 합니다. 또 다윗의 이 하룻밤의 음행한 죄가 그 다음 어떤 죄를 다시 낳게 되었는지, 그 죄악의 만연성을 알아야 합니다. 밧세바가 잉태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그 소위를 악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죄책의 조처였습니다. 다윗이 아무리 지혜가 많고 도량이 넓다고 하더라도 밧세바가 임신했다는 소식에는 주저치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윗은 하룻밤 동안 연구를 거듭한 결과 한 계책을 생각해 내고 그 즉시 사람을 전지에 보내어서 총사령관 요압에게 “전과를 듣고자 하니 대장 우리야를 돌려보내라”고 명령 하였습니다. 이로써 다윗은 범죄의 그 단계에 들어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요압에게 전과를 듣고자 하니 우리야를 돌려 보내라는 그것이 벌써 거짓이요 술책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에게 있어서 전과를 듣는 것보다 여호와가 악하게 보시는 자기 소위를 처리하는 문제가 더 켰던 것입니다. 이같이 사람이 한번 무슨 범죄든지 범하기만 하면 또 다른 죄를 범하게 됩니다. 그 후 며칠 못되어서 왕명을 받은 우리야가 황급히 돌아와서 다윗 왕 앞에 입시(入待)했습니다. 본문 7절 말씀을 보면 “우리야가 이르매 다윗이 요압의 안부와 군사의 안부와 싸움이 어떠한가를 물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왕의 거짓된 물음입니다. 다윗은 또 우리야가 퇴거한 뒤에 그 즉시로 준비했던 “한상의 식물” 을 그 본가로 보냈습니다. 이것은 다윗이 신하 우리야를 사랑해서 보낸 것이 아닙니다. 먹고 취해서 그날 밤 아내 밧세바로 더불어 침상을 같이 하게 하려는 음모인 것입니다. 그래서 밧세바가 가진 죄악의 씨를 우리야에게서 생긴 것으로 알게 하고 자기 범죄를 덮으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 9절 말씀을 보면 우리야는 그날 밤 대궐간내에서 다른 모든 신하와 함께 노숙하면서 필승을 기원하면서 밤을 세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야 자신의 충의감에 의한 행사이지만, 다윗의 소위를 악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야를 뒤따라 주찬을 보내고 그 계획의 성공 여부를 엿보던 다윗에게 우리야가 지난밤 왕금 내에서 노숙했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이 때 다윗은 그의 충의에 감탄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원망스러웠습니다. 범죄한 다윗은 할 수 없이 우리야를 즉시 앞에 불러 놓고 “네가 어찌 네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습니다. 그 때 우리야가 대답하기를 “하나님의 법궤와 온 이스라엘 유대의 모든 장병이 장막 가운데 유하고 있는데 내가 감히 어찌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처와 같이 유하리까” 하면서 만고에 충신의 믿음직한 심정을 표하였습니다. 만약 우리야가 하나님처럼, 다윗의 소행을 모두 알았더면 이 때 이런 말을 하였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사람이기에 다윗의 소행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다윗의 그 술책을 몰랐기 때문에 어디까지든지 그를 왕으로 대하고 충의를 다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만약 다윗 왕이 신하의 아내를 취한 범죄 없이 그러한 우리야의 말을 들었다면 감격의 눈물을 흘렸을 텐데 범죄한 다윗에게는 그것이 오히려 원망스럽고 또 미웠던 것뿐입니다. 그래서 다윗 왕은 우리야를 보고 “오늘도 여기 있으라”고 지시한 뒤 그날 석양에 우리야를 불러 같이 먹고 마시면서 취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밤늦게 그를 집으로 보내면서 하는 말이 “경의 충의는 참으로 감사하오 그러나 남녀란 너무 오래 멀리해도 안 될 것이요 또 그냥 돌아가면 부인께서 섭섭하게 생각할 것이오” 하면서 집에 가서 유하기를 반명령으로 권하고 내보냈습니다. 그러나 우리야는 대궐문을 나가다가 거기 유하는 장법들과 함께 또 밤을 세우고 만 것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다시 엿들은 다윗은 우리야의 그 충성된 마음을 고맙게 여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야는 다윗에게 눈에 가시가 되고 말았습니다. 세상에서는 선량한 사람의 말과 행함이 악한 사람들에게 이같이 가시와 올무가 되기는 합니다. 이와 같이 왕 다윗은 자기 수단으로 죄를 감추려고 애를 썼지만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이제 다윗은 자신도 모르게 오직 악만이 심중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런 것입니다. 당초에는 선하였던 신앙의 사람이 한발 자욱 잘못 디디어 죄를 범하고 그것을 즉시 회개하지 못하면 이 다윗왕과 같이 변심되는 것입니다. 마침내 다윗 왕의 마음은 “우리야를 죽여버려서 후환이 없게 하는 것이 상책이다” 라고 최후의 악계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날 제 일선 총사령관인 요압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그 편지의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너희가 우리야를 앞세워 맹렬한 싸움을 하게 두고 너희는 뒤로 물러나서 저로 하여금 맞아 죽게 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는 다윗에게 있어서는 문자 그대로 극비이면서 또 다른 사람에게 알릴 수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오직 범죄한 다윗 왕의 비뚤어진 마음에서 나온 한 나라의 충신을 죽이는 모략이었습니다. 인간인 우리야는 다윗의 흉책을 알지 못하고 그냥 자기를 “죽이라”는 명령서를 가지고 전진으로 향하였습니다. 요압은 이 편지를 읽으면서 너무나 의외의 괴사라서 의혹을 가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왕의 명령이며, 한편 우리야가 무슨 죽을죄를 지었기에 선하신 다윗 왕에게 이러한 처단을 내리신 것이라는 생각으로 혼자 알고 순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 요압은 그 왕명대로 단행하였습니다. 그래서 충신 우리야는 싸우다가 애석하게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이번에야” 하고 패보를 기다리던 다윗에게 우리야가 죽었다는 보고를 가져왔습니다. 이 때 다윗 왕이 와서 보고하는 사자에게 하는 말이 “너는 요압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이 일로 인하여 걱정하지 말라 검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죽이느니라 그 성을 향하여 더 강하게 싸우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무슨 심정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 인간은 알 수가 없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전하던 그 사람도, 전해 듣는 요압도 그 진의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소위를 아시는 것입니다. 12:6에 “우리야의 처가 그 남편 우리야의 죽음을 듣고 위하여 통곡 하더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 우리야의 처가 우는 것은 남편 잃은 설음이라고만 알 뿐 이었습니다. 이같이 우리야가 죽음으로 다윗 왕의 악한 소위는 성공을 하고 다윗의 근심도 일단락이 된 것처럼 되었습니다. 그 때 다윗도 속으로 기뻐하였을 것입니다. 밧세바의 그 애곡하는 기한이 지나기를 기다리다가 다윗은 그를 궁으로 데려다 황후로 삼고 죄악의 침상을 매일 같이 꾸민 것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인간인 이 다윗의 소행은 그 당시 풍속이 이방인의 친구가 죽으면 그 처를 아내로 삼는 그 풍속에 따라서 행한 것이기에 다윗은 이 소위를 고맙게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호와는 “그 소행을 악하게 여기신 것입니다” 이로써 다윗은 의를 미워하고 죄를 기뻐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벌써 그는 의가 없는 죄인으로, 옛날의 성군 다윗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사람 앞에는 왕이라도 하나님은 그 소위를 악하게 여기신 것입니다. 그 소위를 악하게 여기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이중 삼중의 중죄를 지고 가는 저주의 자식이 되고 만 것입니다. 즉 음행의 죄, 거짓 죄, 살인 죄, 남의 유부녀를 탈취한 죄, 남을 울린 죄 등을 짊어진 악한 죄인이 되고 만 것입니다. 또 인간의 범죄는 결코 이 다윗이 법한 음행죄 뿐만 아니라 무릇 모든 죄는 다 그 시작이나 진행이나 죄가 죄를 낳으며 그 죄는 더 커지는 것이 일반인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이 성경이 아니였더면, 이 악한 다윗의 죄를 인간 누구든지 알지 못할 영원한 비밀이 될 뻔 했습니다. 다윗은 왕이 었던고로 어느 누가 “왕은 죄인이요” 할 수는 없던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인간계에 있어서 다윗은 영원한 의인이 될 뻔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이 모든 소위를 여호와가 악하게 여기시더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성경은 말씀하셨습니다. 실로 무소부재하시며 전지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만이 다윗의 숨은 죄를 아셨던 것입니다. 그 모든 다윗의 소위를 악하게 여기신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심사 언행은 여호와 앞에서 혹은 선으로, 혹은 악으로 판단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비밀이란 안간계의 일이지, 하나님 앞에서는 비밀이 없습니다. 인간의 모든 소행은 벌거벗은 수치와도 같이 하나님이 아시는 것 뿐입니다. 다윗은 우리야만 없애면 자기가 저지른 죄과를 아무도 모르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다윗의 큰 오산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리 권세가 있고 지위가 높고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도 넘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하나님과 함께 거닐던 다윗이, 아름다운 시를 읊으며 거문고를 타던 그가, 소박했던 그 목양자가 위대한 영력의 소지자이며 거룩한 영의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이 끊어오르는 정욕에 못 이겨서 그 받은 은혜를 짓밟아 버리고 말았으니 얼마나 놀랍고도 슬픈 일입니까 그리고 그것은 결코 다윗 하나만의 일에 그치지 않은 줄 압니다. 혹 누가 “나는 다윗과 같은 죄를 범한 일이 없다”고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또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나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불에 들어가게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에는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 살인이라 했습니다. 이것도 살인할 것이라 함이 아니고 살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다 다윗과 같은 범죄자들입니다. 다윗은 드러난 범죄자이고, 우리는 숨은 범죄자일 뿐입니다. 그러니 은혜받았다고 방심해서는 결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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