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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원수를 이김에 대하여 (시 2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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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수가 누구인지 바로 분별할 것(8절) 8절에 “네 손이 네 모든 원수를 발견함이여 네 오른손이 너를 미워하는 자를 발견하리로다”고 했습니다. 땅 위에는 원수 없이 사는 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신자들에게 필요한 지혜는 누가 참으로 우리의 원수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우리의 원수는 하나님과 원수 된 자들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의 친구이면 하나님과친구 된 사실 때문에 원수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본문 1-7절을 보면, 그 왕이 원수의 미움을 받게 된 이유가 그와 같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고(1절), 소원성취를 받았고 (3절), 영광과 생명을 받았고(3-5절),영구히 복을 받아서 동요치 않게 되었으나(6-7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수들은 일어났습니다 (8-12절). 하나님의 사람 아벨의 원수는 가인이었습니다. 가인은 아벨의 경건한 생활 때문에 아벨의 원수가 되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바울의 옳은 복음의 승리 때문에 그의 원수가 되었고, 중세대의 도미니칸 교란 사람들은 의인 위크리프의 옳은 복음을 주장하여 승리하여 나갈 때에 메리 여왕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대적하였습니다.

2. 우리가 하나님의 친구가 된 까닭에 원수가 일어났다면 그런 원 수는 무서워 할 것은 없습니다(9-12절.) 그런 원수는 하나님의 원수이니 만큼 나 자신이 그에게 대하여 싸우기 전에 하나님이 싸우십니다. 본문 9-12절은 하나님께서 그런 원수에게 대하여 어떻게 진멸하시는 광경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 한가지 뿐입니다. 즉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에 대한 오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육체적인사람들로 성령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형제들도 예수님의 사el을 오해하였습니다(요 7:1-9). 이와 같은 것은 지금도 이 세상 기독교에 대하여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조용히 하나님의 뜻을 잘 알아서 행동하려고 힘써야 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이 세상이 생각하는 좋은 기회들을 다 붙잡으려고 요동하지 않습니다. 그는 도리어 고요히 있어서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를 찾으며 은밀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으로 만족할 줄 압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세상의 눈에 맞추려 하지 말고 은밀히 하나님 앞에 선을 저축하는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 발라 맞춘 생활, 또는 세상의 하는 일을 따라 잡으려는 노력은 세상을 이기지 못합니다. 세상으로 그 할 일을 하게하고 나는 하나님 앞에서 내 갈 길을 가는 것입니다. 무엇이라고 하든지 두려워 할 것은 없습니다. 9-10절에 “네가 노할 때에 저희로 풀무 같게 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진노로 저희를 삼키시리니 불이 저희를 소멸하리로다 네가 저희 후손을 땅에서 멸함이여 저희 자손을 인생 중에서 끊으리로다” 이것이 원수들의 대적들은 마침내 근절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대적하는 교훈과 주권과 권세도 무너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화살이 그들의 얼굴을 향하여 겨누어질 것이며 그들은 당황하여 도망칠 것입니다(12절). 그것이 하나님과 정면으로 맞서는 대담한 대적들의 분깃입니다. 또한하나님의 진노의 불은 그들을 소멸시킬 것입니다. 그들을 풀무불에 던지실 뿐만 아니라 그들 자체를 불을 뿜는 화덕이나 용광로처럼 만드실 것입니다.

3. 이런 확신 속에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만군의 주님이며 영들의 아버지로서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위해 항상 나타나 주 실 것을 그리고 그를 위해 행해 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13절) 여기에서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더욱 의기양양하게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칭송하겠나이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실 때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 칭송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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