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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율법적인 순종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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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율법적인 종교를 갖고 있다.
어떤 이들은 그들 자신의 행위로 구원받을 것이라고 선언한다. 이러한 부류에 바리새인들이 포함된다. 여러분들이 율법의 행위와 믿음의 행위를 분별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기억해야 할 중요한 차이가 있다.
어떤 행위들은 율법적인 사고에서 행해지며 어떤 행위들은 믿음으로 행해진다. 순종의 대상이 무엇이든 순종에는 두 가지 원리가 항상 적용된다. 하나는 양심의 영향을 받는 기대와 두려움의 원리이다.
양심은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 판단해 내며 각자는 순종해야 한다는 기대와 두려움에 이끌려 간다. 또 하나의 원리는 확신과 사랑이다. 이것은 자녀가 언제나 기대와 두려움 속에서 순종하는 가정과 애정 어린 신뢰가 있는 가정의 비교에서 잘 설명되어진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사람에게 있어서도 그 순종이 피상적이든 아니든 적용되는 원리는 두 원리 중 하나이다. 수많은 일에서 각자의 이익이나, 성격, 천국과 지옥 같은 기대와 두려움이 나타난다.
이러한 사실은 율법에 대해 피상적으로 순종하거나 순응하는 원인이 된다. 그러나 깊은 신뢰는 인간으로 사랑의 동기에 하나님께 순종하게 한다. 이러한 순종이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유일한 순종이다.
하나님께서는 확실한 어떤 행위를 요구하시며 그것은 사랑에서 솟아난 것이어야 한다. 믿음의 순종 이외에는 하나님의 왕국에서 용납되는 순종이 있을 수 없다.
어떤 이들은 천국에서는 믿음이 존재하지 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천국에서는 하나님을 신뢰할 일도 그 분에게 헌신할 일도 없는 것처럼! 여기에 율법적인 종교와 기독교간의 커다란 차이가 있다.
율법적인 순종은 기대와 두려움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위선적이고 외면적이며 강제적이다. 복음적인 순종은 사랑의 지배를 받으며 정직하고 자유함을 주며 기쁨에 넘친 진실한 것이다.
율법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선의 법이라 부르는 것에 도전하며 자기 의를 행하면 칭의를 위해 율법의 행위를 의지한다. 하나님의 율법을 존중한다든지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행위가 아니라 단지 옳다고 믿기 때문에 하는 행위인 것이다.
율법적인 종교는 율법적 이해 위에 기초한 목표를 좇는 욕망의 종교이며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종교는 아니다. 그들은 죄를 정결케하는 것과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 자체에만 목표를 두며 지나치게 종교적이다.
그들의 목표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기대와 두려움에서 비롯된 목표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기독교는 단순한 목표 지상주의가 아닌 사랑 속에 내재된 실제적 선택일 것이다.
어떤 율법주의자들은 그리스도를 의지한다. 그러나 그것은 기대와 두려움에서 기인한 행위이므로 복음과는 관계없는 의지이다. 복음적인 의지가 외적인 행위 면에서 그것과 동일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동기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율법주의자들은 피상적인 종교적 생활에 끌려 다니며 괴롭고 고통스럽게 율법을 준수한다. 복음적인 성도는 사랑의 순종을 가능케 하는 하나님에 대한 애정 어린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의 순종은 내면의 감정에서 나온다. 의무에 끌려 다니지 않고 사랑하기 때문에 즐겁게 다가가며 영혼의 기쁨이 되기에 행한다.
율법주의자들은 믿음으로 의롭게 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으로 의로움에 이르러야 함을 깨닫지 못한다. 현대의 율법주의자들은 행위로 의롭게 되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이러한 것이 비성경적이라는 지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구원을 받을 길이 그리스도이심을 알고 있다.
그러나 믿음에 의한 구원이 유일한 길이라는 실제적인 믿음이 그들에게는 없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게 되길 기대하지만 실제로는 율법에 행위를 행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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