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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적의 조건(소명자의 자질) (눅 0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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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엇인지 형용할 수 없는 인생의 기갈을 느낀 무리들은 갈릴리 바다 게네사렛 호수까지 주님을 따라갔습니다. 주님은 자기 주위에 둘러 서 있는 인생들에게 무엇인가 산 말씀을 주시려고 인간의 손으로 지은 회당을 떠나시고 하나님의 자연 성전인 이곳 바닷가까지 오셨습니다. 그 바닷가에는 배 두 척이 있으며 먼동이 트는 새벽의 어부들은 그물을 씻고 잔잔한 갈릴리 바다의 파도는 출렁출렁 뱃전을 때리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 모습은 마치 한 폭의 그림과 같이 아름다운 정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그림과 같이 낭만적이지마는 않았습니다. 그물을 씻는 어부들은 낙심과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햇빛에 그을린 채로 검숭하고 힘이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지난 밤에 밤새껏 고기를 잡았으나 아무런 수확이 없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집의 처자들의 생계를 생각하며 힘없이 그물을 씻으며 자기들의 신세를 한탄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덧없는 시간과 더불어 흘러가는 인생! 인생이란 한숨과 수고 뿐, 죽으면 한 줌의 흙, 화장하면 한 줄기의 연기 뿐. 이것이 인생의 종국이 아니겠습니까 저 무한한 창공, 푸른 하늘과 말없는 바다와 접근한 끝없는 수평선, 태초 창조시부터 지금까지 피곤함이 없이 밀려왔다가 되돌아가는 바다 물결 소리, 파도, 이 자연과 더불어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싸워야 생활할 수 있는 어부들의 생애! 아마 이 어부들은 이와 같이 인생이 보잘것 없는 신세라는 것을 한탄하고 한숨지었을런지도 모릅니다. 이런 생의 긴박한 장소에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쏭을 들으려고 예수님에게 새벽 미명에 갈릴리로 밀려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호숫가의 두 척의 배와 그물 씻는 어부들을 보시고 베드로의 배인듯 한 배에 올라타시기를 청하여 이 배를 언덕에서 약간 떠나게 하여 앉아서 입을 열어 배 가운데서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은 기갈이 막심한 무리들에게 하늘의 오묘한 진리의 생수로 시원케 하시고 “깊은 데로 나가서 그물을 내리라” 하시니 베드로의 생각에는 “자, 예수님이 훌륭한 선생님이신 것은 벌써 아는 바이지만 고기 잡이하는 데에는 수십년 경험이 있는 우리 어부들만은 못하실텐데… 하여간 내 의견과 경험에는 상치되더라도 주님께서 명령하시니 대접상 그대로 해보자” 하는 심정으로 그물을 끌어 잡아 당기니 의외에도 많은 고기가 잡힌 것입니다. 이때 비로소 베드로는 무능력한 자기, 보잘것없는 자기, 죄 투성이인 자아를 발견하고 예수님과 자기를 비교하며 유한과 무한의 차이, 죄인과 성자의 차이를 인식하고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하고야 말았습니다. 그후 그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서 모든 것을 다 언덕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서 수제자가 된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자고 이래로 인생은 괴로움과 역경을 통하여 행복을 찾아보려고 노력과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지만 참다운 행복을 가져본 사람은 없었고 도리어 인생의 허무함과 짧음을 느끼고 영생을 갈망하게 되었습니다. 일찌기 학문을 사랑하는 고대 희랍 사람들은 인생에 대하여 생각하고, 우주에 대하여 연구하고 궁구하였는데, 소크라테스는 말하기를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고백하였으며, 인간은 자기를 알아야 할 것을 말하였습니다. 그후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철인이 인생에 대하여 연구를 거듭하여 왔지만 그 누구 한 사람도 영생의 비결을 말하여 준 철인은 없습니다. 그러나 시골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예수,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기에는 너무나도 초라하고 평범한 나사렛의 목수 예수만이 이 영생의 바른 길을 우리 인생에게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을 외치실 때 회당에서 뿐만 아니라 주로 산상, 바위 위, 바닷가 배 위, 빈들에서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피아노 소리가 없어도 바람 소리, 바람에 날리는 솔잎 소리, 성가대가 없더라도 갈릴리의 잔잔한 파도 소리를 들으면서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이런 자연의 예배당에서 갈릴리 어부 베드로가 그리스도의 수사도로서 부름을 받았던 것입니다. 흔히 세상에는 요행이라던가, 재수가 좋다라던가라는 말을 합니다. 아무개는 우연한 기회에 일확천금을 얻었다느니, 아무개는 아무개의 지원을 얻어 입신 출체를 했다느니 하는 유의 이야기입니다. 이런 말이 정말 있다고 하면 베드로야말로 세상에 다시 없는 요행자일 것입니다. 이날 아침 갈릴리 바다에서 우연히 예수를 만남으로 무명하고 무식했던 어부 베드로는 일약 대사도 베드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야말로 교회가 존재하는 한 주님의 수제자로 높은 존경과 추앙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성공하는 사람을 요행이라는 낱말 하나로 덮어버리려 하지만 사실 요행은 성공의 일면일 뿐이요, 남들이 알지 못하는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노력 없이 요행이라는 기회는 오지 않습니다. 노력하는 자에게 기회가 습니다. 기회가 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은 노력하기 때문에 기회가 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주님의 제자가 되었다고 하는 점은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보실 때 위대한 사실 몇 가지와 제자직을 감당할 인품이 있기에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입니다.

1. 베드로는 근면하였습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에서 잔뼈가 굵어진 사람입니다. 갈릴리 바다는 게네사렛 호수, 디베랴 바다, 이렇게 세 가지 이름으로 불리워집니다. 다같은 말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어부들은 밤이 맞도록 일을 한 사람입니다. 그들은 뒷정리를 하기 위해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평소의 근면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직책에 충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남이 곤히 평안히 잠자는 밤에도 그들은 고기를 잡아야 한다는 일념에 한 번, 두 번, 세 번…… 몇 번이고 거듭거듭 그물을 드리웠다, 거두웠다 하며 일을 계속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을지라도 다시 그 생업을 계속하려고 그물을 씻으며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평소에 자기 생업에 충실하고, 자기 직책에 대해서 근면한 사람을 주님은 택하시고 세우시는 것입니다. 일을 하지 않고 아까운 세월을 허송한다는 것은 자기의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일 것입니다. 학생은 공부하는 일에 근면해야 하고, 주부는 가사에 근면해야 합니다. 직장을 지키는 사람은 자기 직책에 대해서 성실해야 합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자기 생업에 근면하고 자기 책임을 위하여 근면하면 그런 사람은 주님의 일을 위해서 열심히 소명을 감당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또한 주의 일에도 역시 성실할 것입니다. 부지런한 사람이 예수를 잘 믿습니다. 노는 일에 열심하고 적게 노력하고 크게 거두기를 바라는 사람은 주의 일꾼이 되기에는 합당치 않습니다. 한 번 실패했다 해도 다시 재출발할 줄 아는 끈기있는 사람, 밤새도록 얻은 것이 없고 헛수고를 하였을지라도 다시 또 고기를 잡아보겠다는 일념으로 그물을 씻으며 준비하는 그 끈기와 변함없는 근면성, 주님께서는 바로 그것을 보시고 부르시어 세우셨던 것입니다. 농부가 밭에서 구슬같은 땀을 흘리면서 일하는 모습, 기술자가 공장에서 일에 집념하는 모습, 어부가 바닷가에서 고기 잡는 일에 열중하는 모습은 얼마나 신성하고 장하고 당당한 모습입니까 자기 직책에 대해서 부지런하며 자기 분수를 지킬 줄 알면 그 중심을 보시고 그 사람됨의 자질을 보시는 주님께서 큰 일을 위해서 다시 불러내실 것입니다.

2. 노력하는 정신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베드로는 지쳐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해 보고자 하는 자세가 되어 있었습니다. 대개의 사람은 인생의 실패에서 포기하고 마는 것입니다. 칠전팔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끝까지 해 보는 이 정신을 베드로는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실패했다고 결코 낙심해서는 안됩니다. 또 일어서야 합니다.

3. 불가능한 일을 가능으로 시도해 보고자 하는 정신이 있었습니다 밤은 지났습니다. 고기잡이에 적합한 밤이 지난 것입니다. 모든 사정이 불리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사정이야 어떠하던지간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시오니 우리는 다시 한번 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흔히 시기가 적절치 못하다고 일을 늦추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불가능한 시기이지만 주님께서 명령하실 때는 과감히 단행하여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대개 세상에는 천태만상으로 벌여 있는 억천만둘이 다 각각 자기의 요구가 있습니다. 산천초목은 양천가절을 요구하고, 수중거족은 물을 요구하고, 배고파 우는 아이는 젖을 요구하고, 부모는 착한 아이를 요구합니다. 어진 임금은 어진 신하를 요구하고, 어진 신하는 어진 임금을 요구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복음을 땅끝까지 증거할 훌륭한 제자를 요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나를 따르라 나는 너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도 주님의 부름에 합당한 훌륭한 제자, 축복받는 성도가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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