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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라합의 신앙과 구원 (수 0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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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13장에는 광야로부터 남쪽에 이르는 남부 가나안 지역을 정탐한 보고가 있습니다. 이 정탐의 결과 남쪽으로 공격하려던 계획은 좌절되고 동쪽으로부터 공격을 별도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다시 정탐군을 보냈습니다. 여기에 기록된 정탐군의 이야기는 매우 극적이요 흥미진진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강 동편 길갈에 진을 치고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 성을 공격하려고 두 사람이 정탐군을 보내었습니다. 이들은 성에 침입하여 기생 라합의 주막집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정탐군이 성 내에 들어왔다는 정보가 여리고 성 왕에게 보고되자 성문이 곧 닫히고 군대를 동원하여 정탐군을 색출하는 작업이 전개되었습니다

1. 라합의 신앙 라합은 이스라엘 백성의 얘기는 듣기는 하였으나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소식을 듣는 중에 마음의 변화를 입어 이스라엘 백성을 환영할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중 이스라엘 정탐군이 라합 집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 때 그녀는 당신들이 섬기는 신은 상천하지의 유일한 하나님이시라는 신앙을 정탐군들에게 고백했습니다. 롬 10:17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하신대로 라합은 하나님 백성의 역사를 듣는 중에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갖게 된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는 라합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군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 히(11:31),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이 아니냐” (약 2:25), 마침내 기생 라합은 다윗 왕의 고조모가 되었습니다. 이 사실은 믿음의 역사가 얼마나 놀라운가를 보여줍니다. 라합의 신앙은 9절에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준 것을 내가 아노라”, 10절의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역사하신 줄 내가 아노라”, 11절의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의 하나님이시라”고 하는데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특히 13절의 “진실한 표를 내게 달라”고 한 말은 라합의 확실한 믿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요 1:12-13에 “주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적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난 자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라합은 진정으로 영접할 줄 아는 여인이었습니다.

2. 진실한 언약의 표 믿음으로 이스라엘을 영접하는 기생 라합에게 하나님께서는 진실한 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붉은 줄이었습니다. 수 2:18에 “붉은 줄을 창문에 매고”라고 했습니다. 표적을 삼으라고 했습니다. 정탐군이 붉은 줄을 주려는 생각은 어디서 연유한 것입니까 저들의 조상이 애굽에서 구원받을 때에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라서 장자의 죽는 재앙을 면했던 역사적 사실에서 시작된 것이었던 것입니다(출 12장). 성경 창세기에서부터 계시록까지 우리는 붉은 줄을 보게 됩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결과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다 하였는데 피흘림이 없이는 가죽옷을 지을 수가 없습니다. 아벨이 제사를 드릴 때 양의 피를 볼 수 있으며, 레위기를 보면 당시의 제사 범례에 의하면 소, 양, 비둘기 등의 제물은 모두 피를 흘려 제사를 드린 붉은 줄이었습니다. 그리고 신약에 와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써 보혈을 흘리셨고, 예수 보혈을 믿는 자는 죄의 진노를 면하고 구원받는 붉은 줄이 된 것입니다. 기생 라합의 집 창문의 붉은 줄은 생명을 구원하는 표이니 붉은 줄은 구원받는 진실한 표인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보혈, 붉은 줄을 마음문에 달고 다니는 자는 생명을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3. 믿음의 보상 붉은 줄을 단 라합의 집을 나서서 거리를 다니는 자의 생명은 보장받지 못할 것을 지적한 것을 주의해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수 2:19에 “거리로 나가지 말라 거리로 나가면 생명을 보존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즉 신령한 뜻으로 교회를 떠나 자유롭게 행동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겠고 그 책임은 거리로 나가는 자가 져야 합니다. 수 6:25은 여리고 성 침략 당시의 붉은 줄이 생명 구원의 표시였음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신약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 보혈의 붉은 줄은 교회를 떠나 거리를 자유자제로 내왕하는 자에게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존 카아스탕 경은 수십년 전에 여리고 성을 발굴하던 중 라합의 집이 서있던 성벽의 일부분을 발견하였다고 합니다. 본래 라합의 집은 주객집이었으나 그러나 붉은 줄을 단 후 곧 여리고 성 함락 후에는 구원의 집, 찬송의 집, 믿음의 집이 되었습니다. 기생의 몸이었던 라합은 하나님 백성을 영접함으로서 메시야 조상 중의 한 사람으로 승화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보상이란 지각이 뛰어난 보배로운 것입니다. 이상에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는 라합의 신앙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비록 눈으로 보지 못하고 직접 체험하지 못했지만 듣기만 하고도 믿어 자신과 가족들을 구원받게 하였습니다. 또 라합은 구원의 진실한 표를 달라고 했습니다. 요구한 것입니다. 이것이 곧 라합의 믿음입니다. 믿음의 보상은 지각에 넘치는 축복입니다. 그리고 자신만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 집안에 머무는 자와 함께 구원을 얻습니다. 결국 라합은 메시야의 조상으로서 천만대에 걸쳐 존귀와 영광을 받았습니다. 라합의 얘기는 유대교나 그리스도교에서 아름다운 얘기로 남아 있습니다. 유대인의 전승에 의하면 예레미야를 포함한 여덟 예언자와 제사장의 조상이 되었다 하며 다윗 왕가의 조상이 되었고 메시야 족보에 오른 여인의 이름입니다. 기독교 신학자 오리겐은 그 얘기에다 재미있는 비유적인 해석을 붙였습니다. 그는 그 정탐군들을 예수님을 예시하기 위하여 그의 앞서 나타난 선구자 특히 세례 요한의 상징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라합은 세례 요한의 메시지에 반응을 나타낸 세리들과 죄인들의 표상이요, 창 밖으로 내려뜨린 붉은 줄은 구속하시는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한 것이요, 라합의 가족들이 집안에 있을 때에만 안전이 약속된 사실은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구원은 오직 교회 안에서만 발견된다는 사실을 제시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운명이 좌우될만한 결정적인 시기에 그들이 라합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라합의 행위가 그처럼 영원히 전해진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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