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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억해야 할 것과 잊어버려야 할 것 (전 05: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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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 “저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왔은즉 그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 것도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이것도 폐단이라 어떻게 왔든지 그대로 가리니 바람을 잡으려는 수고가 저에게 무엇이 유익하랴”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본문에서 인생이란 결국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인생이 취해야 할 태도는 일생을 취사 선택하여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 즉 잊어버릴 것은 잊어버리고, 기억해야 할 것은 기억하며 사는, 보다 질 높은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평범한 인생은 잊어버려야 할 것을 잊어버리지 못하고,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질 높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우리는 잊어버려야 할 것을 잊어버리지 못한 사람,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하지 못한 사람의 이야기와, 잊어버릴 것을 잊어버린 사람,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한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보다 질 높은 삶을 조명해 보고자 합니다.

1. 잊어버려야 할 것을 잊어버리지 못한 사람 우리는 이러한 사람의 대표적인 예를 롯의 아내의 이야기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19장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사건은 매우 널리 알려진 사건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은 마침내 하나님의 분노를 일으켰고, 하나님은 그 도시를 멸망키로 작정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도시에는 롯과 그 가족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은혜를 베푸사 롯과 그 가족만을 살려주기로 하고 그들에게 그 도시를 떠나 소알이라는 도시로 도망할 것을 지시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단 하나의 조건이 있었습니다. 뒤를 결코 돌아보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롯의 아내는 이 경고를 무시하고 뒤를 돌아보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소금기둥이 된 롯의 아내는 소돔과 고모라의 화려함과 사치함을 잊어버리지 못하고 뒤를 돌아본 것입니다. 잊어버려야 할 소돔과 고모라의 환락을 잊어버리지 못한 것입니다. 잊어버려야 할 것을 잊어버리지 못한 결과는 소금기둥이 된 영혼이었던 것입니다.

2.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하지 못한 사람 예수님의 제자였던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3년이나 함께 지냈던 사람입니다. 그는 3년이라는 세월 동안 예수님의 귀한 말씀을 들었고, 그의 능력을 직접 보았습니다. 그 뿐 아닙니다. 수많은 죄인들이 주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죄에서 해방되고 참 생명을 얻는 장면도 목격 하였습니다. 이런 그가 예수님의 말씀과 능력, 그리고 그의 사랑을 잊어버렸습니다. 반드시 기억하고, 반드시 명심해야 될 것들을 잊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를 차지하고 있던 마음은 오직 권력과 물질에 대한 탐욕뿐이었습니다. 권력과 물질에 대한 탐욕은 결국 그로 하여금 참된 생명이요, 참된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배신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예수그리스도가 없는 그의 생은 자신의 생명을 저주하고 끝내는 자기 생명을 스스로 끊어야만 하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기억해야 될 것을 잊어버림으로 멸망에 이른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3. 잊어버려야 할 것을 잊어버린 사람 앞에서 우리는 두 가지 종류의 불행한 인생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언급될 두 종류의 사람은 전도서 기자가 말씀한 인생의 허무함을 아는 지혜로운 사람들입니다. 이 두 종류의 사람들은 유한한 인생을 깨닫고 보다 높은 삶의 짐을 추구한 사람들입니다. 먼저 사도 바울과 같은 종류의 사람을 살펴보겠습니다. 바울은 원래 훌륭한 가문에 태어타서 롯의 아내가 그토록 추구했던 화려함과 부유함을 지녔고, 게다가 당시의 석학이었던 가말리엘의 문화에서 지식을 닦은 훌륭한 지식인이었습니다. 그는 종교적으로도 나무랄 데 없는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이러던 그가 어느 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그 분만이 우리 인생을 값지게 하고 유한한 인생 중에 붙들만한 가치 있는 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스스로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갈 2:20)는 고백까지 할 정도로 변모되게 되었습니다. 변모한 바울에게도 많은 유혹이 뒤따랐습니다. 화려함과 쾌락의 상징인 소돔과 고모라를 돌아보고 싶은 충동도, 자신의 훌륭한 지식을 뽐내고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수고의 헛됨을 알고 있었습니다. 잊어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날마다 자신을 쳐서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였습니다. 잊어버릴 것을 잊어버리게 해 달라고 눈물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마침내 바울은 잊어버릴 것을 잊어버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빌3:7-8의 말씀을 보십시오. 여기에 바울의 승리의 찬송이 담겨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도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라고 했습니다.

4.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한 사람 질 높은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한 또 한 사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다름 아닌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는 처음부터 훌륭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연약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도 가룟 유다와 같이 예수님을 3년 동안 섬겼고, 그 분의 말씀을 들었으며, 그 분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유다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배신한 사람입니다. 성경은 그의 배신이 세 번이나 반복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마 26:34). 이렇게 볼 때 그 역시 유다와 크게 다를 바 없이 비난받아야 마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오늘 날 그는 많은 신앙인들로부터 칭송을 받고 있습니다. 어떤 이유 때문입니까 그는 바로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하고 산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비록 연약하여 예수님을 배반했지만 그는 곧 자신의 잘못을 회개했습니다. 성경은 그의 참회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참회는 예수님의 지난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연약함을 일깨워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했을 뿐만 아니라 어떠한 순간에도 참된 회개를 하고 돌아오는 자를 사랑하시는 예순님의 사랑을 기억하였던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죄를 깨닫고 돌아오는 자를 받으셨던 예수님의 삶의 행적을 기억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기억하였습니다. 베드로의 삶의 변화는 바로 여기에서 출발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많은 것들을 기억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정작 기억해야 할 예수님을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쉽게 망각하고 사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은 예수님을 기억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바울과 같이 자신의 지식, 재산을 잊어버리고 베드로와 같이 예수님만을 기억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혹시 잊어야 할 것을 기억하고, 기억해야 할 것을 잊어버리고 살지 않습니까 이러한 삶은 전도자가 교훈한 바와 같이 헛된 삶입니다. 유한한 인생이 질 높은 삶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헛된 삶에 대한 기억은 잊어버리고 예수님만을 기억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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