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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스가랴가 본 교회상 (슥 0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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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 선지자는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와 함께 바벨론에서 돌아온 제사장 족에 속하는 사람입니다(슥 12장). 스가랴는 학개와 동시대의 선지자로서 학개와 함께 중단되었던 성전재건 사업을 안성하도록 격려하는 목적으로 예언하였습니다.스가랴는 1장에서 6장까지에서 8가지 이상을 보았는데 4장에서는 8째 이상 중에 5째 이상으로 순금 등대를 보았습니다. 이 순금 등대는 가깝게는 그 당시 장차 완성될 옐수렘 성진이요, 멀리는 신약시대에 나타날 새교회의 예표이며 하나님께서 보여준 지상의 이상적 교회상이라 할 것입니다. 예언자의 다섯 번째 비전은 앞에 나온 네 번째 비전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다섯 번째 비전에서 그는 그 꼭대기에 기름을 담은 주발을 가진 금등대와 일곱 등잔 그리고 일곱 등잔 위에 각각 심지를 가진 일곱 심판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좌우편에는 각각 감람나무 하나씩 서 있었습니다. 다시 천사는 그 질문과 대답을 변경하여 이 비전을 해석해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러나 해석하기 전에 하나님으로부터 스가랴에게 격려하는 특별한 메시지가 임합니다. 특별히 스룹바벨에게 임한 말씀은 곧 그의 앞에 놓인 성전 재건의 과업입니다. 성전 대지로부터 지워놓은 돌부스러기 산에 대하여 직접 말하는 형식에서 여호와는 “이 산이 평지가 되리라”고 말합니다. 더욱이 성전의 기초를 놓는 스룹바벨은 “그것에 은혜 은혜”하는 함성 가운데 스스로 머릿돌을 놓은 것입니다.스룹바벨에 대한 하나님의 발언은 간단합니다. “즉 이는 힘으로도 아니며 능으로도 아니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나니 여호와의 말씀이라.” 스룹바벨은 그에게 부가된 이 과업을 앞으로 성취할 것이지만 이는 사실상 하나님의 영에 의존한 문제입니다.이 비전에 대한 해석은 하나님의 영의 활동성을 지적하고 있는 점입니다. 이 비전에 나타난 일곱 등불은 온 땅을 두루 다니는 여호와의 눈으로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활동기구입니다. 그리고 두 감람나무와 또 이 감람나무에서 뻗어나온 두 가지, 그리고 두 금관은 “온 세상의 여호와의 옆에서 있는 기름부음을 받은 두 사람입니다.” 또는 이 둘은 영이신 하나님의 활동기구입니다. 이 두 기구는 사람으로서 스룹바벨이 그 당시 이해 한 대로 대제사장과 순인데 곧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입니다. 스룹바벨은 거룩한 영역의 대표자요, 여호수아는 정치적 영역의 대표자입니다. 이 두 가지 영역에 있어서 하나님은 온세상의 여호와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에의하여 하나님의 능력과 주권이 모든 인류에게 전달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렇듯 인간사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영적 본성을 분명히 인지한 곳은 구약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도행전의 바울서신에서 찾아볼 수 있는 신약성경 신앙의 원칙이 되었습니다. 동시에 이것은 현대 세계에서도 재발견하고 재음미 되어야 할 개념입니다.

1. 스가랴가 이상 중에 본 교회스가랴가 이상 중에 본 순금 등대는 교회상의 상징입니다. 스가랴가 본 순금 등대나 사도 요한이 본 계시록에 일곱 금촛대는 교회를 상징하는 같은 뜻입니다. 교회를 순금 등대로 또는 금촛대로 상징한 것은 첫째 고귀하고 불변색을 의미하고 둘째는 빛을 발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순금 등대라 하며 또한 순금 등대 같은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순금 등대 같은 교회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순금은 자랑하거나 고귀하다고 광고하지 않아도 세상 사람 모두 금은 고귀한 것으로 알아주듯이 교회가 참 교회 구실을 하면 자연히 세상에서 고귀하게 여겨짐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예루살렘 초대 교회를 행 2:40에 “사람이 다 두려워했다”고 했습니다. 또 행 2:47에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루살렘 교회는 그 만큼 고귀해졌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어떻게 그렇게 고귀한 교회가 되었습니까 성령 충만한 교회였고 사도의 가르침을 받은 교회였고 모이기와 기도하기를 힘쓴느 교회였고 기사와 표적으로 불우한 자를 도와준 교회였고 유무상통으로 사랑이 넘치는 교회였고 성전에 모이거나 집에 있거나 항상 기쁨과 찬송의 생활을 한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가 교회 구실을 했는고로 사람마다 우러러보며 두려워했고 온 백성이 입을 모아 칭송을 하는 고귀한 교회가 된 것입니다.순금 같은 교회란 무엇입니까 불변의 교회입니다. 금은 물이나 불이나 흙속에서도 불변색인 것과 같이 물 같은 유혹이나 불 같은 시험이나 진흙같이 더러운 환경 속에서도 믿음이 변치 않고 진리가 변치 않고 사랑이 변치 않는 교회가 곧 순금 같은 교회입니다. 변질된 교회, 즉 너무 신비적으로 기울어진 교회, 너무 지성주의로 기울어진 교회, 사신 신학(死神神學)을 외치는 교회, 세속주의를 부르짖는 교회는 변질된 교회입니다. 교회는 복음주의 뿐입니다. 변질된 교인은 개인적으로는 진실에 실패했고 단체적으로는 평화에 실패한 교회입니다. 교회를 왜 순금이라고만 하지 아니하고 순금 등대 또는 금촛대라 합니까 그 이유는 등대는 빛을 비취는 것이기 때문에 금촛대라 함은 빛의 사명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 교회요, 진리의 빛 선행의 빛을 비취는 것이 교회요, 빛과 같이 어두움을 내어 쫓고 광명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 교회요, 빛과 같이 길찾는 자에게 바른 길을 알려주는 것이 교회입니다. 이와 같이 광명의 빛을 비취는 교회를 곧 등대라 하는 것이빈다.

2. 교회 구조순금 등대의 구조를 살펴보면 맨꼭대기에 주발이 있고 또 등대에는 일곱 등잔이 있습니다. 등잔에는 일곱 금관이 있어서 꼭대기에 있는 주발과 연결되어 있고 등대 좌우편에는 두 감람나무가 서있으며 감람나무에서부터 뻗어내린 두 금관은 모두 등대 꼭대기에 있는 주발과 연결되어 있습니다.이제 이런 구조의 각 부분들이 무슨 역할을 합니까 두 감람나무는 등잔에 감람기름을 공급하기 위하여 서 있는 것인데 금빛 같은 감람기름은 먼저 두 금관을 통하여 등대 꼭대기에 있는 큰 주발에 공급하면 주발은 그 기름을 저장하였다가 다시 각 등잔과 견결되어 있는 일곱 금관을 통하여 각 등잔에 배급하므로 일곱 등장은 항상 광명한 빛을 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상적인 교회 구조라고 생각합니다. 14절에 “이 감람나무는 기름 발리운 자들이니 온 세사으이 주 앞에 모셔 섰는지라”고 했는데 그 때는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중심으로 종교면을 담당한 제사장 여호수아와 정치면을 담당한 총독 스룹바벨을 가리킴이요 순금 동대를 교회로 풀이 할 때는 두 감람나무를 신앙(종교)면과 행정(정치)면을 담당하는 교역자라 할 것입니다.그러므로 교회 구조에 있어서 교역자의 사명과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두 감람나무는 주 앞에 모셔 섰는지라 했으니 교역자는 항상 주 앞에 모셔 서야 합니다. 그리하여 주께 모든 것을 아뢰고(기도), 주의 말씀을 받으며 주의 명령에 순종하는 태도여야 합니다. 이것은 교역자의 하나님께 대한 자세를 보여준 것이요 감람기름을 금관으로 흘러내며 주발에 채운다는 것은 교역자는 항상 기름 같은 성령의 은사와 진리의 말씀과 믿음의 덕을 교회에 충족히 공급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역자는 교회에 대한 책임을 지되 감람나무 같은 책임을 다하며 교회는 교역자가 두 감람나무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주발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맨 꼭대기에 있는 것이니 교회의 수뇌부와 중추기관이니 총회나 노회요 지교회에서는 당회입니다. 이 주발은 감람나무에서 기름을 받아 가지고 일곱 등잔에 배급해 주는 것처럼 중추기관이 성령의 큰 은사가 충만하여 온 교회에 은혜가 흘러 넘쳐야 하는 것입니다. 주발에 기름이 없으면 각 등잔에도 기름이 없을 것이요 각 등잔에 기름이 클수록 좋고 또 구멍이 뚫리거나 틈이 생기지 않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에서도 수뇌부나 중추기관이 넓은 아량을 가지고 교인들을 포용해야 하며 신앙상 결함이나 교인간에 아무런 틈이라도 생기지 않아야 은혜가 넘치는 교회가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수뇌부나 중추기관은 주바르이 사명과 주발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주발의 역할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그리고 일곱 등잔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교회에 속한 교인들입니다. 등잔이 금관을 통하여 모두 주발에 연결되고 주발로부터 기름을 받는 것과 같이 교회와 교인간의 관계는 등잔과 주발과 두 감람나무의 관계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등대 구조를 중요한 것은 잔과 주발에 연결된 일곱 금관과 주발과 감람나무에 통하는 두 금관입니다. 만일 이같이 연락되고 서로 통하는 관이 없거나 있었다가도 끊어지는 날에는 두 감람나무가 주발이나 일곱 등잔이 무용지물이 될 것이요 동시에 등대가 구성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등대 각 부분에 연결된 관을 통하여 감람기름이 주발에 흘러내리고 주발의 기름이 각 등잔에 보급되어 불을 켜게 될 때 완전한 등대가 되고 등대가 등대 구실을 하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스가랴가 본 교회의 구조입니다. 실로 교회구조의 중요한 것은 서로 통하는 관이 있어야 합니다. 감람나무는 두 관으로 말미암아 주발에 통하고 주발은 일곱 관으로 말미암아 일곱 등잔에 통하는 것처럼 교역자의 교회 당회와 제직, 제직과 교인이 서로 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의와 사상과 정신과 생각과 마음과 뜻과 믿음과 은혜가 통하고 목적과 방법이 서로 통해야 교회는 일치하고 못할 것이 없으며 교회의 사명을 다하므로 교회가 교회 구실을 할 것입니다. 순금 등대와 같이 고귀 불변의 교회, 광명한 빛을 발하는 교회 이것이 스가랴가 본 교회의 모습이요, 교회의 구조입니다.

3. 교회의 완성슥 4:6-10에 말씀은 스룹바벨이 성전지대를 놓고 건축하다가 대적의 방해와 백성들의 무성의로 건축을 중단하고 있으나 필경 여호와의 신의 역사로 말미암아 큰 산이 평지되듯이 성전은 완성될 것이라고 격려하는 말씀입니다. “힘으로도 안되고 능으로도 안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는 말씀은 교회 일은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때는 큰 산도 평지가 되게 하심 같이 무난히 완성되라는 뜻입니다.스가랴는 이같이 여호와의 신으로 말미암아 완성될 교회상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반드시 완성됩니다. 우리 교회도 더 잘 하려다가 난관에 봉착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산이 평지 같이 될 줄로 믿습니다. 순금 등대 같은 교회상이나 교회구조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완성될 것이요, 교회당 건축의 완성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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