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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제된 사마리아 성읍 (왕하 07: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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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의 시민들 사이에 이 말이 퍼지자 그들은 떼를 지어 성문을 달려 나와 황폐한 진을 노략하였습니다. 이 장면은 이 이야기의 마지막 사건, 즉 엘리사의 예언을 회의적으로 응답을 했던 왕의 보좌관의 벌에 대한 필요한 해결을 줍니다. 그는 왕이 그에게 성을 지키는 책임을 주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주리고 포식하는 민중이 법석하여 성문을 나을 때에 그들 앞에 넘어져 눌리어 죽었습니다. 본문이 전하는 교훈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단순한 신뢰의 필요성, 즉 비록 그리스도인의 귀에 대해서 그 이야기의 양식에 유감스러운 점이 다소 있다 하더라도 들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1. 이스라엘 왕은 수리아 군의 철수를 확인토록 했습니다(12-16 절) 이스라엘 왕은 아람 군대가 그들의 진에 없다는 보고를 받고 신하들과 의논하면서 자기의 상황 판단을 말하기를 아람 군대가 들에 복병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왕은 자기의 불신앙과 조급함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잃고 맙니다. 그는 수리아 군이 도주한 이유를 알지 못했습니다. 왕과 신하들 중 어느 누구도 수리아 군인들이 철수하는 모습을 보거나 들었던 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지금 함정의 희생물이 되고 있는 줄 알고 이 희생물에서 모면하려는 것이었습니다. 13절에 “아직 성중에 있는 말 다섯 필을 취하고”라고 했습니다. “이 말들이 성중에 남아 있는 멸망한 이스라엘 온무리와 같으니라”란 문구는 “이 말들은 온 성중에 남아 있는 이스라엘 온 무리와 같고, 또한 죽어 버린 이스라엘 온 무리와도 같으니라”는 말입니다. 즉 이 마병들은 성안에 있어도 굶어 죽을 것이고, 정탐으로 나갔다가 와도 죽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만큼 그들은 성 안에 있어서 굶어 죽을 이스라엘의 온 무리와 같은 처지에 있었고, 이미 죽은 이스라엘 온 무리와도 같은 처지에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아무래도 죽음을 면키 어려우니 한 번 모험해서 정탐으로 나가는 것이 보람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 마병들의 입장은 죽음을 각오하는데 있어서 네 문둥이의 처지와 같습니다. 언제나 목숨을 걸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자는 하나님이 준비하신 축복을 받게 됩니다. 인간은 어차피 죽을 자들이므로 해 볼 일은 한 가지뿐인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죽음을 각오하는 자는 오히려 살게 되는 것입니다. 15절에 “아람 사람이 급히 도망하느라고 버린 의복과 간물이 길에 가득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급히 도망하게 된 원인은 그들로 하여금 “병거 소리와 말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하신 하나님의 기적적인 간섭 때문이었습니다. 여기 군물이라는 말은 그릇들, 도구들을 의미합니다.

2. 사마리아 성에 곡물이 풍성해졌다는 사실입니다(16절) 수리아 군이 만일 현대적인 전쟁법을 알았다면 그들이 자기들의 집과 천막을 가지고 떠날 수 없을 경우에는 적군의 손에 넘겨 주고 가느니 차라리 그것들을 불태워 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의 패망을 계획하였던 그 포위가 오히려 사마리아의 이득이 되도록 한 것과 이스라엘인들이 옛날 애굽인들의 전리품으로 인하여 부유해졌던 것과 같이 이제는 수리아의 전리품으로 인하여 부유해지도록 한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결정하신 일입니다. 그러므로 죄인들의 재물이 의인들의 손에 넘어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궁핍은 그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채워졌습니다. 엘리사의 말은 정확히 실현된 것입니다. 곧 고운 가루 한 스아가 한 세겔로 팔렸습니다. 그리고 엘리사의 말의 진위성을 의심하고 믿지 않던 장관은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진노도 분명히 성취됩니다. “믿는 자는 저주를 받지 않으리라”는 사실이 “믿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확고해졌습니다.

3. 이스라엘 왕은 이 장관에게 성문지기의 책임을 맡셨습니다(17 절) 왕은 그 장관을 지극히 믿었습니다. 그의 판단력과 신중성을 믿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사마리아 성온 식량이 풍부해지리라는 예언의 말대로 성취되었고 그 예언을 조롱한 장관이 죽으리라는 예언도 성취된 것입니다. 이 장관은 성문에서 사람들에게 밟혀 죽었습니다. 사람이 너무 많이 모이고 곡물 분배로 인하여 싸움이 치열해졌을 때 우연한 사고로 죽었던가, 아니면 그가 자기의 권력을 남용하고 그것 때문에 백성들이 자기들의 굶주림을 채우는데 그가 방해 인물이라고 지명되어 고의적으로 밟아 죽였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그것은 사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정의가 영화롭게 되었고, 엘리사의 말은 실현되었습니다. 그는 풍성한 곡물을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불신앙 때문에 침묵을 지켰고, 부끄러움을 당했습니다. “하늘의 문이 열리지”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곡물의 값은 싸졌고, 결국 그는 자기가 하나님께 범죄했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희롱을 당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이 사망의 약속으로 희릉을 당하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능력과 섭리의 말씀을 인간이 불신할 때 사람들은 하나님이 얼마나 깊이 분노하시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2) 인생과 그 즐거움이 얼마나 불확실한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백성들은 왕을 의지하던 장관을 발로 밟았습니다. 자기 스스로 국가의 지주요 받침목이라고 환상을 가지고 있던 자가 길거리의 진흙처럼 사람의 발에 밟히었습니다. (3)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확실한가를, 그리고 그 진노가 죄인과 하나님께 불순한 자의 머리 위에 분명히 임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모든 인간은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 두려움을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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