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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슬픔을 당한 나오미 (룻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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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이스라엘이 왕이 없어 혼란한 때가 아니라 사사들이 다스렸 던 때없습니다. 그러나 어느 사사 때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윗 왕의 증조모 이야기였으니 사사시대 초거였으리라고 보여지며 보아스의 어머니는 라합이라는 점이 참조됩니다. 그러므로 예후 사사시대였을 것이라고 추축됩니다. 사사들이 이스라엘 여러 성읍들을 다스리고 있을 때, 한편 하나님께서 는 베들레헴을 특별히 주시려고 우리 메시야신 왕을 유념하고 계셨습니 다. 바로 이 메시야는 라합과 룻 고부간의 후손으로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1. 그 땅에 흉년이 들다 유대 나라 베들레헴에 엘리멜렉이 살고 있었습니다. 베들레헴이란 떡집 이란 뜻을 가진 동리입니다. 엘리멜렉은 “ 하나님은 나의 왕이라 ” 라는 좋은 이름입니다. 떡집에서 하나님을 왕으로 삼고, 하나님의 지배와 보호 밑에서 평안히 살고 있는 엘리멜렉의 가정은 행복하였습니다. 그런데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제 26:19-20말씀에 의하면 죄에 내린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베들레헴의 기름진 땅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적군의 침략에도 하나님의 매에 채찍을 맞아도 회개치 않으니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여서 모든 옥토가 황폐케 된 것입니다. 여기에 기근으로 고생하는 한 가정의 이야기로, 엘리멜렉의 가정 이야 기입니다. 그 아내는 나오미였는데, 나오미란 뜻은 ‘ 즐거운 자 ’ 란 뜻입니다. 그 부부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큰아들 이름은 말론이요, 둘째아들 이름은 기룐이었습니다. 기근으로 배가 고팠던 그 가족은 요단강 건너 편 모압 지방으로 이주해 갔습니다(1, 2절). 이스라엘 땅에 기근이 들었을 때 모압 지방에는 풍족한 식량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압을 이스라엘 보다 더 사랑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이스라엘은 이 세상에서 고생해도 저 나라의 유업과 땅에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유업으로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예를 보아도 가나안 복지에서 이르는 곳마다 제단을 쌓고 하 나님께 제사하며 신앙으로 살았지만, 그 땅에 흉년이 드니 이방 애굽으로 내려간 일이 있습니다(창 12장). 그것은 죄의 댓가로 하나님께서 심판을 내리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당하는 흉년의 원인은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한재, 수재, 풍 재로 인하여 흉년이 드는데 이는 농부가 당하는 흉년이요, 불경기, 사업 실 패 등은 상인이 당하는 일종의 흉년과 같은 것입니다. 일터가 없는 것, 실 직 당하는 것은 노동자가 당하는 흉년이요, 학비 부족으로 휴학하는 것은 학생의 흉년입니다. 이는 인간들이 가끔 만나는 제각기 다른 종류의 흉년 들입니다. 이 흉년 때문에 인간들은 떠돌아다니며 살 길을 찾으려고 애쓰 는 것입니다. 엘리멜렉은 그의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그의 아내와 두 아들 과 함께 모압으로 간 것입니다. 딤전 5:8에 “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이다 ” 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버리고 떠나간 것을 일종의 배신이요, 신앙의 타락이었니습니다. 주린 창자를 채우기 위해 신령한 만나와 하늘의 떡을 포기하고 영적 생명을 내버린 것이니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며, 얼마나 가엾는 일입니까 이는 흉년을 만나 인간들이 곧 취하게 되는 상투적인 생활 방법이었습니다. 엘리멜렉의 경우는 더 그러했습니다. 가난하고 그리고 재산을 창진하여 이주했다면 이웃들과 친척들이 그를 도와야 하는 것이 율법이었습니다. 그러나 4:3-4절의 내용을 보니 풍족한 상태에 보아스 같은 유력자 이상의 유력한 자로써 떠났기 때문에 정당화시킬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엘리멜렉의 가정 정도라면 그 기근은 이겨 나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시기에 가면 풍족할 때가 오리라는 희망과 그것을 기다릴만한 참을성이 없었으니 그 행위가 바로 잘못이었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내려 주신 훌륭한 땅과 하나님을 모독한 일이요, 그의 형제들의 손을 악화시켰던 것입니다. 왜 하필이면 이방 땅 모압으로 엘리멜렉의 식구들이 이주했을까요 아 마 이스라엘의 므낫세 지파가 요단 건너편에 있는 모압 지방에서 풍족히 살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 님의 축복을 포기하고 세상 죄악의 길로 달리다가 크게 실패하고 멸망하는 사람들은 오늘날에도 많이 있습니다. 앉을 데, 못 앉을 데, 먹을 것, 못 먹 을 것, 갈 데, 못 갈 데, 할 것, 안 할 것을 가리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잠언이 말씀하시기를 게으른 자는 개미에게 가서 배우라고 말씀 하신 것처럼 지조없는 교인들은 그 말씀을 기억하며 열심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2. 불행의 연속 엘리멜렉은 모압 땅에서 죽었습니다. 나오미에게는 하늘 같이 믿었던 남편이 본국에서도 아니고 풍토와 습관이 다른 천리 타향에서 죽은 것입니 다. 그러나 이제 두 아들이 성년이 되었으므로 소망과 기대를 걸고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 아들은 그 지방의 처녀 오르바와 룻을 자부로 맞았습니다. 나오미는 슬픔과 외로움을 잊어버리고 두 아들과 두 자부를 보고 위안 을 받으며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역 땅 모압의 생활도 세월이 10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말론과 기룐 두 아들이 또 죽은 것입니다. 남편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과 외로움이 채 가 시기도 전에 두 아들이 또 죽었으니 그 집의 들보가 모두 부러진 셈입니다. 설상가상(雪上加霜)이요, 불행의 연속이었습니다. 흉년이 들어 남편 과 두 아들을 이끌고 모압 이역 땅에 갔다가 그만 홀로 남았으니 이 얼마나 딱하고 불행한 일입니까 그래서 나오미는 “ 나를 나오미 (즐거운 자)라고 칭하지 말고 마라(괴로움)이라 칭하라 이는 전능자가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라 ” 했습니다. 나오미에게는 괴로움의 충첩이요, 불행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는 엘리멜렉이 그 아들을 위해 가나안 이스라엘 처녀를 자부로 맞이하 지 않고 이방인 처녀를 취했던 것이 율법을 어기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이스라엘 땅에 되돌아 간 후에 결혼하기까지 기다리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 하더라도, 고향까지의 거리도 그렇게 멀지 않았음으로 거기에 사람을 보내어 자기들의 아내가 될 여자들을 데려올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모압 지방에 살게 되면 그의 아들들이 모압 사람들과 친족관계를 갖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엘리멜렉은 조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방 여자와 결혼하면 우상을 가져온다는 것을 생각 못했던 것입니다. 불행은 나오미에게 계속하여 다가왔던 것입니다. 이 나오미의 생애와 그의 당한 슬픔과 불행의 연속은 비단 나오미 한 사 람만의 불우한 운명이 아니요, 인류 전채의 비참한 운명의 축소인 것입니 다. 그러면 큰 불행과 비운에 빠진 나오미는 앞으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겠습니까 자포자기와 실망, 낙담 중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자기의 운명을 저주해야 합니까 그렇지 않으면 칠전팔기의 정신과 신앙을 가지고 재기의 길을 출발해야 하겠습니까 계속 말씀을 사모하는 중에 큰 은혜가 계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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