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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레미야의 호소 (애 02: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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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하여 처절하게 멸망한 유대를 바라보면서 “내 눈이 눈물에 상하여 내 창자가 끊으며 내 간이 땅에 쏟아졌으니”라고 고백했습니다. 그가 본 것이 무엇입니까 그가 들은 것이 무엇입니까 그는 무엇을 호소하고 있습니까 이제 본문을 통해서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의 호소와 탄식과 기도를 듣도록 하겠습니다.

1. 패망한 예루살렘의 비참한 상태(11-13절) (1) 예루살렘 성읍의 참상(11-12절) 대다수의 백성들이 매우 심한 심판인 기근으로 멸망합니다. 그리고 그 심판 아래 떨어지는 사람들의 경우는 가련합니다. 그러나 이 정도의 심판으로 그들을 회개에 이끌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포위의 긴장으로서 그들을 이 극한 상황으로 몰아넣으십니다. 그 자녀들이 어머니 품속에서 굶주려 죽었습니다. 자녀와 젖먹는 아이들은 순수하고 아무런 힘이 없는 상태이므로 “상한 자처처”, “길거리에 혼미할 때” 가장 먼저 구원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위하여 주어질 식물이 없으므로 굶주려 죽는 이가 칼에 죽는 자와 같이 많았습니다. 예레미야가 이런 예루살렘의 비참한 상태를 보고 눈이 다 상하도록 눈물을 흘렸고 너무 안타깝고 애가 타서 창자가 끊어 올랐고 간이 땅에 쏟아졌다고 표현했다. “간이 땅에 쏟아졌으니” 이것은 애간장이 탔다는 뜻인데 너무 심하게 애타는 마음을 가질 때는 간에 병이 생긴다고 합니다. 예레미야는 간이 녹아서 없어 질 정도가 되었습니다. “처녀 내 백성” 사랑스런 내 백성이라는 뜻도 있고 그리스도의 신부라는 뜻도 있습니다. (2) 치료를 위한 애가(13절) 이 위로들은 찾아지고 요청되어 집니다. “너의 파괴됨이 바다 같이 크니” 너무도 크고 넓은 지역이 파괴되었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조금 파괴되었으면 고치기가 쉬울 것이나 파괴된 지역이 바다와 같이 너무 넓기 때문에 복구할 수도 없고 그 처참한 상태가 너무 크기 때문에 위로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처녀 시온이여 무엇으로 네게 비교하며 너를 위로 할꼬 우리는 슬퍼하는 재앙을 만난 사람들을 위로하기를 힘써야 한다는 사실에 유의합시다. 우리는 우리의 고난받는 친구들에게 우리의 동정이 그들의 위로가 되도록 연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2. 거짓 선지자 때문에 유대가 망하게 되었습니다(14절) 거짓 선지자의 거친 경고와 미혹의 잔해를 보았습니다. 시온성의 거짓 선지자들의 어리석은 묵시로 인하여 “네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지 못하였도다”라고 탄식합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치 않다가 그 결과 양식이 떨어지고 하나님의 참된 말씀이 고갈되고 거짓 예언만 난무했으며 끝내는 광야 같이 허무하게 파괴되어 버렸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헛되고 어리석은 묵시를 보고서, 백성을 위하고 또한 백성에 대하여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발견한 것처럼 가장하고 어마어마한 환상을 본 것처럼 가장하여 그것을 그의 말씀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헛되고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들의 환상은 모두 다 그들 자신의 공상입니다. 그리고 만일 그들이 어떤 환상을 받았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다만 그들의 미친 두뇌의 소산이거나 열이 오른 상상의 산물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게으르고 주제 넘는 자신의 행동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예언자가 아니요 사람들의 예언자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보내지도 아니했고 그들은 하나님의 심정을 따르는 목자도 아니었습니다. 거짓 예언자들은 백성의 죄를 책망도 하지 않았고 회개하라고 외치지도 않았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백성들을 바른 길로 가르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백성들이 망하는 길과 포로되는 길로 가는 것을 보고도 돌이키려고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곁길로 가다가 망한 것입니다. 백성들이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을 돌이키게 해 주는 것이 선지자의 의무입니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들은 죄를 범해도 “평안하다” 하고 “복받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 백성들이 망하게 된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참선지 예레미야를 악하다고 핍박하며 바벨론 멍에를 안 메어도 된다고 하고 바벨론 포로가 2년내에 해방되어 속히 돌아온다고 하며 백성의 죄를 지적하지 않고 평안하다고만 가르쳤습니다. 백성들은 그것을 좋게 여겨 따라가다가 결국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3. 지나가는 자와 원수의 미소(15-16절) 그들의 이웃들은 그들을 비웃었습니다. “지나가는 자는 너를 향하여 박장했다”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은 이웃나라들 사이에 위대한 모습을 이루었고, 위대한 이름을 얻었으며, 위대한 세력을 가졌었습니다. 그는 주변에 있는 모든 나라에 공포와 선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성읍이 이렇게 쇠약해져서 성이 함락될 때 그들은 모두 기뻐 날뛰었습니다. 이방 나라들이 비웃기를 다른 어떤 곳보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선물을 받아 즐거워하던 성이 이 성이냐 그리고 이 성이 온 땅의 기쁨이냐 모든 그 기쁨과 영광이 지금은 어디 있느냐 이와 같이 사람들은 재난을 보고 웃음거리로 만들고 고통받는 자들에게 더 많은 고통을 추가한 것은 더 큰 죄였습니다. 예레미야는 가슴이 미여질 만큼 아픈 비웃음을 당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선민은 존재할 수 없다는 교훈을 얻게 됩니다. 이제 예루살렘이 망한 것을 보고 이방인들은 아주 멸시하는 태도로 비웃었습니다. 원수들은 유대 백성을 삼키려 하고 그 백성이 망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망하는 것을 보고 “우리가 바라던 날이 과연 이 날이라”고 하면서 좋아했습니다. “얻기도 하고” 얻었다는 말은 만났다는 뜻으로 예루살렘이 망하는 것을 보고 이제 만나 보았다는 것입니다. 원수들은 성도가 망하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가 망하는 것을 보면 아주 기뻐하고 자기들이 바라던 날이 왔다고 춤을 추며 기뻐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언제나 경성하여 범죄하지 말고 말씀에서 믿음으로 걸어나가야 자신이 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성도가 생명있는 신앙의 달음박질을 할 때에는 원수가 꼼짝 못하나 성도가 믿음 지키지 않고 죄중에 빠져서 타락하면 망하게 되고 원수들은 기뻐합니다.

4. 하나님의 징계를 깨닫고 부르짖으라 하심(17-19절) (1) 이 모든 일에 있어서 그들의 하나님은 그들에게 대항하여 나타나셨습니다. 17절에 “여호와께서 이미 정하신 일을 행하시고” 그것은 신중하고 심사숙고하여 결정된 것이고 경솔하거나 성급한 결정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 의사에 정확하게 응답할 수 있도록 계획된 것임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 대하여 고안하신 것은 그들을 위하여 설계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예언의 성취입니다. 그것은 곧 성경의 성취입니다. 하나님은 그가 옛날에 말씀하신 것을 이제 실행하시는 것입니다. 성도가 범죄했을 때 하나님께서 징계하기로 작정하십니다. “옛날에 명하신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 즉 모세 5경과 구약에 나타난 계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에 대하여 하나님의 계명대로 심판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생명의 복을 주시고 그 말씀을 어기는 자에게는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2) 마음을 주께 향하여 부르짖으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처녀 시온의 거민들에게 호소합니다. 무엇보다 18절에 “저의 마음이 주를 향하여 부르짖으라 밤낮으로 강물을 강처럼 흘릴지어다 스스로 쉬지 말고 네 눈동자로 쉬지 말게 할지어다.” 19절에 “밤 초경에 일어나 부르짖을지어다. “마음을 주께로 향하여 부르짖는 기도는 눈물의 기도 입니다. 밤낮 때를 가리지 않고 드리는 기도입니다. 시온 백성은 그 비참한 중에서도 하나님께 부르짖으라는 것입니다. 고난이 우연히 오거나 바벨론 군대가 나쁜 것이 아니고 자기들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징계가 온 것인줄 알고 주를 향하여 회개하며 부르짖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상태가 너무 비참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밤낮으로 눈물을 강처럼 흘리면서 회개하며 간절히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도와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밤초경에 부르짖고 새벽에도 부르짖고 쉬지말고 부르짖으면 하나님의 긍휼을 받습니다. 이렇게 부르짖는 자는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징계한 것은 그들을 멸망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회개시켜 복주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지경에 처했어도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께 회개하며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반드시 선한 것으로 갚아주십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숨쉴 사이 없을 정도로 이스라엘의 회개를 촉구합니다. 마음을 온통 쏟는 회개의 기도입니다. 마음 문을 열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전폭으로 의지하며 부르짖는 기도입니다. 성실과 진실을 다하여 부르짖는 기도입니다.

5. 선민의 비참한 상태를 하나님께 호소함(20-22절) (1) 자기 어미의 손으로 죽임을 당하고 먹혀지는 어린 아이들이 있는 참혹한 상태를 호소합니다(20절). 식량이 부족하므로 그 부녀들은 그들이 죽게 되었을 때 그 자신들의 몸의 열매, 즉 손으로 받든 그 자녀들까지도 먹었습니다. 이런 야만은 기근으로 인하여 초래되었습니다. (2) 많은 사람이 칼에 삼킨 바 되었습니다(21절). 특히 칼이 갈대아인의 잔인한 적들의 칼이 그들을 삼켰습니다. 그들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죽였으며, 그들은 남녀 성을 구별하지 않고 죽였습니다. 예루살렘 멸망시에 노인과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길바닥에 기진하여 엎드러졌고 처녀들과 소년들은 다 전쟁터에서 칼에 죽었습니다. 오늘날 젊은 남녀가 거친 선지자의 사상에 빠져 마귀의 칼인 그릇된 사상과 철학에 미혹되어 엎드러진 것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이 원수들을 소환하여 유대를 회개토록 하신 것입니다(22절). 지금 원수들은 전에 절기날에 그러하였던 것처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붐빕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 수에 아주 압도되었고 아무도 도망하거나 살아남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완전한 도살장이 되었습니다. “주께서 내 두려운 일을 사방에서 부르기를 절기에 무리를 부름 같이”라고 했습니다. “내 두려운 일”은 잔인한 원수와 칼과 기근 등을 의미합니다. 전에 유대 백성들이 절기에 각지에서 많은 무리가 몰려온 것처럼 이제는 두려워하는 일들이 사방에서 몰려들어 예루살렘 성을 멸망시킨 것을 말합니다. “내 손에 받들어 기르는 자”는 손에 받들어 기르는 아이들을 가리킵니다. 무자비하고 잔인한 원수가 쳐들어 올 때는 어린 아이들까진 다 죽입니다. 죄의 결과는 이처럼 비참한 것입니다. 참선지 예레미야가 여러 차례 회개하고 바로 서라고 했으나 그들이 듣지 않고 거짓 선지자의 말을 듣고 나가다가 마침내 망하여 비참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예레미야의 눈물어린 간구와 애타는 호소를 들었습니다. 예레미야의 애간장을 녹이는 듯한 호소를 들으며, 우리도 영혼의 잠에서 깨어나야 하겠습니다. 나태하고 안일한 신앙의 자리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주께 마음을 향합시다. 마음을 물 쏟듯 합시다. 자녀를 위해 나라를 위해 손을 듭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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