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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르우벤에 대한 축복 (창 4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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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9장은 야곱이 죽을 때가 가까워 오자 그의 열 두 아들들을 불러 모으고 그들의 장래에 대하여 축복하는 것입니다. 그 중에는 그들의 과거의 잘못들 책망하기도 하고, 그들의 장래 운명을 예언하기도 하였습니다. 창 49:1-2에 “ 너희는 모이라 ”, “ 너희는 모여 들으라 ” 라며 야곱은 임종시에 열 두 아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자기 주의에 모았습니다. 그리고 창 49:1에 “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 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말해 줄 수 없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 것인지를 말해 줄 수 있습니다.

1. 르우벤에 대한 축복(3-4절)

(1) 장자의 특권을 가졌습니다. “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나의 능력이요 나의 기력의 시작이라 위광이 초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도다 ” 라고 했습니다(3절). 르우벤은 열 두 형제 중 다른 형제들이 가지지 못한 고귀한 5대 특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르우벤은 히브리어로 “ 한 아들을 보라 ” 는 뜻입니다. 그는 장자였기 때문에 아버지의 자랑이요, 그 형제를 능가하는 힘을 가졌고 기력의 시작이요 형제들 보다 뛰여나는 품위와 위엄이 있었고, 우수하고 탁월한 자였으나 그는 범죄함으로 장자의 고귀한 특권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2) 장자의 특권을 상실했습니다. 4절에 “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치 못하리니 네가 아비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 라고 했습니다. 그는 아비의 기쁨이요, 가족의 가장이요, 형제의 웃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서모 빌하를 범죄하였음으로(창 35:22) 그의 모든 특권을 상실하고 그는 가족의 큰 수치가 되고 말았습니다. 르우벤이 야곱의 침상을 더럽힌 것은 40년 전이었으나 지금에 와서 기억시키면서 그의 장차 신분과 장래의 운명과 축복과 불가분리의 관계가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칠계명을 범한 죄는 긴 세월이 흘러도 인간의 양심에서 씻어버릴 수 없는 상처를 가지고 그에 따른 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르우벤은 그 아비의 침상을 더럽게 하였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요셉에게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자기 욕망을 조절하지 못하고 자신의 도덕성을 잘 다스리지 못한 결과장자의 명분을 상실했습니다. 야곱은 르우벤을 “ 물이 끓음 같도다 ” 라고 축복함은 불안정한 르우벤 지파가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의 선행이 불안정했읍니다. 그 동생 요셉이 형제들에게 해침받을 때 그는 장자의 특권과 책임을 느끼면서 “ 그 생명에는 해하지 말라 그에게 피를 흘리지 말라 구덩이에 던지고 손을 대지말라 ” 고 했습니다. 나중에 요셉이 구덩이에 없음을 보고 옷을 찢고 울면서 “ 나는 어디로 갈까 ” 하면서 대성통곡했습니다. 르우벤 지파의 신앙생활이 불안정했습니다.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는 요단강을 사이에 두고 40년간 재촉하던 신앙의 전진을 중단하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포기하며 요단 동편을 정착지로 택하였습니다. 그래서 항상 원수들의 침략과 공격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봉사에도 불안정을 볼 수 있습니다. 드보라의 시를 보면 르우벤 지파는 그 당시 지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확보하고 있으면서도 국가적 위난시에도 소집에 응하지 아니하고 수수방관하는 냉담한 태도를 취했습니다. 그래서 삿 5:23에 “ 메로스를 저주하라 거듭 거듭 그 거인을 저주하라 ” 고 했습니다. 그러나 르우벤은 야곱으로부터 구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신 33:6에 “ 르우벤은 살고 죽지 아니하고 그 인수가 적지 않기를 원하도다 ” 라고 기록되었있습니다. 여기 “ 살고 죽지 아니하고 ” 란 말은 생존권을 빼앗기지 않는 축복이고, “ 인수가 적지 않기를 원하도다 ” 한 것은 그 지파가 멸종되지 않는 축복을 가리킵니다. 계 7:5에 “ 과연 구원의 인맞은 열 두 지파 중에 르우벤 지파가 처음으로 나타냈고 ” 라고 했습니다. 그에게 커다란 결점이 있었지만 그 후 그는 회개하고 바르게 살아가려고 노력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게 됩니다.

2. 장자권에 대하여

신 21:17에 “ 장자는 자기의 소유에서 그에게는 두 몫을 줄 것이니 그는 자기의 기력의 시작이라 장자의 권리가 그에게 있음이니라 ” 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따르면 장자는 유산에 있어서 동생들 보다 배나 주도록 하나님이 계명으로 정하였습니다. 족장시대에 있어서 장자는 모든 형제와 부족을 거느리는 권세, 즉 왕력, 지배권을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창 27:29에 “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 고 했습니다. 특별히 가나안 땅을 소유할 수 있는 약속이 보장되어 있고, 동시에 부모가 죽기 전에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축복을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과 영교하여하나님이 그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는 특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장자권을 차지하도록 믿음에 굳게 서야 합니다.

3. 그런데 성경에는 차자가 장자되게 한 예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감추어진 섭리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성경에 가르친 바에의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예를 들어 가인, 이스마엘,에서, 르우벤은 다 장자였지만, 아벨, 이삭, 야곱, 요셉이 장자에서 임하는 축복을 받게되었 습니다. 민 16장에 나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이 당을 짓고, 모세와 아론을 대항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반항 이유는 르우벤이 장자이므로 장자에 속한 자녀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려야 하거늘 즉 왕이 되고 지도자가 되어야 하거늘 동생이 지배하다니 그런 불륜스러운 일이 어디 있냐고 항의하고 대들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땅이 갈라져 산 채로 음부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런 반항을 듣지 아니하셨습니까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1) 장자는 아담의 예표이며 차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입니 다. 고전 15:45-50의 말씀에서 첫 사람 아담은 육의 사람이요, 흙에 속한 사람이거니와 둘째 사람 예수 그리스도는 신령한 사람, 저 하늘에 속한 자라고 했습니다. “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다만 신령한 것으로 하나님의 유업을 받느니라 ” 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중생하지 않고 믿음이 없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장자권을 빼앗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만 믿음으로써 중생한 사람만이 장자에게 약속하신 유업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2) 생활관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창 25:27에 “ 야곱은 종용한 사람인고로 장막에 거하고 ” 라고 했습니다. 이는 장막에 살았다는 말이 아니라 장막에 앉아서 경건한 생활을 하더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장자권에 대한 이치를 깨달았습니다. 물질을 드리고, 시간을 드리고, 정력을 쏟고 최선을 다하여 믿음으로 장자권을 샀습니다. 그러나 에서는 들 사람으로 하나님보다 칼을 더 의지했습니다. 그것이 아버지 이삭을 통한 축복의 말씀에 의해서 그들의 운명이 확정되고 말았습니다. “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의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품성한 곡식과 포도주고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여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 고 한 이 말씀은 장자로서 주어진 정치, 경제, 종교에 대한 축복이었습니다. 오로지 그의 신앙에 의해서 야곱은 장자의 위치에 서고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에서는 장자권 상실과 함께 축복도 빼앗기고 동생으로 격하되었습니다. 창 27:39에 “ 너의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뜨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뜰 것이며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라 ” 고 했습니다. 그는 평소 하나님보다 칼을, 믿음보다는 기술을, 경건보다는 권력을 의지하였으므로 저주받고 버림받았습니다. 르우벤은 창 35:22에 그의 계모 빌하를 통간하므로 육의 사람으로서 근친상간의 죄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장자가 받을 온전한 복을 받지 못하고 고생을 많이 하고 오랜 세월을 두고 참회하다가 구원을 얻게 되는 자리에 나아갔습니다. 간음죄를 범했다고 멸망받는 것은 아니라 회개하도록 징계를 받습니다. 계 2:21-23에 간음죄에 대해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간음죄의 벌은 먼저는 병주시겠다는 것이며, 큰 환난에 던져 경제적인 파탄과 각양의 고난을 받겠다고 했으며, 그래도 회개치 않으면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일 것이라는 것입니다. 회개하면 저주는 거두시고 축복을 주실 것이나, 장자의 위치에서는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정욕을 따라 범죄하지말고 올바른 신앙인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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