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위로의 하나님 (사 50:1-3)

첨부 1


본문에 아브라함과 사라의 이름을 제시하면서 그들에게 주신 위로가 얼마나 확실한가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본문에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는 곧 아브라함과 사라를 가르킵니다. 유대인의 조상 아브라함은 처음에 자식 한 사람도 없었던 단신이었습니다. 그는 늙기까지 단신이었습니다. 사라는 폐경이 되어 도리어 아기를 출생할 수 없었을 때 약속으로 말미암아 이삭을 출생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축복으로 전 이스라엘의 출생의 뿌리가 되떴던 것을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기대할 수 없는 것을 이루시는 전능자이시며 의로우신 하나님이시므로 지금 유대 민족이 포로지에서 황폐되고 폐허가 되었지만 이제 여호와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주실 것이니 위로를 받으라고 하십니다. 우리 인생은 누구나 위로를 받아야 할 만큼 하나님 앞에 불쌍한 죄인인 것입니다. 인생은 약하고 세상은 험악합니다. 인생은 무지하고 잠시 있다 사라져 버리는 안개와 같은 존재입니다. 인생을 위로할 자는 위로를 받아 야 할 인생보다 더 지혜로운 자가 위로해 줄 수 있습니다. 힘이 있는 자가 위로해 줄 수 있습니다. 무소부재 하시고, 사랑이 한이 없고, 변치 않는 사 랑을 소유한 자가 위로해 줄 수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 아버지만이 위로 자가 되십니다.

1. 하나님은 누구를 위로해 주십니까 (1) 의를 좇는 자를 위로해 주십니다. 1절에 “의를 좇으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자는 의를 좇는 자들이었고, 의롭게 되고 거룩하게 되기를 매우 바라고 갈구하며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을 회복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을 수 있는 일을 열심히 추구하는 자들입니다. 옳은 길을 따라가는 자는 욕심이나, 인정이나, 사람의 풍속을 따라가 지 않습니다. 이사야는 의를 좇아가므로 조롱도 받았고, 핍박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위로는 세상 모든 핍박을 이기고도 남음 이 있었습니다. (2)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자를 구원하며 위로해 주십니다. 1절에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나를 들을찌어다”고 했습 니다. 오직 의의 길에서만 우리가 그를 발견할 것을 바라고서 그를 찾아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젊어서부터 늙기까지, 언』!1나 어 디서나 먼저 하나님을 찾아 감사하고, 하나님을 찾아 회개하고, 하나님을 찾아 부탁하고, 하나님을 찾아 헌신하는 자를 하나님은 위로해 주십니다. (3) 비천한 자를 위로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근심에 쌓여있는 하나님의 자녀에게 찾아와 위로해 주시니 그 위로 받은 자의 눈은 희망으로 빛날 것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에게는 위로 가 부족하나 하나님은 위로자로서 누구에게나 위로자가 됩니다. 하나님의 한 마디 위로의 말씀이 우리에게 큰 소망을 줍니다. 위로받을 자는 먼저 비천한 자를 위로하시는 주님에게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내 안 에 염려가 주의 위로로 내 영혼이 큰 즐거움으로 넘칠 것입니다. 하나님 의 한 마디 위로받는 자는 광야가 에덴동산 같이 되겠고, 사막이 여호와 의 동산과 같이 되고, 감사와 찬송이 넘치는 생활을 할 것입니다.

2. 기독교는 위로의 종교입니다 (1) 위로를 바라는 것이 인간입니다. 에덴 낙원을 이미 상실한 인간에게 기쁨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부귀의 사람 솔로몬의 뒤에도 눈물이 따르고, 의인 욥에게도 고통이 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빈부귀천 현우를 물론하고 다 각각의 슬픔과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니 누구나 다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참 위로는 어디에서부터 옵니까 사도 바울은 자기가 환란 중에서도 먼저 형제를 위로할 수 있는 것은 그 가 겉으로 보기에는 가엾은 자와 같은자 그 내성에는 넘치는 위로가 있어 서 남에게까지 미친 것입니다. (2) 위로의 근원 1) 하나님은 아버지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아는 신앙은 구약 때에는 나타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의 아버지라고 불렀으나, 개인의 아버지로서는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오션서 아버지라고 부르고 가르치셨습니다. 바울도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라고 부르고 또 우리들의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의 아버지이심으로 우리의 위로자란 말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약한 인간에게 최대의 위로자이십니다. 오직 하나님을 아버지로 신앙하는 이는 신뢰로만 위로를 받습니다. 우리에게 범죄함이 있을 때에 회개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경륜이 성취되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경륜은 반드시 아들된 우리에게 전하신 것을 믿어야 합 너다. 하나님은 엄하실 뿐 아니라 자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2)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고후 1:3에 “자비의 하나님이시요 위로의 하나님이시라”고 하며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위로를 찬송하였습니다. 위로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므로 하나님에게로 좇아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에게 받는 위로도 있고, 자기 스스로 위로 받는 일도 있으며, 하나님에게서 위로 받는 일도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위로 중에 하나님에 게로부터 받는 위로야 말로 참 위로이며 또한 오늘날에서부터 영원한 내세에까지 받을 위로이니 하나님은 참 위로의 근원입니다. (3) 우리는 남을 위로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신자, 특히 교역자의 직분은 복음을 가르치는 외에 가장 중요한 직 분은 화목의 직분, 위로의 직분입니다. 바나바를 가르켜 권위자라고 한 것 과 같이 우리는 권위자라야 할 것입니다. 남을 위로하려면 내가 먼저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내게 생수가 있은 뒤에야 목마른 자에게 생수를 줄 수 있듯이 내 스스로 먼저 받은 위로가 있어야 곤한 자와 슬픈 자를 위로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바울의 처지는 이방인의 핍박과 본국인의 위협과 교회 내의 난문제와 병과 갇히움 등 여러 가지 곤란이 첩첩 쌓여서 남에게 위로를 받아야 할만한 처지이지만 그는 항상 남을 위로하는 생활을 계속하였습니다. 바울은 남에게 받은 위로가 풍성하였기 때문에 고후 1:4 에 “우리의 모든 환란 중에도 우리를 위로 하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남을 위로하는 직분에 대하여 바울과 같이 끝없이 큰 위로의 근 원을 믿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심령의 위로를 할 수 있음과 동시에 또한 물질 구제도 실시하지 않으면 안룁니다. 야고보는 말하기를 약 2:15-16 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 지 그에겐 이르러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않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물적 사역을 통하여 배고픔과 추위에 떠는 자에게 실제로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초대 교회에도 전도 다음에 구제 사업에 힘썼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바 위로를 생각하면서 이웃에게 심령적으로, 물질적으로 위로해 줄 수 있는 은혜가 계시기를 기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