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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회개와 신앙 (막 01: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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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은 세례 요한이 잡힌 후에 예수께서 유대 지방으로부터 갈릴리에 돌아오셔서 처음으로 복음을 전파하실 때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매우 간단하지만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말씀입니다. 그 가운데 네 가지 점을 말씀하신 것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첫째는 ‘때가 찼고’ 둘째는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셋째는 ‘회개하고’ 넷째는 ‘복음을 믿으라’ 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서 믿음의 순례를 하게 하셨습니다. 때가 찰 때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셨습니다. 때가 찰 때에 하나님께서 여러 선지자들을 보내서 하나님의 말씀을 택한 백성들에게 전파하셨습니다. 때가 찰 때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대로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가 오신 것은 여러분을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한 분이라도 아직까지 구원을 받지 못한 분이 있으면 알 것은 구원의 때가 이제 왔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을 기회는 이 때입니다. 때가 찼다고 하는 말은 그런 뜻입니다. 예수께서 강조하신 말씀은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택한 자를 불러 구원해서 그들 가운데 신령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목적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때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는 무슨 뜻입니까 이는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를 의미합니다. 이런 의미를 상징한 구절을 성경 가운데에서 세 구절을 생각해 보면, 요 18:36에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대답하실 때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으로 볼 때 하나님 나라는 근본적으로 하나님 나라에 있습니다. 눅 17:20에 “하나님의 나라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으로 보면 하나님 나라는 하늘에서 주님과 함께 땅에 임하여 우리 심령 속에 건설됨을 알 수 있습니다. 롬 14:17에는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으로 보면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 나라가 임할 때에 의와 평강과 기쁨이 우리 마음속에 넘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하나님 나라가 온전히 임하기 위해서 항상 기도하라고 주기도문에 다음과 같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2) 앞으로 역사적인 어떤 날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온전히 임할 때가 있겠는데 그 때가 바로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리 주님께서 두 가지 조건을 분명하게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첫째 회개할, 둘째 복음을 믿으라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조건에 대해 살펴본다면 왜 먼저는 회개하라는 것인가 요한일서 1:8에 보면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 더러는 자기의 죄가 없다고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스스로 자기를 속이는 것입니다. 마 15:19에 보면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가고가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심령 속에는 이런 흉악한 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의의 나라요, 평강의 나라요, 기쁨의 나라인데 이런 흉악한 죄를 가진 자가 어떻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모든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첫째 요구하는 것은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오순절 날 베드로가 모든 사람들에게 한 첫 설교도 “너희가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하였습니다. 회개해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회개가 무엇이며,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회개에는 먼저 지적 요소가 삽입되어 있습니다. 이는 머리로 깨달아 아는 요소가 있음을 말합니다.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죄를 깨닫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성서의 위대한 인물 다윗 같은 사람도 무서운 간음죄와 살인죄를 짓고도 자기의 죄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자를 그냥 버려두지 않고 하나님께서 선지자 나단을 보내서 비유를 들어 설명하니 자기 죄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 요나와 같은 선지자의 명색이 있는 사람이라도 니느웨에 가서 복음 증거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려 반대로 서방 다시스로 향해 가다가 하나님께서 노하사 풍랑을 만나게 하고 바다에 던짐 받아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게 되니 그 때야 자기 죄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무서운 죄를 짓고 시험을 받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 시간 우리 심령을 감동시켜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는 그대로 나 자신을 보고 죄를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눈의 티는 보기 쉬워도 내 눈 속의 들보는 보기 어려운 것입니다. 예수의 수제자 베드로도 예수를 세 번 모른다고 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새벽 닭 울음소리를 듣고서야 예수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기억하며 죄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먼저 자기 죄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이 회개의 첫째 선행조건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얼마나 흉악한 죄인이라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다음 요소는 회개는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음에는 정적 요소가 있습니다. 통회하는 마음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참된 회개는 눈물이 있는 것입니다. 참된 회개의 예를 들어보면 베드로는 자기 죄를 깨닫고 밖에 나가 심히 통곡하였다고 했습니다(눅 22:62).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을 눈물로 씻고 자기 머리털로 씻었다고 했습니다.(눅 7:38) 성자 프랜시스는 다른 사람 보기에는 성자입니다. 그러나 그이가 하나님 앞에 앉아서 기도할 때에는 항상 자기의 부족한 것을 생각하고 너무 눈물을 흘리며 울어서 눈이 잘 보이지 않게 된 때가 종종 있었다고 전기에 기록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또한 회개는 죄를 깨닫는 지적 요소와 아프게 여기는 정적 요소가 있음과 동시에 결심하여 새 생활을 시작하는 의지적 요소가 있다는 것입니다. 죄를 미워하고 죄에서 떠나는 경건이 필요합니다. 죄를 깨달았으면 그 자리에 앉아 있지 않습니다. 탕자는 돼지 먹이를 먹던 자리에서 아버지께 돌아온 것입니다. 결심하여 새 생활을 하게 하는 것은 회개입니다. 그래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복음을 믿으라”입니다. 복음이라는 뜻은 기쁜 소식이라는 말입니다. 좋은 소식, 예수에 대한 소식입니다. 복음은 예수에 대한 얘기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교훈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권능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준 계시를 믿어야 합니다. 삼위일체이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의 십자가 보혈이 내 죄를 구속해 주심을 믿어야 합니다. 믿는다는 말은 머리로만 믿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의지한다는 뜻입니다. 이 예수님을 온전히 내 구주로 알고 그에게 내 생명 전체를 의지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또한 내 마음을 열어 영원의 생명이신 예수를 영접하라는 말입니다. 회개와 믿음, 이 두 가지는 구원에 절대 필요한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조건은 마치 수레의 두 바퀴와 같고 두 날개가 다 있어야 중심이 잡혀 공중을 나는 비행기와 같은 원리입니다. 분명히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이 말씀은 주님께서 권면으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명령이십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이 명령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은 구원을 얻고 순종치 않은 사람은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회개와 믿음을 내일로 미루지 마십시오. 내일은 내일에 속합니다. 내일이 우리에게 있을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분명한 것은 현재 뿐입니다. 이 시간 회개하고 복음을 믿읍시다. 저는 장례식을 올해 많이 참석했습니다. 가장 엄숙한 그런 자리에 임할 때마다 항상 제 마음 가운데 스며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인생이 얼마나 무심한가 인간생활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잠깐인가 그러나 그런 느낌만은 아닙니다. 교회에 출석하지 않은 분이라도 자녀가 교회 나오기 때문에 장례식을 거행할 때 이 분이 과연 구원을 얻었는가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구원을 얻을 때는 지금입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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