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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름과 영광이 충만한 성막 (출 40:3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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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40:34에 “그 후에 구름이 회막을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구름은 역경과 시련, 재난과 환란 등과 관련시켜서 생각을 합니다. 구름이 낄 때에는 어둡고 침울한 마음이 저절로 생기는 것처럼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사는 성도에게 구름이 주는 교훈은 언제나 소망과 아름다운 약속을 의미합니다. 똑같은 구름을 보면서 믿지 않은 사람들은 심판과 종말의 징조를 연관시키나 성도들은 하나님의 임재와 신령한 축복을 생각하게 됩니다. 구름에 관한 성서의 첫 기록은 노아 홍수 바로 이후에 무지개와 관련하여 찾아보게 됩니다. 즉 창 3:14-15에 “하나님께 내가 구름으로 하늘을 덮을 때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내가 나와 너희와 및 혈기있는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혈기있는 자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구름을 볼 때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구름은 축복의 단비를 가득히 품고 이것을 내려줌으로 생명이 소생케 되고 열매를 풍성히 맺게 됩니다. 성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의 구름 가운데서 삽니다. 구름이 높이 떠오르면 우리는 아버지와 함께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구름이 떠오르지 않으면 우리는 아버지와 함께 그곳에서 안식합니다. 우리 믿음의 조상들은 다 구름 아래에서 세례를 받고 신령한 식물과 음료를 먹고 마셨습니다(고전 10:1-4). 그러므로 항상 구름의 인도에 따라 움직이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성도들은 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하겠습니다.

1. 여호와 임재(34-35절) 구금이 성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였기에 모세가 성막에 들어가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구름이 성막 위를 덮은 것은 몇 가지 뜻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시 104:4에 “구름으로 자기 수레를 삼으시고 바람 날개로 다니시며……” 라고 했습니다. 사 19:1에 “여호와께서 빠른 구름을 타시고 임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구금이 성막을 덮는 것은 하나님께서 성막을 보호하신다는 뜻입니다. 또 성막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했는데 이것은 여호와께서 임재하시는 것을 구체적으로, 실증적으로 나타내시는 것이었습니다. 거룩하시고 영화로 우신 하나님께서 성막 안에 임재하시니 필연적으로 영광이 충만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성막에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 했습니다. 성막이 완성되기 이전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받았을 뿐이었지만 일단 성막이 완성된 후에는 여호와께서 안주의 장소를 찾아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거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말씀이 주어지고 성경이 완성된 오늘에 있어서는 말씀대로 사는 자의 심중에 주님이 거하시며 이들이 모인 집단적 공동체로서의 교회야말로 임재의 가시적 표상이 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막에 가득하였던 여호와의 영광이 신약에 와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히 1:3에 “예수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를 형상으로 보여주시는 분이시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영광을 보는 자는 하나님의 영광이 광채로 나타나시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요 14:9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라고 하셨습니다. 영광의 주님께서 교회에 거처를 삼으시고 계시기 까닭에 교회야말로 여호와의 짐이며 주님의 영광이 함께 하는 곳입니다.

2. 이스라엘의 행진의 신호(36-37절)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가는 길을 발행하였고 구름이 떠오르지 아니할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행진하지 아니하고 머물러 있었습니다. 민 9:21에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는 기간이 하루든지 이틀이든지 한달이든지 일년이든지 거기 머물러 있다가 구름이 떠오르는 날에야 행진하였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의 출발과 정지를 자기들의 판단과 뜻대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인도대로만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평하거나 자유 행동을 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구름이 떠오르기를 기다려서 행진하였습니다. 저들이 구름 신호를 잘 지킬 때에는 저들의 진로가 안전하였고 이를 어기는 경우는 저들에게 위험이 닥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모든 교통사고의 원인은 신호등의 불빛을 무시함에서 오는 것과 같이 성령의 불빛을 무시하는 자들은 의례 신앙 행로에 위험과 참패가 뒤따르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지시를 따랐던 것은 하나님께서 절대적으로 전능하신 능력으로 자기들을 보호하시고 지켜주시고 인도하여 주시는 것을 믿고 의지하고 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조금도 의심하거나 불평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기다려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행진하였던 것입니다. 히 5:8에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을 배워서 온전케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고난으로 순종을 배워서 온전케 되셨다는 말입니다. 때문에 주님은 짜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어 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을 기뻐하시고 순종을 제사보다 낫게 여기십니다. 그리고 순종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고 구원의 은혜를 주십니다.

3. 이스라엘의 보호가 된 구름 사막을 횡단코자 하는 자는 언제나 나침판이 필요하게 마련인 바 이는 그것이 곧 저들의 길을 안내해 주기 때문입니다.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 있어서 이스라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서 누구나 이를 친히 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구름기둥이 단지 방향제시의 나침판의 역활만을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막 지방의 기후 변화는 매우 혹심하여 낮에는 열사의 폭양으로 뜨거워 견딜 수 없으며, 밤에는 이와 반대로 한랭한 기후로 돌변하여 추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낮에는 구름이 방향을 제시하면서 뜨거운 햇빛을 막아 서늘하게 해 주었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방향을 제시함과 동시에 추워 떠는 자에게 따뜻하게 해 주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자기 백성들에게 형편에 따라서 모든 필요한 것을 주십니다. 광야에서 물이 필요하니까 반석에서 물을 내어 주셨고, 떡이 필요하니까 하늘에서 만나를 보내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방법이 모자라서 무엇을 못 주시거나 능력이 부족하여서 무엇을 못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시고자 하시는 일은 무엇이든지 다 이룰 수가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순종하는 자에게 모든 축복이 약속되었고 허락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의 특징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것이었으며 저가 순종하고 갈 바를 모르고 갔지만 언제나 여호와의 보호를 받게 되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리브가가 이삭에게 시집 올 때는 유모 드보라와 동행하였습니다. 늙은 종의 말을 듣고 생소한 땅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신랑 이삭을 만나러 가던 리브가는 성도의 과단성을 보여주는 것이요 그가 유모 드보라와 동행한 사실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 성도의 생활을 암시적으로 표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의 사막과 같은 광야 인생을 사는 성도들은 오직 성령의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인도를 받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의 보호하심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저 영적 가나안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자기 백성을 구름기둥으로 보호하시고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하늘의 축복을 다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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