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압살롬의 기념비 (삼하 18:16-18)

첨부 1


군대가 출전하기 전 다윗은 세 군대 장군에게 당부한 말 가운데서 “나를 위하여 소년 압살롬을 너그러히 대접하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의 경우 반란군의 두목은 바로 자기의 아들이었습니다. 반역하는 아들이라도 차마 허릴 수 없는 것이 부정(父情)이기에 출전에 앞서 다윗은 왕적 권위마저 잊어버린채 그야말로 애원하다시피 장병들에게 신신당부를 하였습니다. 이 날의 전투는 치열하여 양군은 암혈이 있는 지세와 잡목이 우거진 수풀에서 싸우는 병사에게는 실로 어려운 전투였지만 전황은 정부군측이 우세하여 결국 반란군은 전사자 2만명을 내게 되었는데, 그 중 반 수는 칼에 죽고, 반 수는 수풀에서 죽었습니다. 이리하여 압살롬은 노새를 타고 도망치다가 자랑하던 아름다운 장발이 상수리나무에 걸려 공중에 수직으로 매어 달리게 되었습니다. 이 왕경을 본 한 무명 병사가 요압 장군에게 이를 알리면서 왕의 부탁을 상기시켜 주었건만 우직한 요압의 단창은 기탄없이 압살롬의 심장을 찔렀고 뒤따라 그의 호위병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그를 타살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요압은 전투 종결의 신호 나팔을 불고 압살롬의 시체를 내려다가 수풀 속의 암혈 속에 던지고 그 위에 돌무더기를 쌓아 놓았던 것입니다. 압살롬은 일찌기 생전에 무자함을 인하여 왕곡(王谷)에다 자기의 기념비까지 세워서 화려한 무덤까지 만들어 놓았지만 이 패륜의 왕자는 비명에 요절하여 돌무더기 속에 묻히게 되어 오늘까지 반역자의 비참찬 운명을 말해 주며, 왕곡에 세워진 주인 없는 묘비만이 외로히 서 있게 되었습니다. 일면 요압은 충성심은 있으나 지혜가 없는 우직한 장군으로서, 왕의 마음을 몰라주는 자였습니다. 그는 압살롬과의 사원(私怨)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부왕께 반역한 사람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무사적 판단이 앞섰을 것입니다. 이런 판단으로 그는 압살롬을 죽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다윗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해서 다윗을 괴롭혔던 것입니다. 이것이 결국 후에 왕을 배신하는 요인이 됐습니다(왕상 2:28-34). 요압은 압살롬의 시체를 법에 따라 절차를 밟은 후 매장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그 시체를 잔인하게 노출시켜서 수풀 가운데 있는 큰 구덩이에 던지고 다윗에게 보고만 했습니다. 압살롬의 죽음은 그의 뼈 속에 있는 죄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의미합니다. 그들이 그의 시체 위에 돌무더기를 쌓아서 그의 생전에 지은 악행의 기념비로 삼았습니다. 이것은 패역한 자녀는 돌로 쳐 죽임이 마땅하다는 계명을 의미하고 있습니다(신 21:21). 교만한 자가 그 머리 속에 계획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교만한 자는 죽을 때 전에 환심을 끌었던 사람은 다 떠나게 되며 그의 부끄러움은 드러나게 됩니다. 압살롬은 자녀가 있었지만(삼하 14:27), 그러나 하나님이 모두 데려 갔습니다. 그는 자신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비석을 세웠으나 하나님은 대리석 대신에 무시무시한 돌무더기로 그의 기념을 삼으셨습니다. 그의 관심사는 자기 이름을 남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다윗의 아들이라는 이름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더 유명해지고 싶었습니다. 즉 압살롬은 자기 이름을 후대에 알려줄 아들이 없음을 한탄하고 돌비석을 하나 높이 세우고 자기가 죽은 후에 영원히 남겨 놓기 위하여 그 비석 이름을 압살롬의 기념비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했습니다. 압살롬은 자기가 죽은 다음 묻힐 무덤을 만들고 그 앞에다 묘비를 크게 세웠던 것이지만, 압살롬이 죽은 후 그 무덤에 들어가지 못하고 에브라임 골짜기에 버리운 바 되어서 비석 대신 돌무더기만 쌓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압살롬은 왕자로 태어나면서 자기가 생전에 소원했던 비석 앞에 묻히지 못하고 왜 비참하게 최후를 마치었는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압살롬은 공명심에 사로잡힌 사람입니다 압살롬은 어떻게 하면 자기 이름을 오는 세대에 영원히 남겨 놓을까 하는 공명심이 그의 전 인격을 지배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공명심의 노예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는 한 나라의 왕자로 태어나서 최대의 영광과 향락을 누렸을 뿐 아니라 그의 용모가 준수해서 전 국민에게 찬사를 받았고 그래서 인기가 최절정에 달하였지만 거기서 만족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압살롬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에브라임 골짜기에 압살롬의 비라는 커다란 비석을 세웠습니다. 그래도 그 공명심을 만족시키지 못해서 자기 아버지인 다윗에게 반역을 하여 왕의 자리를 빼앗으려고 했습니다. 이렇게 공명심이라고 하는 것은 고무풍선같이 자꾸만 부풀어 오르기 때문에 만족이라는 것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고무풍선은 터지고 마는 것입니다. 공명심에 사로잡히게 되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압살롬은 자기 아버지에게 반역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들이 생각하기는 공명심이 없으면 어떻게 우리가 향상할 수가 있고 발전할 수가 있느냐고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에 있어서나 사희생활에 있어서 공명심은 인류의 적입니다. 정치가들이 공명심에 사로잡히면 정치를 바로 할 수 없고, 종교가들이 공명심에 사로잡히면 본연의 사명을 다할 수 없고, 교육가들이 공명심에 사로잡히면 교육을 제대로 시킬 수 없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적인 견지에서 보면 공명심이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압살롬은 신앙적인 견지에서 본 것이 아니라 자신의 관점에서 보았기 때문에 공명심에 사로잡히게 되었던 것입니다.

2. 압살롬의 마음에는 종교가 없었습니다 그 당시 왕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기름을 부어 주시지 않으면 왕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사울 왕도 그러했고, 다윗도 그러했고, 솔로몬도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압살롬은 종교적인 아무런 수속이나 절차도 밟지 않고 자기의 권모술수로서 사람들은 모아 가지고 헤브론에서 자칭 왕으로 행세를 하였습니다. 압살롬은 무종교주의자였습니다. 만일 그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숭배하는 종교적인 신앙이 있었다면 자기의 동생을 죽이고서라도 자기의 공명심의 만족을 채우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기름 부음을 받은 아버지 다윗을 반역하지는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압살롬의 마음에는 종교가 없었고, 도덕이나 양심도 없었습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것입니다. 압살롬이 실패한 원인이 여기에 있습니다. 압살롬은 다윗같은 신앙의 가정에서 태어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육을 받고 자랐지마는 그의 마음에는 종교가 없었기에 자기와 피를 같이한 동생을 죽였으며, 자기의 부왕 다윗을 반역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압살롬의 생애를 통해서 주시는 교훈이 큽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을 보고 계신다는 것을 먼저 생각하여야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혼란한 사회 속에서 하나님이 없는 자처럼 살아서는 안되겠습니다. 제 2의 압살롬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