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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유대인이 부른 아니마밈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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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대인들은 유월절이 되면 꼭 아니마밈의 노래를 부릅니다. 노래 제목인 아니마밈은 히브리어로 “나는 믿는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노래는 본래 혹독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작사, 작곡된 노래였습니다. “나는 믿는다. 나의 메시아가 나를 돕기 위해서 반드시 나를 찾아오리라는 사실을” 그런데 그들은 자기의 동료들이 비참하게 가스실로 불려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다음절을 이렇게 슬프게 불렀습니다. “그런데 때때로 그 메시아는 너무 늦게 오신다.” 그러나 그 수용소 안에 있던 젊은 외과 의사 출신의 한 유대인은 이 노래 부르기를 거절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나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라는 다윗의 고백이 그의 믿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있기에 절대로 죽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수용소에 갇혀 죽을 수밖에 없고 언제 가스실로 데려갈지 모르는 상황 가운데서도 자신의 추한 모습을 다듬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동료들은 죽음을 받아들인 듯 체념하고 깊이 잠들어버린 한밤중에도 그는 홀로 일어나 어느 날 우연히 줍게 된 유리 파편 조각 하나를 날카롭게 갈아서 피가 날 정도로 면도를 했습니다. 그 다음 날 아침, 또 다시 죽음의 사자처럼 나치 군병들이 그들의 방을 찾아옵니다. 그런데 나치 군병들은 수염하나 없는 창백한 청년의 모습을 보고는 차마 그를 죽음의 가스실로 데려 가지 못하고 매번 다른 사람을 데리고 갔답니다. 왜냐하면 깨끗한 청년의 모습에서 삶의 강렬한 의지가 보여 죽이기에는 너무 아까웠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이 끝나고 그는 적은 수의 생존자들 중에 하나가 되어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향해 활짝 열려 있는 수용소의 문을 빠져 나오면서 아니마밈의 노래를 이렇게 고쳐 불렀습니다. “나는 믿는다. 나의 메시아가 나를 돕기 위해 반드시 나를 찾아오리라는 사실을. 그런데 사람들은 너무 서두른다. 사람들은 너무 서둘러 믿음을 포기한다.” 그 후 그의 일기가 세상에 공개되었는데 그 일기 속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고통 속에서 죽음을 택하는 것은 가장 쉽고 가장 나태한 방법이다. 죽음은 이렇게 서두를 것이 못된다. 죽음 앞에서 살아 보려는 부활의 의지, 이것이 새로운 창조이다.”전쟁이 끝나 그는 스웨덴으로 가서 병원을 개업했습니다. 그리고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친척들을 불러 놓고 이 가정만은 전혀 다른 아니마밈의 영가를 불렀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고 우리의 삶이 막혀 있을 때 사람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그리고 회의하면서 하나님은 내 삶을 간섭하지 않으시거나 너무 더디 오신다고 결론을 내려 버립니다. 그러나 이러한 절망의 한복판에서도 우리는 유대인 청년처럼 이렇게 노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닙니다. 그가 늦게 오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 서두르고 있을 따름입니다.” (이사야 4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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