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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요셉의 유종미 (창 50: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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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는 요셉의 별세를 끝으로 막을 내립니다. 요셉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3대 조부의 장점만을 한 몸에 지닌 구약의 대표적 인물이요, 이상적인 성도의 모형(상징)입니다. 요셉은 가정에서 꿈꾸는 소년으로, 남의 집에서 봉사하는 노예로, 옥중 죄인들 속에서 죄인으로, 궁중 어전에서 해몽하는 지혜자로, 노년에 운명하는 자로서도 흠잡을 데 없는 훌륭한 위인입니다. 요셉은 위로 하나님을 대하나 자신에 대해서나, 주인을 대하여나, 노예를 대하나, 부친을 대하나, 형제를 대하나, 왕을 대하나, 국민을 대하나, 불행한 역경에서나, 순경에서나, 언제, 어디서, 어떤 사람을 대하나 조금도 변하지 않는 신앙 인격의 소유자였습니다. 요셉은 높은 이상의 소유자였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꿈을 잘 꾸었으며 해몽 또한 잘했습니다. 그는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해 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상을 세우는 것입니다. 옛 말에도 정신일도 하사불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의 정신을 한곳에 집중하면 안 이루어지는 일이 없다는 말입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못 이룰 것이 없습니다. 요셉은 고난 중에도 인내했습니다. 우리가 높은 이상을 가질 때 필연 고통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적인 삶을 탄생하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모양이 됩니다. 진주도 조개 속에 모래가 들어갔을 때 혼신의 힘을 기울여 모래를 부드럽게 쌉니다. 여기서 탄생된 것이 진주입니다. 요셉은 갖은 고난 속에서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면서 그 시련을 이긴 것입니다. 요셉은 깊은 신앙이 있었기에 그 시련 가운데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창 50:20에 요셉의 형제들이 요셉을 팔았던 옛날의 사실에 대해서 복수나 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 요셉은 “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셨으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 라고 위로했습니다. 바로 요셉의 이 깊은 신앙이 그로 하여금 성공케 했습니다. 요셉은 이런 신앙으로 생활하였고 그의 생은 종말을 아름답게 맺 었습니다.

1. 효행의 미 창 37:13에 “ 요셉은 어려서 명령에 순종하였고 ” 라고 했고, 창 47:12에 “ 애굽 총리가 되어 영달할 때 성심으로 노부를 봉양하시었다 ” 고 했습니다. 야곱은 효자 요셉 덕분에 노경에 최대의 우대와 존경을 받으면서 다복하게 살다가 향년을 누리고 늙고 쇠약해져 하나님의 섭리대로 고요히 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창 50:1에 “ 요셉이 아비의 얼굴에 구푸려 울며 입맞추다 ” 라고 했습니다. 떠나간 영혼에게는 우리의 눈물과 입맞춤도 아무 소용 없는 일이나 남아 있는 유해에 우리의 경의를 표함으로써 떠나간 영혼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이요, 그의 몸이 훗날 주님의 재림과 아울러 영광스럽게 부활 변화할 것을 믿는 신앙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창 50:2-3에 “ 아비의 몸에 향 재료를 넣는데 40일이 걸렸고 70일동안 그를 위하여 곡하였다 ” 고 했습니다. 요셉은 수종 의사에게 시체를 방부조치 하도록 했습니다. 이것은 부친이 애굽에서 별세하였기 때문에 애굽 풍습을 따른 것이 아니라 부친의 유언에 따라 가나안 땅 막벨라 굴에 장사할 목적이었습니다. 교통이 불편한 그 당시 애굽에서 가나안 복지까지는 장장 300여리 길이었습니다. 애굽에서는 시체를 방부처리하는 미이라를 만드는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였다고 합니다. 본문에 의사라고 하는 것은 시체해부를 포함한 미이라 만드는 특수 기술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시체 방부 절차는 이러하였습니다. 죽은 사람의 비공을 통하여 뇌수를 긁어내고, 옆구리를 찢고 내장을 긁어낸 후 청결하게 하여 향료와 장비와 기름으로 채우고 혈관에는 액체를 주입하고 한달 동안 소금과 소다같은 강한 용액에 두었다가 종려나무 술로 씻은 다음에 40일 후에는 주단 등속의 천으로 그 신체를 잘 싸고 고무진액을 발라 흰천으로 다시 싸서 관에 넣는다고 합니다. 왕의 시체는 먼저 금관으로 만든 내관에 넣고 그 후에 돌로 만든 외관에 넣었다고 합니다. 요셉 시대의 미이라가 지금도 애굽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고 합니다. “ 70일 동안 그를 위해 애곡하였더라 ” 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곡하는 기간은 30일(민 20:29, 신 34:8)이요, 애굽 왕을 위 한애도 기간은 70일이었다고 디오더로스는 말하고 있습니다. 야곱을 위해서 70일간이나 애도했으니 국장의 대례로서 예우한 것입니다. 요셉은 부친의 유지를 받들어 가나안 땅에 매장할 것을 결심하고 바로 왕에게 “ 나로 올라가서 아버지를 장사하게 하소서 ” 라고 청원하여 허락을 얻었습니다. 여기서도 요셉의 겸손과 순종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로의 신임을 얻게 되었습니다. 평시에 부친이 소원하시던 대로 가나안 복지 선영의 묘실에 장사 지냈습니다. 요셉의 덕행 중에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지만 특별히 효행을 다한 미는 진실로 아름다운 것이었습니다.

2. 화목의 미(용서의 미) 형제의 우애와 화목을 도모하여 따뜻한 사랑을 나누게 됩니다. 요셉에게는 위로와 즐거움이요, 형제들에게는 영계요, 이로움이 되어왔습니다. 요셉은 야곱이 죽은 후 형제들을 향하여 “ 두려워 마옵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니라 ” 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형제의 화목과 관용과 용서해 주는 요셉의 인격에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요셉은 대인관계에 있어서 관대하고 보복하기를 싫어하고 용서하는 성품을 가진 것을 봅니다. 이 점이 요셉의 성격 중에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덕목입니다. “ 당신의 자식을 기르리이다 ” 라고 하는 적극적 사랑은 과연 요셉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는 신앙적인 모습입니다.

3. 죽음의 미 창 50:22-23에 “ 요셉이 일백 십세를 살며 에브라임의 자손 삼대를보았으며 므랏세의 아들 마길의 아들들도 요셉의 슬하에서 양육되었더라 ” 고 했습니다. 요셉은 애굽에서 장수하여 증손까지 자기 무릎에서 양육하는 즐거움을 맛보았습니다. 요셉은 아버지에게 지성으로 효성을 다하고, 형제들에게 위안과 자비와 화목을 베풀더니 계명에 약속한 “ 장수와 형통 ” 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요셉은 자기의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깨닫게 되자 형제들에게 유언을 했습니다. 창 50:24에 “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 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 고 했습니다. 요셉이 죽어가는 마당에 저들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 나는 애굽에서 죽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정녕 너희들을 찾아오tu서 너희들을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 내신다 ” 라고 했습니다. 애굽 땅에 정주하지 말라, 약속의 땅을 사모하라, 영광의 그 날을 대망하라는 것입니다. 요셉은 신앙으로 약속의 땅을 유업으로 받도록 훈계하였습니다. 바세르 월크스는 말하기를 “ 요셉의 이와 같은 미덕의 기초는 신앙이었다 ” 고 했습니다. 그리고 “ 요셉의 마음, 정신, 사상, 인격, 행동, 그 전부가 하나님이라는 보자기에 싸여 있다 ” 고 했습니다. 히 11:22에 “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해골을 위하여 명하였다 ” 고 했습니다. 신앙이란 무엇보다 미래를 믿는 신앙이 위대한 신앙이요, 면류관입니다. 창 50:25-26에 “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요셉이 죽으매 그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 고 했습니다. 야곱도 애굽에서 죽었고, 요셉도 애굽에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유해는 가나안 땅 막벨라 굴 선영에 매장되었고, 요셉의 유해는 방부처리하여 애굽에 입관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약 200년 후 출애굽시에 모세가 요셉의 해골을 취하여 출발하였고(출 13:19), 그 후 약 40년 후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요셉의 뼈를 세침 땅 막벨라 굴 선영에 장사 지냈습니다(수24:32). 야곱의 해골은 가나안 땅에서 그의 자손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표적이 되었고, 요셉의 해골은 그의 자손들과 함께 가나안 땅을 찾아가는 신앙의 증거가 되었습니다. 창세기는 창 1:1의 “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다 ” 는 말씀으로 시작하여, 창 50:26에 “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 는 말로 마쳤으니,창조에서 시작하여 사망으로 마친 비극의 역사가 아닙니다. 이는 창조에서 출발하여 미래의 부활 세계로 전진하는 신앙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창세기를 통하여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신앙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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