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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목수의 아들 예수 (마 13:5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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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천국 비유를 말씀하신 후에 고향을 방문하셨습니다. 주님께서 공생애에 들어가신 후 그의 교훈은 널리 인정되고, 명성은 두루 퍼져가고 사람마다 그의 행하신 이적과 기사를 찬양하던 때에 삼십년 동안이나 자라시던 나사렛 벽촌 고향에 돌아오셨습니다.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오셔서 고향 사람들에게 성경 말씀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이때 동리 사람들은 목수의 아들이라고 주님의 교훈을 거절하고 예수님을 배척하였다고 성경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눅 4:22에는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고 했습니다. 막 6:3에는 이 사람이 목수가 아니냐고 했습니다. 여기 예수를 배척한 자라는 말은 예수를 인하여 실족한지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맡의 뜻은 그들이 예수님의 육적 배경을 너무 잘 알아 그것이 그들을 넘어지게 했고, 그들이 예수님이 영적배경을 너무 몰라서 실족하고 배척하여 축복을 받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첫째, 사람이란 어려서 함께 자란 사람이 위대해지면 그 위대성을 인정하려 들지 않고 시기와 질투, 그리고 편견이 그들의 눈을 멀게 합니다. 둘째, 위대한 것을 평가하는 기준이 잘못 되었습니다. 그들은 메시야가 로마 제국의 왕보다 더 권위에 찬 제왕으로 나타날 줄 알았는데 일개 목수의 아들이 메시야라 하니 그들은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들의 편견이 눈을 멀게 했습니다. 셋째, 그들이 예수님을 육적으로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목수아들로만 생각하여 영적 배경과 공적이고 천래적인 사명 등에 대해서는 전혀 관찰하지도 아니하고 그를 잘 아는 척하였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천한 목수 아들이 되어서 목수 일에 종사했겠습니까 여기에는 의미심장한 진리가 담겨져 있습니다.

1. 노동을 귀하게 여긴 실제적 교훈입니다 노동을 경시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큰 오류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귀족이란 아무 노동도 하지 않는 자들이라고 생각한 때가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의복을 철따라 갈아입고 값비싼 사치품으로 몸을 단장하고 많은 사람을 집에다 두고 일을 시키면서 놀고먹으면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상적인 인물이요 표준적 인생으로 생애를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는 나사렛 벽촌에서 목수의 아들이며 그 자신이 목수로서 일을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목수의 직업에 종사하셨다는 사실만으로도 노동에 대한 사상과 인식은 크게 변하였습니다. 이 일로 말미암아 사회의 귀천과 지위는 바뀌어 지고 말았습니다. 존귀하던 것은 비천하여지고 비천하였던 것은 존귀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독생자를 목수의 가정에 탄생하게 하시고 목수의 직업을 택하게 하심으로 노동자 전체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땀을 흘리며 노동을 해보지 않고는 인생의 심오한 의미를 알 수 없습니다. 노동은 신성하고, 노동은 모든 행복의 시작이며 기초입니다. 인생 최대의 쾌락은 노동을 떠나서는 맛볼 수 없고 체험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는 노동을 중요히 여기는 종교입니다. 살후 3:10에서 “누구든지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노동에 대한 하나님의 준엄한 명령 중의 하나입니다.

2. 가정 봉사에 모범적 교훈입니다 나사렛의 목수인 예수를 바라볼 때 노동의 신성을 알게 되는 동시에 가정에서 모범적인 봉사를 한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30세 때 공생애에 들어가기까지 나사렛 벽촌에서 묵묵히 목수 일에 종사하시면서 가난한 가정의 생계를 유지하셨습니다. 그는 부모를 돕고 형제자매를 돌보면서 성실하게 살아가셨습니다. 오늘날 비극 중 비극은 부모의 고생을 자식들이 모르고, 남편의 고생을 부인이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서 모든 비극과 불행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입니다. 부모들의 고생을 자식들이, 남편의 고생을 아내가 동참하고, 협조하고, 받들어 주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축복이 있을 리가 없고 따라서 인생의 행복이 있을 리 만무한 것입니다. 나사렛 목수인 예수의 종교는 동고동락의 종교요, 수고와 희생과 봉사와 협동의 종교입니다. 무정한 자는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3. 환경의 만족에 모범적인 교훈 나사렛의 목수인 예수님을 바라볼 때 가정 봉사를 배우는 동시에 환경에 적응하는 자세를 배울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이 세상의 진정한 의의가 무엇인지, 인생의 참된 가치가 무엇인지를 배울 수가 있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이요, 지배하시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최대 보금자리는 이 세상이 아니고 저 하늘나라에 있는 낙원 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도 지상의 향락과 행복에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에게는 대리석 건물이나 판자집이나 초막이나 궁전이나 그것이 문제될 것이 없고 음식과 의복의 좋고 나쁨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로마제국의 무력도, 예루살렘의 교권도, 희랍의 철학도, 애굽의 부귀도 나사렛 예수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목수의 일터가 있고, 땀 흘릴 수 있는 노동이 있고, 성경과 찬송, 기도, 그리고 예배가 있으면 그것으로 예수는 족하였습니다. 나사렛 목수인 예수의 인생관은 극히 단순하고도 만족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을 본받아 우리들이 살고 있는 그 환경과 처지, 그리고 형편에서 사람다운 사람, 신자다운 신자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인생 최대의 쾌락은 성경 한 권과 호미 한 자루만으로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 구주 예수님은 나사렛의 목수였습니다. 옛날 관중이란 사람은 의식이 족해야 예절을 알고 창고가 넘쳐야 영욕(榮辱)을 안다고 말했습니다. 지당한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나사렛 목수의 아들 예수를 배척했으나 우리는 목수인 예수님 앞에 옷깃을 여미고 노동의 신성, 가정 봉사, 환경에 족함을 배워야 합니다. 오! 나사렛 벽촌의 작은 동네 목수 예수님이여! 나에게 이 위대한 삼대 진리를 깨닫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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