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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마 27:4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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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이 말씀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갈보리 산상의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 그 고통 중에 일곱 마디 하신 말씀 가운데 가장 깊은 고통의 심연에서 부르짖는 소리입니다. 예수의 모든 생각은 하나님의 뜻과 일치했으며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일은 하나님의 뜻에 합한 일 뿐이었고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한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셨습니다. 이 부르짖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지극한 절정에서의 부르짖음인 것입니다. 버림받는 것보다 더 슬픈 사실이었습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모든 친구들로부터 버림을 받아서 외톨박이가 됐다고 합시다. 얼마나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이 아프겠습니까 여기 한 아내가 병들고 가난하여 도울 자가 하나도 없는데 그 남편이 아내를 버려두고 영영히 떠나가 버렸다고 한다면 아내의 모습이 얼마나 불쌍하겠습니까 예수님은 가족들로부터 버림받았고 동네사람들에게도 버림받았으나 하나님만은 결코 예수님을 버린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예수의 생애에서 매 순간마다 접촉하고 교제해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의 고난 받는 순간은 하나님의 아들로서가 아니라 죄인으로서 버리심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큰 고통이기 때문에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 외친 것입니다.

1.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죄를 미워하시고 싫어하지만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 몸에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버린바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큰 사랑입니 다. 요 15:13에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 더 큰 사랑이 없나니”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손에는 저울이 있는데 한편에서는 세상을 달고 한편에서는 독자를 달고 저울질을 하시는데 이들 둘 중에 어느 것을 버리고 어느 것을 구할까, 어느 하나를 버리지 않으면 하나도 구할 수 없는 이 고충의 씨름이 4,000년간 하나님 가슴 속에서 저울질되어 왔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판결은 내렸습니다. 독자를 버리고 세상을 구하기로 한 것입니다. 요 3:16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의 대답이 될 것입니다.

2. 하나님의 공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 시기 때문에 죄를 그대로 두고 보실 수가 없으므로 그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기까지 하시면서 죄를 처리하신 공의의 하나님이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는데 믿고 받아들이지 아니하면 무서운 공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는 이 음성 속에서 하나님이 얼마나 공의의 하나님이며 무서운 하나님이신가를 알아야 합니다. 죄를 얼마나 미워하시고 차마 볼 수 없으셨기에 독생자까지 십자가에 처형하시면서 죄를 처리하셨겠습니까 사람은 반드시 한번 죽습니다. 죽은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날에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받지 않는 자들은 공의의 심판을 받아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발견했을 때에 남의 죄를 대신 져 주신 예수님도 아끼지 않고 형벌하셨거늘 다른 사람들의 죄야 말할 것 있겠습니까 사람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여러분! 하나님 만날 준비를 언제든지 해 두십시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우리는 힘써서 구원 얻지 못한 영혼들을 구원해야 할 것입니다. 중국에 해군 총독 「첸」이라는 사람이 켄톤이라는 곳에서 한 부흥회에 참석하였습니다. 그는 거기서 설교에 큰 감명을 받고 예수를 믿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래서 나눠주는 결신 신자카드에 이름을 적어내려고 했습니다. 그 옆에 있던 한 보좌관이 “왜 그렇게 급하십니까 나중에 천천히 적어내시지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첸 제독은 그 말을 뿌리치고 얼른 연필을 꺼내어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셔들입니다」라고 쓴 결신카드에 주소와 성명을 쓰고 싸인을 했습니다. 예배가 끝나자 그 부흥회 장소에서 나오는데 악당이 숨어 있다가 암살을 기도하여 총을 쏴 첸 총독은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맙니다. 첸 총독은 그때밖에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때 옆에 있던 사람의 권고를 뿌리치고 예수를 모셨기 때문에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오라. 오라. 사랑으로 부르실 때에 응답하지 않으면 죄의 문제를 해결 받지 못합니다. 그때의 형벌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3. 죄의 값을 대신 지신 것입니다 죄의 값은 무겁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 말씀은 시 22장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사 53:5에 “저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저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저가 형벌을 받는 것은 우리로 화평을 얻게 함이요 저가 채찍에 맞은 것은 우리 병을 고침이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대신 고통을 당하지 아니하시면 그 고통을 우리가 당하여야 하겠고, 저가 고통을 당하심으로 우리는 평안을 누리게 되었으니 이것이 우리의 고통을 대신하신 부르짖음입니다. 만일 주님께서 우리 고통을 짊어지시고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우리는 지옥에서 영원한 고통으로 고생할 것입니다. 어느 마을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어떤 어머니가 아이를 안고 길가에 쓰러졌습니다. 아이는 어머니의 젖꼭지를 물고 아무리 빨아도 젖이 나지 않자 기진하였습니다. 어머니가 정신을 차리고 자기 젖꼭지를 깨물어서 피를 내어 아이를 먹인 고로 어머니는 죽고 아이는 살았습니다. 아름답다. 한 성녀여! 거룩하다. 우리 주님의 사랑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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