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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윗이 요압의 충고를 받아들임 (삼하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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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살롬의 죽음 때문에 슬퍼하고 있다는 소식에 대한 소식이 아직도 일선에 남아 있는 요압 장군에게 들려지자 점차 온 군대에게 알려져, 이 날의 승리가 오히려 모든 백성들에게 슬픔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사기 충천하던 용사들을 앞세우고 승리의 개선을 하려 했던 군장 요압과 휘하 장병들은 승리의 목소리 대신 마치 패잔병들과 같이 성으로 숨어 들어가 비통하게 울부짖는 왕의 곡성을 들었습니다. 압살롬의 죽음을 슬퍼하는 다윗의 울음은 주위 사람들에게 이해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이름을 목매어 부른 것은 자연스러운 일로 아버지의 심정이라고 이해됩니다. 그러나 그가 이 때에 이스라엘 공동체가 당한 고난은 생각하지 않고 압살롬의 죽음만을 슬퍼하고 있는 것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압이 정의에 입각한 논리를 가지고 왕에게 충고하자 다윗은 즉시 순종하여 눈물을 거두고 백성의 기대에 응하였습니다. 그는 자기중심을 아시는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인 줄 알았으므로 사람 앞에서는 침묵하였습니다. 요압은 다윗 왕에게 간하여 말하기를 “왕과 그 일족의 생명을 구원한 신복들에게 영광 대신 수치를 안겨주고 반란군 두목의 죽음을 위하여 울고 있을 바에야 차라리 반대로 되었어야 할 것이라”고 불평을 토하면서 “이제라도 왕이 일어나 장병들을 위로하지 아니하면 백성들은 모두 흩어지고 왕은 더 큰 우환의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위협하듯 간하였던 것입니다. 요압이 다윗에게 잘못한 것이 많았으나 이 때에는 왕 앞에 바른 말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것을 사태로 바로 수습하도록 한 좋은 충고였습니다. 요압의 충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왕은 왕 자신과 그 가족을 구원해 준 신하들에게 부끄러움을 주고 있다(5절). (2) 왕은 자기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미워한다(6절). (3) 왕은 왕에게 반역했던 압살롬이 살고 왕에게 충성하는 신하들이 죽었더면 오히려 마땅하게 생각하였을 것이라고 함(6절). (4) 왕의 신하들을 위로하라고 함(7절). (5) 왕이 만일 나가서 신하들과 백성을 위로해 주지 않으면 이 날 밤으로 그들이 다 왕을 떠날 것이라(7절)고 했습니다. 요압의 이같은 말은 아주 강경하고 공의로운 논리였습니다. 집권자 앞에서 직언하는 자가 충성된 자입니다. 요압은 현재의 실정을 직언하면서 이제 곧 일어나 나가시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 하면서 다락에 앉아 울기만 할 때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곧 일어나 나가서 저들의 노고를 위로해 주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다윗이 울고만 있으면 자신에게도 위로가 없을 것이고, 장병들의 기쁨도 없어지고 맙니다. 즐거워하는 자들로 같이 즐거워 할 때 그 즐거움이 더하여지고 우는 자로 같이 울 때 그 슬픔이 덜하여짐은 사람의 상정인데, 다윗이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 요압이 이런 직언을 하여 하마터면 큰 화를 당할 것을, 어려움을 만회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 경고는 왕이 백성들을 위로해 주지 않으면 오늘 밤에 백성들이 왕을 떠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그 당할 화는 왕이 일생 당하였던 그 어떤 화 보다도 더 큰 화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대단히 다급한 장면으로 강한 권면이면서 경고적 발언입니다. 아무리 정에 약한 다윗 왕이지만 이 충고를 외면할 수는 없었습니다. 요압 자신도 이렇게 하시면 왕과 함께 있지 못하다는 말이며 요압 자신이 이제 다시 일어날 반란 쪽에 서든지, 다시 반란이 일어반다면 그 때에는 관계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사태는 대단히 심각해진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요압이야말로 공사 판단의 지혜도 있고, 정의심도 강하였지만 왕의 심정을 헤아릴 줄 몰랐고 그래서 왕을 위로하기 보다는 바른 소리를 했던 것입니다. 다윗과 압살롬의 부자간의 전쟁은 이겨봐야 서로 영광없는 승리였습니다. 골육상잔의 실패는 결국 비극만 남을 뿐입니다. 다윗은 요압의 충정을 받아들였는데, 옳은 말을 잘 받아들이는 것이 그의 고상한 덕입니다. 다윗이 이 때 “성문”에 앉은 것은 그가 백성을 위로하기 위하여 행동을 취한 것입니다. 왕이 성문에 앉은 일은 백성과의 대면에 있어 당시에 늘 있었던 일입니다. 압살롬 조차도 인망을 얻으려고 스스로 재판을 하석 주려고 한 것이 기록되어 있는데, 삼하 15:2에 “압살롬이 일찌기 일어나 성 문길 곁에 서서” 라고 했습니다. 성문에 앉든지, 서든지 하는 것은 공청회이거나, 서로 대화하거나 재판을 하게 되는 경우를 말합니다. 다윗은 사람들 앞에 슬퍼 보이지 않게 하려고 얼굴을 씻고,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슬픈 기색도 없이 성문 앞 대중 앞에 나타났습니다. 다윗 왕이 성문에 앉아 계시다는 소문이 온 백성에게 전해지자 모든 백성이 왕 앞으로 나왔습니다. 하마터면 모든 백성들이 다 흩어질 뻔 하였지만, 다윗이 생각을 돌이킴으로 일이 바로 되어졌으니 크게 다행스런 일입니다. 압살롬을 따르던 모든 무리들이 장막으로(7절) 도망갔다가 다 다윗에게로 돌아왔습니다. 손 아래 사람에 의하여 충고를 간을 때는 감정을 상하기도 하지만, 잘못을 깨닫거든 그 잘못을 인정하고 요구를 무조건 수락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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