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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불행한 영웅 사울 (삼상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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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서 독자는 사무엘의 예언자적 대인격과 다윗의 왕자적 대공로에 경탄하게 되지만, 용사 사울의 불행한 일생에 동정하는 이와 어진 요나단의 불행한 최후에 눈물을 흘리는 이는 적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성공자의 생애에서 배움이 많은 동시에 실패인의 생애에서도 또한 배움이 적지 아니합니다. 혹 사울 왕이 폭군이라는 인상을 가지기 쉬우나 그는 일대의 영걸임에 틀림없는 인물입니다. 두 영웅이 한 시대에, 한 역사에 병립하지 못하는 것은 역사의 원칙인지라 저가 다윗과 때와 장소와 업을 같이 하였으매 다윗의 경쟁자가 되기에는 많은 결점을 가졌던 것이 저의 불행이었습니다. 저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독무대에 서게 되었던들 사울 왕가는 보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이 저로 하여금 다윗 왕가의 터닦는 사람으로 세웠으니 사울의 왕업은 다윗 왕가의 예비역일 뿐이었습니다. 예수의 길잡이 세례 요한처럼, 바울의 선배 바나바처럼, 사울은 다윗의 적이 아니라 선구자입니다. 삼상 9:2에 “ 기스가 아들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 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는 더하더라 ” 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사울은 베냐민 지파 장사의 혈통을 받은 사람 중에 걸출이었습니다.

1. 나귀를 찾아 왕 위에 올라간 사울 아비의 나귀를 찾아 숩 땅 산야에 돌아 다니던 저는 이스라엘 최초의 왕좌를 물색하는 사무엘의 안광에 지나칠 수 없으리만치 준수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그의 머리에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위로써 약속하였습니다. 소년 사울이 집에 돌아가서 숙부에게 왕 위에 대하여 침묵하는 것 같은 행동이라든지, 저가 왕으로 제비 뽑혔을 때 반대자의 멸시를 모르는 체 하고 농촌에 돌아가 농사하면서 서서히 시기의 도래를 기다리는 것은 영웅의 소질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암목의 적병이 이스라엘을 위협하며 “ 너희 오른눈을 다 빼고 항복하고 서약하라 ” 고 모욕할 때 밭 갈던 소를 잡아 이스라엘 전국에 보내 군사를 구하고 홀연히 검을 뽑아들고 일어나는 청년 사울은 쾌히 태평 천하의 왕자의 기세를 보였습니다. 그래서 33만의 대군을 통솔하고 일격에 강적을 전멸하는 장군 사울은 능히 이스라엘을 중흥할만한 대무인의 역창을 나타내었습니다. 이에 저가 이스라엘 최초의 왕업자 됨에 반대할 자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노선지자 사무엘의 사회 아래 미스바에서 장엄한 즉위식이 거행되고 만민 만세의 최초의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이 때 사울의 반대당을 사형하자는 진언이 있었으나 사울은 거절하여 왕의 덕을 보여 주었습니다.

2. 신앙의 불합격된 사울 왕 사울이 왕이 된 것은 하나님이 저에게 새 마음을 준데 있고(삼상 10:9), 저가 전승자 되고 창업자 된 것은 하나님의 신이 그 맘에 크게 감동함에 있었습니다(11:6). 그러나 변태성이 많은 그가 즉위한지 1년이 못 넘어서 은혜를 잃어버리고 결점을 폭로하여 실패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사울이 즉위 2년에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때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압박하여 철공인을 한 사람도 두지 못하게 하여 사울 왕과 요나단 외에는 창검을 가진 자가 한 사람도 없을 정도입니다. 이런 형편에 블레셋 대군은 이스라엘 경내에 흥수같이 침공해 오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강 건너 도망하여 떨면서 패주하였습니다. 적군의 공세는 급박하였고, 나머지 600인의 이스라엘 장병마저 해산하려고 하자 전쟁을 위한 제사를 드려야겠는데 제사장 사무엘은 7일이 지나도 길갈에 오지 아니하고, 이 위기 절박의 제에 처하여 오히려 하나님의 명령을 사수하여 지키고 있던 사울은 이제 사무엘을 기다리다가 지쳐서 하나님 앞에 자신이 제사직을 감당하여 손수 제사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사울의 신앙의 시금석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힘보다 자기의 군략을 믿는지라 제물을 취하여 자기가 손수 헌제하고 나니 그제야 사무엘이 도착하였습니다. 군사적 입장에서 보면 사울의 취한 태도는 가하였지만, 신앙의 입장에서 보면 저는 불합격이었습니다. 이 신앙적 불합격이 저의 불행의 최대 이유였습니다. 사무엘은 도착하여 사울의 소행을 보았습니다. 사무엘의 안목에 비치인 사울은 장군의 소제는 되지만, 신앙 건국의 성자는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사무엘은 말하기를 “ 지금은 사울의 왕위가 오래지 못하리라 ” 고 비통한 선고를 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시 사무엘은 아말렉 남녀노소와 가축을 전멸시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사울에게 전하였으나, 사울은 아말렉 토벌에 대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우양 중 좋은 것을 가로채어 취하고 왕 아각을 생포하였습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한 것입니다. 이것은 그의 신앙상 결점이었습니다. 사무엘이 가로되 삼상 15:22-23에 “ 여호와께서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울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음으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 고 했습니다. 이를 선언한 사무엘이 떠나려 하자 사울이 사무엘의 옷자락을 잡아서 옷자락이 찢어졌습니다. 그러나 개인의 즉위를 위하여 울고만 있을 때가 못 됩니다. 신앙 건국을 이루지 못하는 이상 하루바삐 신앙과 무용이 겸전한 이상적 지도자를 택하지 아니하면 아니됩니다. 그래서 눈물을 씻고 일어나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이스라엘의 새 지도자를 찾아 떠나는 사무엘의 길을 하나님께서 베들레헴 이새의 집에 인도하였으니 이것이 다윗의 즉위 예식입니다.

3.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 하나님에게 버리운 사울은 바른 생각을 잃어버리고 시기심에 잡혀 고민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이는 사울의 성격상 병적 결함이었습니다. 거인 골리앗을 죽인 다윗의 용맹은 천하에 다윗의 이름을 떨쳐서 이스라엘의 딸들이 부르는 “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 라는 민요는 구구상전되어 거리 거리에 높았습니다. 만민이 즐겨 부르는 이 노래에 밤잠 못자고 번민하는 사람은 대왕 사울이었습니다. 민심이 이미 저에게 돌아갈 뿐인가 태자 요나단이 다윗을 숭모하여 생명같이 사랑하고 후일 왕국 양도의 약속을 맺었으며 왕녀들이 저에게 연애를 다투지 않았던가 자녀도 믿을 수 없는 저의 마음은 처첩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이제 국민과 가족이 다윗의 편이며 사무엘도 하나님도 다 다윗의 편임에 사울은 견딜 수 없이 초조하였던 것입니다. 사울이 초조하면 할수록 정사는 굴러가고 백성과 가족에게 인심 잃어가고 그 반면에 다윗의 덕망은 매일 승천의 기세로 더욱 높아갑니다. 용장 현사는 다윗의 슬하에 모여들고 자기의 조정에는 하몰하는 소인배가 모여들 뿐이었습니다. 다윗은 정력 왕성의 청년이요, 노쇠기에 기울어지는 사울의 전조는 날로 굴러 떨어져 가고 있습니다. 국사는 다사한데 용장 다윗을 불러 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내심 고민과 이길 수 없는 자기의 처신으로 사울의 관가는 어찌할 수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군주로 민심을 잃고, 가장으로는 가족의 동정을 얻지 못하고 종교인으로 사사 사무엘에게 버리운 사울은 고립된 사람이었습니다. 천하지인에게 버리운다 하더라도 하나님에게 버리우지 않으면 만족할텐데, 하나님께서도 저를 버리셨으니 저가 발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역사위에 버린 바 된 왕의 이름을 남기어 천고지하에 실패자가 되었습니다. 사무엘이 저를 위하여 울었다 하거니와 후세의 독자 또한 불행한 영웅의 처참한 고립에 동정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4. 시기심에 정신 잃은 사울 시기의 화염에 가슴을 태우던 사울이 하루는 다윗에게 검을 던졌으나 다윗은 피하여 화를 면하였습니다. 태자 요나단의 구언을 들어 왕의 악의는 숙여졌으나 그는 벌써 시기의 마귀에 포로된 자라 재차 다윗을 죽이려 창을 던졌습니다. 다윗을 블레셋 사람의 독수에 죽이려고 공주 미갈을 다윗에게 주어 사울의 사위를 삼았다 하여 전쟁에 보내어 블레셋 사람의 양피 200을 요했으나, 다윗은 이를 실행하여 미갈을 취하였더니 미갈이 역시 다윗을 변호하고 피신시키며 다윗의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몸을 나욧에 은거하는 사무엘에 의탁하고 있었으며 사울은 차사를 세 차례나 파송하여 다윗을 붙들어 오라 했는데, 차사들은 가는데로 영의 감화를 받아 돌아오지를 않았습니다. 사울은 노하여 친히 다윗을 잡으러 나욧에 갔으나 자신이 성령받아 다윗 잡을 생각은 다 사라지고 다윗을 형제로 여기며, 이스라엘을 지키는 하나님의 종으로 여겨 그를 만나 기뻐하였습니다. 사울은 왕복을 벗어 나체로 사무엘 앞에서 예언하였습니다. 그리고 단시 왕궁으로 돌아섰습니다. 사람은 약하고 욕심은 강하여서 아말렉 강적은 토벌할 수 있으리라는 심중의 시기를 정복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다시 다윗을 미워하며 자기의 왕권을 지키려 했습니다. 국 속에서 다윗을 죽이려 했다가 오히려 다윗의 사랑을 입었고, 다윗을 박해했다가 창은 다윗에게 빼앗기고 다윗의 사랑을 입었습니다. 사울은 통회하였으나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사무엘사사는 별세했고, 강적 블레셋은 엄습해 오고, 자신은 노쇠하고 패패자이니 이제 하나님 마저도 사울에게서 떠났고, 전투에 임하였으나 시기심으로 나라 안에서 미워하는 자는 다 내쫓았으니 함께 전쟁에 임할 일군이 없었습니다. 이제 그 부자는 전쟁에서 전사를 당하여 마지막 생명을 순국으로 이스라엘의 자랑의 왕이 된 것입니다.

5. 영웅의 장열한 최후 촌사람 사울이 먼저 얻은 왕관을 촌사람 다윗에게 내어주기에는 너무 아까왔습니다. 그의 불행은 여기에 있습니다. 멀리 이스라엘의 대극을 본다면 자기 집안의 왕위쯤이야 그다지 마음둘만한 것이 못되거늘 사울은 왕위를 아끼어 대인답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신앙이 철저하지 못해 신앙 건국의 적임자가 되지 못한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그러나 40년간 이스라엘을 위하여 용전한 무훈은 천추에 혁혁한 것입니다. 초전에 암몬을 대파하고, 제 2전에 무기없는 중에서 블레셋을 격파한 그 공은 역사에 빛날 일이며, 연이어 모압, 에돔, 수리아를 연파하고 아말렉을 토벌하고 다윗을 등용하여 제 2 블레셋에 승리하는 등 저의 전쟁 역사는 이스라엘의 자랑입니다. 70노인이 갑옷 입고 적 블레셋을 공방하여 이스라엘의 국경을 지키다가 길보아 산상에서 비장한 최후를 맞이한 사울의 일대기의 마지막 페이지는 쾌히 불행한 영웅의 일생을 빛나게 하였습니다. 더욱이 불행한 어진 사람 요나단의 일생은 백합화 같고 그 비장함이 다윗의 번제단의 우양과 같지 아니합니까 다윗의 조가는 두 불행한 용사를 위로함에 족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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