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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시장하신 예수님 (막 11: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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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 없는 무화과나무가 저주받은 사건은 그 다음에 기록된 성전 청결 사건과 더불어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적인 경고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자는 선민으로서 열매를 맺지 못하면 마침내 멸망한다는 경고이고 후자는 선민들의 타락한 종교 생활에 대한 경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에는 과거를 회상하거나 현재에 집착하는 것보다 미래의 일을 잘 알아서 시간이 흐르기 전에 해결할 바를 해결하고 준비할 바를 준비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입니다. 이 준비에 과해서 성경을 통하여 몇 가지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1. 시장하신 예수님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12절). 이 구절은 예수님의 인성을 표시하는 구절입니다. 빌 2:7-8에 보면 주님은 사람을 입으시고 가장 낮은 종의 자리에까지 내려 오셨습니다. 그는 피곤해 하시며(요 4:5), 목마르시고(요 4:7), 주림을 느꼈습니다. 주림은 인생 체험에서 제일 비참한 것의 하나라고 합니다. 여기에 나타난 표현은 주님의 죄인에 대한 구원의 열정, 구원의 심정을 시장한 것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오늘날 복음 전도자들이나 우리 성도들에게도 이러한 심정이 있어야 합니다. ‘믿으려면 믿고 믿기 싫으면 그만두라’는 식의 전도는 안 됩니다. 우리들은 지금 죄인들을 구원하시려는 주님의 시장에 대한 고통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너무나 우리의 구원을 원하심으로 십자가의 고난도 사양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시장을 어떻게 하여야 멈출 수 있겠습니까 요 4:34에 보면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죄인의 구원이 주님의 시장을 멈추게 하는 양식입니다. 우리가 전도 사명을 다하고 죄인을 구원하려는 뜻을 행하는 것은 주님이 기뻐하시고, 나의 기쁨이 되는 양식이 됩니다.

2. 한 무화과나무를 보신 예수님 13절에 보면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무화과나무는 열매를 맺을 만큼 충분한 여건을 갖춘 산나무 입니다. 무화과는 꽃이 없습니다. 꽃이 없는 것이 아니고 속으로 꽃이 핍니다. 무화과의 아름다움은 꽃이 아니요, 외모가 아닌 실속 있는 단맛입니다. 이것을 위하여 구약에 보면 왕 노릇도 사양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성도들도 잎사귀와 같은 종교적 외형만 갖추지 말고 주님을 위해서 숨은 열매를 맺어야 주님이 찾아오시면 아름다운 실과와 나의 단 것을 제공하여 주님의 시장을 면해 드려서 주님도 기뻐하시고, 그리고 나의 기쁨도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벧전 3:3에 보면 “너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고 사도 베드로는 말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먼저 속을 단장하여 맛 좋은 열매를 맺어 주님을 위해 제공하여야 합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오월, 유월 하루 빛이 무섭다는 말이 있습니다. 왜 주님께서 찾아오셨는데 선행의 열매, 성화의 열매, 회개의 열매, 생활의 열매가 없습니까 마음에 숨은 사람만 단장해 놓으면 주님께서 찾아오십니다. 시장하여 오시기 때문에 들어가기만 하면 잘 잡수십니다. 그러나 아무리 시장하여도 잎사귀는 잡수실 수 없습니다.

3. 무엇인가 얻으려고 찾아오신 예수님 13절에 보면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피조물에게 무엇인가 얻으려고 찾아오셨으니 무화과나무에게는 무한한 영광입니다. 우리 성도들에게는 이상 더 없는 무한한 영광입니다.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구하시는 바로 그것을 준비해 놓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열매입니다. 배가 고파서 밥을 요구하실 때 옷을 드려도 안 되고, 목이 말라 물을 요구하실 때 밥을 드려도 안 됩니다. 주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무화과 열매입니다. 그러면 무화과 열매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1) 참 사랑을 요구하십니다. (2) 그리스도의 본질을 닮은 사람을 요구하십니다. 무화과나무 열매는 겉모양은 없습니다. 그러나 속에는 단맛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감미로운 단맛을 알아야 합니다. 단 것만 맛보면 안 됩니다. 아무리 잎이 청청하고 무성해도 열매가 없다면 단맛은 맛볼 수 없는 것 같이 아무리 화려한 직분을 가져도, 많은 사람들의 칭찬을 받아도, 열매가 없으면 즉 성화(聖化)가 없다면, 회개의 열매가 없다면 다른 세상 어떤 사람은 몰라도 그리스도에게는 기쁨을 줄 수 없습니다. 우리 주님은 나무 밑에 쉬어 가시려고 온 것은 아닙니다. 목적은 오직 하나 뿐입니다. 주님이 실망하시고 돌아가셨는데 내 마음 속에 위로가 있을 리 없고, 기쁨이 있을 리 없고, 만족이 있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시장이 그쳐야 내게도 만족이 있습니다.

4. 아무것도 얻지 못한 예수님 13절에 보면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것도 없더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성도들의 행위에 대한 심판을 보여 주시는 경고입니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는 행함이 없는 신자와 같습니다. 공연히 남의 언행을 간섭하고비평하지 말고 내 자신의 일부터 먼저 바로 해 두어야 합니다. 주님에게 대접할 것이 없는 무화과나무는 그 자체가 벌써 저주 아닌 저주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보내주신 사자와 소자를 위로해 드리고 기쁘게 해 드리는 그 자체가 벌써 축복입니다. “잎사귀 외에 아무것도 없는지라” 잎사귀는 외형적 모든 조건은 갖춘 것입니다. 외식은 자기를 속일 수 있으나 주님은 못 속입니다. 예수님이 보시더니 “잎사귀 외에 아무것도 없더라” 이는 ‘멀리서 보니 근사하나 가까이 와서 보니 형편없습니다’라는 예수님의 심정을 표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무화과나무의 실물 교수를 통하여 우리에게 진리를 교훈해 주시려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이 나무와 나 자신과 관계가 있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오실 때 열매를 주님 앞에 내 놓아야 합니다. 외적 행위는 내부적 성화를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없을 때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 3:1)는 말을 듣는 것입니다.

5. 때 아닌 열매를 요구하신 예수님 13절 이하에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고 했습니다. 무화과나무는 잎이 무성하기 전에 열매를 맺는 나무입니다. 유월절은 결실하는 때입니다. 무화과나무는 “때가 아니니 열매가 없다”고 당당하게 이유를 밝힐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앞에서는 안 통합니다. 우리 주님은 시대에 맞는 세상 열매를 요구하시지 않으시고 믿음의 열매를 요구하십니다. 그리고 순종의 열매도 요구하십니다. 그래서 인자가 올 때 믿는 자를 보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이 말세에는 무화과 열매의 때가 아니라 잎사귀의 때란 말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잎을 요구하시지 않으시고 때 아닌 열매만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주님을 대접할 목적으로 열매를 맺으려고 원하고 순종만 하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맺을 수 있는 넉넉한 여건과 은혜를 갖추어 주십니다. 그러나 지금은 잎사귀의 때입니다. 허영심과 명예심으로 교회 직분을 탐하고 열매가 없어도 성장할 대로 성장하고 목사보다 높이 자랐습니다. 꽃이 피고 실속 없이 잘 믿는 척 하지만 자기가 속은 것입니다. 6.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예수님 14절에 보면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후로는 예수님께서 열매를 요구하시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피조물 인간에게 그 무엇을 요구하시는 때가 인간에게는 최고의 행복, 최고의 영광, 최고의 선물입니다. 이 때를 놓치지 말고,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미리 미리 준비하고 기다리다가 예수님께서 요구하실 때에 제공하고 봉헌하면 그 사람의 신앙은 영원한 성공이요 승리입니다. 때가 지나면 음식을 드려도 잡수시지 않으십니다(요 4:31). 열 처녀의 비유 중에서 다섯 처녀는 신랑이 온 후에 기름을 준비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주어진 기회와 시간이란 이렇게 귀중한 것입니다. 지금 한 시간에 할 것을 나중에 열 시간, 아니 평생을 해도 소용이 없고 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저주하시니 무화과나무가 말랐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은 불행보다 더 큰 불행은 없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인정을 받는 것도, 칭찬을 받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말만 있고 실행이 없으면 망합니다. 언행이 일치하지 못하는 것이 오늘 신자들의 치명적인 결점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목적에 위반되는 물건은 무엇이든지 없어지기 마련이고 그 목적에 위반되는 사람은 누구든지 저주를 받게 마련입니다. 존경하는 성도들이여 많은 열매를 맺어 주님의 시장기를 면하게 해드리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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