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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레위인이 첩을 데리고 집으로 오다 (삿 19: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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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정이란 시기에는 에브라임 구름지대의 레위 사람들이 베들레헴 주민 사이에서 첩을 취하였었습니다. 언쟁 끝에 아내가 친정 집에 돌아간 결과 로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남편은 “ 그 여자에게 털어놓고 이야기 하려고 ” 그 아내를 따라 갔습니다. 이 귀절의 문자적인 의미는 “ 그 여자에게 다정 하게 말하려고 ” 의 뜻입니다(19:3). 자기 종을 데리고 그리고 나귀 두필을 가지고 그는 장인의 집에 도착하여 후대를 받고 더 오래 유숙하도록 설복 되었습니다. 이 남자와 첩 사이의 화해는 자연히 잔치를 베플게 하였고 자기 딸을 떠나 보내기 싫어하는 장인의 압력 때문에 잔치는 연장되었습니다. 다섯째 날 밤에 다가오매 레위 사람은 마침내 그의 첩과 종을 데리고 돌아오는 여행길에 나섰습니다. 그들은 여부스를 통과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여부스는 아직도 가나안의 성읍이였는데, 성경에는 이 성읍의 초기의 또 하나의 이름인 예루살렘으로 더 많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종은 여기서 밤을 지내자고 레위 사람에게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같은 이스라엘 사람이 사는 기브아까지 가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이 성읍은 뒤에 나오는 사울의 고향이요, 에루살렘 북방에 위치하였었습니다. 일행이 기브아에 이르렀을 때에 해가 졌습니다. 그런데 이 지방에서는 곧 어두워지는 것 이였습니다. 즉시로 밤동안 유숙할 곳이 필요하였습니다. 그러나 사회적 인 관계와 사업적인 관계가 맺어지는 시장거리에 그들이 앉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들을 후대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 레위 사람은 가나 안 원주민이 사는 여부스보다도 기브아를 택하였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렇게 푸대접하였으므로 마침내 그들을 데려간 사람은 기브아의 주민이 아니고 에브라임 지파의 한 기류자이었습니다.

1. 도망간 레위인의 첩 창 2:24에 “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몸을 이룰지로다 ” 고 했고, 엡 5:25에 “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 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관계는 “ 일부일처 제도 ” 를 근거로 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아니됩니다. (1) 레위인의 첩의 갈등 레위인에게 첩으로 들어 간 여인은 아내로서 사랑받기를 원하여 그를 남 편으로 맞아들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내가 있는 자를 그의 남편으로 택 하였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선택을 한 첩은 정숙한 여 인으로 볼 수 없습니다. 첩은 행음하고 남편을 떠났다고 했습니다. 시라아역은 그녀가 “ 그에게 오만해져 ” 혹은 “ 그를 경멸하여 행음하였고 ”, 이에 대해 그가 불쾌히 여기자 “ 그녀는 그를 떠났다 ” 고 했습니다. 그러나 온당치 못하게도 그녀의 아버지의 집에서는 그녀를 받아드리고 환대해 주었습니다. 사실 이럴 때 아버지도 그녀의 죄를 묵인해서는 안됩니다. 만일 그녀가 아버지는 언제나 자기를 따뜻이 맞이해 줄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다면 그녀는 이렇게 무례하게 자기의 의무를 팽개쳐 버리고 나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부모들의 지나친 관용으로 자식들의 버릇을 그르치는 수가 있습니다. (2) 첩을 둔 레위인의 갈등 레위인이 첩을 두었다는 사실은 그 당시 신앙의 타락상을 잘 보여 줍니 다. 레위인은 특별히 다른 지파와 구별되어 성막일을 하는 자들로서 그들 의 행위는 특별한 성결이 요구되는 지파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법도 와 규례를 가르치며 이스라엘 백성이 타락되지 않도록 하는 지도자들입니 다. 그러나 이스라엘에 악이 쌓여갈 때 레위인 역시 세속적인 정욕과 죄악 에 물들어 갔던 것입니다. 레위인으로서 첩을 두었다는 사실은 정욕적인 일을 추구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이 부부는 사랑으로 맺어진 것이 아니 라 정욕으로 맺어진 관계였습니다. 3절에 “ 그 남편이 그 아내를 다시 데려 오고자 하여 ”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레위인은 도망간 첩을 데려오고 자 한 것을 보면 첩에 대한 미련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것은 순전히 정욕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3) 첩 장인의 갈등 이 첩의 장인을 자가의 딸이 진정으로 그의 남편과 행복하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딸이 되돌아 오고 말았습니다. 이런 결과가 오기 전에 그 는 그의 딸이 아내가 있는 남자와 결합하는 것을 반대하고 막았어야 할 것 입니다. 쫓겨 다시 집에 돌아온 딸을 대하는 아버지 심정은 아팠을 것입니 다. 그의 사위가 그의 딸을 데리러 왔을 때 그는 그를 따뜻이 환대해 주었 습니다. 아내를 사랑해 주기를 원하는 아버지의 심정이였을 것입니다. 사 위를 다섯째 날까지 머물게 하고 정성스럽게 환대했습니다. 그는 사위를 하나님의 종인 레위인으로서 경건한 존경심을 품고 대해 주었습니다. 닷 새 이상 머물게 하고 싶었습니다. 사위는 실로에 있는 여호와 집에(18절) 할 일이 많았으므로 마음이 조급하여 더 이상 머물지를 않았습니다. 만약 사위가 처음 사흘 머물고 떠나려 했을 때 보냈더라면 사위와 딸은 무사히 실로에 도착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찍 떠나지 않다가 촉박한 시일에 서두르다가 이런 딸의 죽음의 비극을 맞이한 것입니다. 우리의 친구의 다 정한 친절이 때로는 이처럼 재난을 초래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2. 외식하는 레위인(10-21절) 첩을 둔 레위인입니다. 명색이 레위인인지라 겉으로는 거룩한 체 해야 했으며 형식적인 율법의식을 지키려고 노력했을 것입니다. 본문은 이런 레위인의 외식이 잘 나라나고 있습니다. (1) 기브아로 나아자리라 이 레위인은 극도로 타락했습니다. 그 당시 사회가 남편의 첩은 남편에 게 절대 복종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 레위인은 첩을 두었다는 자체도 잘 못이지만 이 첩을 강제로 데리고 가는 일이며 그 첩을 그토록 학대한다는 것은 사악한 레위인의 타박상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레위인의 타락상을 봅 시다. 그 종이 레위인에게 여부스 사람의 성읍에 가서 방을 얻어 유숙하자 고 했습니다. 레위인의 답은 이방인 성읍으로 갈 것이 아니라 “ 기브아로 나아가리라 ” 고 했습니다. 그래도 이 레위인은 성인이라고 외식적인 신앙 태도는 하나님 앞에 가증한 자입니다. 그 종은 평시에 주인인 레위인의 타 락상을 잘 알고 있었으나 순종하여 기브아로 나아갔습니다. 기브아는 베냐민에 속한 성읍이요, 사울 왕의 고향입니다. 그 후에 예루살렘이 된 여부스는 아직까지 여부스 이방인이 머물고 있었습니다. 종은 11절에 “ 청컨데 여부스 사람의 성읍에서 머물기로 하사이다 ” 고 했습니다. 여부스 사람은 비록 이 방신였으나 기브아 사람보다 더 선하고 착하였습니다. 그러나 레위인은 이방인과 접촉한 레위인이라는 오명을 남기지 않기 위해 기브아로 도착한 것입니다. 그러나 기브아에서는 아무도 그를 맞이해 주지 않았습니다. 돈을 주어도 숙박할 장소를 구할 수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여행길에 돈을 주고 알맞는 숙박소를 얻고 편히 쉴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2) 여호와 집으로 가는 중 기브아에서 하룻밤 지냈습니다. 이 레위인이 기브아에 이르러 유숙하고자 하나 그를 집으로 영접하여 유 숙케 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기브아 사람들은 베냐민 지파에 속한 자들입 니다. 베냐민 지파 사람들은 같은 이스라엘 사람을 도와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이 레위인은 친절한 노인을 만났습니다. 노인은 레위인에 게 행선지를 물었습니다. 그 때 레위인의 답변은 “우리는 유다 베들레헴에 서 에브라임 산지 구석으로 지나가나이다 나는 그곳 사람으로서 유다 베들 레헴에 갔다가 이제 여호와의 집에 가는 중인데 ” 라고 말하고 계십니다. 그는 성막의 일을 하는 레위인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 레위인은 첩을 둔 난처한 위치에서 첩과 종 앞에서 거룩한체 스스로 자기 신분을 내놓고 있는 것 입니다. 그리고 기브아 사람을 불평 원망하는조로 “ 나를 영접하는 자가 없나이다 ” 라고 했습니다. 즉 이 레위인은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죄를 숨겨두고 신앙 생활하는 외식주의자요, 가증한 지도자, 타락한 자라 하겠습니다. 이제 기브아 노인은 마음을 열어 놓고 레위인 일행을 영접했습니다. 레위인이라는 말을 듣고 더욱 기뻐하며 많은 친절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이 처럼 그는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종인 이 레위인을 제자라는 이름으로 영접했습니다. 노인은 21절에 “ 그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 ” 고 기록한 대로 환대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나 사역자들이 마치 버림받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여러모로 도와주는 친구들을 보내주심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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