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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 중심의 삶 (신 10: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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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적인 신명기 저자 모세는 이제 민족의 양심에 대한 그의 호소를 간단히 요약해 놓음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그것을 행동에 옮기도록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사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운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이스라엘 민족은 어떤 반응을 보여야겠습니까 하나님의 요구를 요약해 놓은 신 10:12-13은 막 6:8과 대비시킬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양자는 모두 이스라엘 민족의 위대한 신앙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존경한다는 것이요, 그가 어떤 분이신지, 또 인간을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 그리고 그들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계시는지 깊이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존경과 경의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도록 만들어 줄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 한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감상적인 반응 그 이상의 것을 의미합니다. 곧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요(12절) 충성을 다하여 하나님께 그 전체를 바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과 사랑은 순종적인 섬김, 곧 행복으로 인도하는(13절) 섬김으로 나타납니다. 12절의 첫 글자는 히브리어로 “웨아타”인데 우리 말 개역 성서에는 그 뜻이 나타나 있지 않고 공동 번역에는 “이제”라고 해석했습니다. 문자적인 뜻으로는 “그리고 이제는” 이라는 뜻입니다. 설교자는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이 질문에 대답이 다섯 가지로 나타납니다. “경외하라”, “도를 행하라”, “사랑하라”, “지키라”입니다. 여호와는 왕이심으로 그를 경외해야 하며, 여호와는 계약을 지키시는 분임으로 그의 길로 걸어야 하며, 여호와는 구속자이심으로 그를 사랑하며 뜻을 다해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에 대한 예배와 이스라엘의 삶 자체는 분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은 무서운 짐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행복을 위해 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왜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복종해야 합니까 이같은 질문에 대해 설교자는 여호와가 이스라엘을 먼저 사랑했기 때문이라(15절)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최고의 비교급을 사용하여 “하늘의 하늘”도 모두 여호와께 속한다고 말합니다. 즉 우주의 대주재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이신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잘 것 없는 조그만 민족 이스라엘을 선택하시어 사랑하시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아무도 헤아릴 수 없는 신적 신비입니다. 이스라엘은 또한 할례를 받는 민족으로써 16절에도 마음의 할례를 받으라고 명했습니다. 마음에 할례를 받는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과 지시를 온전히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목을 다시는 곧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할례받지 못한 귀는 귀가 어두운 것을 뜻하며 (렘 6:10), 할례받지 않은 입술은 입술이 둔함을 말합니다(출 6:12-30).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솔직한 사랑은 그에 대한 인간의 솔직한 사랑을 불러일으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을 인간이 사랑함을 의미합니다. 즉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신원하며 나그네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약한 자와 억눌린 자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은 신명기에서 거듭 강조되었습니다. 즉 17-19절은 여호와는 왕권으로 이해합니다. 18절의 고아와 과부, 나그네를 보호하는 정의의 실천도 왕의 권한으로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21절에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찬송이며”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찬송을 드려야 합니다. 여호와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애굽으로 내려간 야곱의 70명 가족이 별같이 많이 불어나게 된 것도 하나님의 큰 은혜였습니다. 70이란 숫자는 완전수이며, 출 24:1에 이스라엘의 장로 수를 70명으로 적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도 있지만 우리에게 선민으로써 특권을 주심으로 하나님의 명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그들에게 말씀하신 모든 권면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한 의미로써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피조물이 감히 들어설 수 없는 최고의 입장에 들어서 있습니다. 우리는 부활하시고 영광중에 계시는 성자 예수님과 연결하고 있으며 영원히 하나로 연합되어 있습니다. 16-19절까지 하나님은 어떤 분임을 신명기 기자는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만물 위에 높이 계시며 크고도 능력 많고 두려우신 분이십니다. 그러면서도 이 땅에서 어떤 뒷받침없이 방황하고 가난하고 절망적인 고아와 과부에게 마음을 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불쌍한 사람들을 특별한 방법으로 돌보시고 양육하십니다. 시 68:5에 “그 거룩하신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보호자”이십니다. 렘 49:11에 “네 고아들을 남겨 두라 내가 그들을 살려 두리라 네 과부들은 나를 의지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자상하시고 진실하신 분이십니까 이들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남편이 있을 때보다 더 잘 살기도 하고, 부모가 있을 때보다 더 잘 양육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보시기 때문입니다. 많은 남편들, 많은 부모들은 오히려 없는 편이 나을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를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서도 항상 자기의 이름에 진실합니다. 모든 불쌍한 사람들은 위로와 용기를 얻기 위해 이 사실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나그네에 대해서도 마음을 씁니다. “나그네를 사랑하사 그에게 재물과 의복을 주시나니”라고 했습니다. 이 얼마나 귀한 말씀입니까 이 세상에서 살 길이 막히고 도와주는 사람 없고, 자신을 잃고 절망 속에 사는 사람들 모두를 우리 하나님께서 보살펴 주시는 것입니다. 그들도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이에 응답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이런 사업의 주체는 하나님이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몸소 행하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명을 그대로 지켜 실행할 것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실로 하나님의 요구는 우리가 축복을 받기 위한 필요조건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축복받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간곡한 의사 표시의 표현인 것입니다. 아무쪼록 하나님의 요구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여 진정한 축복을 받는 길에 들어서야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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