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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화로운 길과 수치의 길 (잠 1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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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의와 불의 1절에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여도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정직하고 공정한 거래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은 없으며 우리와 우리 신앙을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수 있도록 하는 일보다 더 필요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운 추를 행사하심으로 공정한 추를 가지고 따르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2. 교만과 겸손 2절에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교만한 자에게 욕이 온다는 말은 실패한다는 뜻입니다. 잠 16:18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했습니다. 교만한 자는 스스로 인간을 깍아 내리면서 자신도 보잘 것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느브갓네살 왕이나 헤롯 왕처럼 그들의 헛된 자부심에는 즉각 치욕이 뒤따라 왔던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굴복시키고 그들이 자랑하는 일에서 그들을 반대하시고 납작하게 꺽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하나님 앞에 죽을 죄인인데 어떻게 교만할 수 있습니까 자신을 깨닫는 겸손한 자는 지혜로운 자입니다. 겸손한 자의 마음에는 성령이 계시기 때문에 그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으나 그에게 능력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노자는 그의 저서 도덕, 경제 8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최상의 선은 물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즐겨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물은 도에 거의 가까운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으며 존귀가 돌아갈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혜는 그에게 존영을 얻어 주며 사람들 앞에서 그의 얼굴을 빛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3. 정직과 사특함 3절에 “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 사특한 자의패역은 자기를 망케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생명에 이르는 길은 언제나 정직하고 성실하게 의를 사모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는 생명의 길이됩니다. 성실은 그를 꾸준하게 지켜주고 평탄케 합니다. 그러므로 엡 6:14에 “의에 흉배를 붙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의를 앞장세우고 가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악인의 길은 파멸로 이끌 것입니다. 악인의 길은 아무리 그 자신을 견고한 요새처럼 생각해도 패역으로 스스로 판 모혈에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4. 재물과 의리 4절에 “재물은 진노하시는 날에 무익하나 의리는 죽음을 면케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때는 재물로 그것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겔 7:19에 “전쟁 중에 사람들이 은을 거리에 던지며 금을 오물같이 여기리니 이는 여호와 내가 진로를 베푸는 그 날에 은과 금이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하며 능히 그 심령을 족하게 하거나 그 창자를 채우지 못하고 오직 죄악에 빠지는 것이 됨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재앙을 면케 하는 것은 의로움 뿐입니다. 신령한 양심은 죽음을 편안하게 햊며 공포를 제거해 줄 것입니다. 참된 의리는 창 39장에 있는 요셉처럼 선을 신뢰하고 그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의리를 굳게 잡고 끝까지 분투한 사람은 마침내 하나님의 상급을 받습니다.

5. 의인과 악인 5-6절에 “완전한 자는 그 의로 인하여 그 길이 곧게 되려니와 악한자는 그 악을 인하여 넘어지리라 정직한 자는 그 의로 인하여 구원을 얻으려니와 사특한 자는 자기의 악에 잡히리라”고 했습니다. 정직한 자는 늘 밝은 낮의 기쁨을 느끼며 악인은 백주에도 비틀거리며 넘어지며 밤길을 걷는 것입니다. 정직과 의인의 길은 모든 그릇된 길에서 우리를 건져주는 최선을 구조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악인의 끝은 올무와 멸망과 파괴로 스스로 망하게 될 것입니다. 6. 악인의 소망 7절에 “악인은 죽을 때 소망이 끊어지나니 불의의 소망이 없어지느니라”고 했습니다. 비록 악인이라 할지라도 사후의 행복이나 적어도 세상 행복을 믿고 계속 기대하면서 살아가는 법입니다. 해만 끼치는 거미도 거미줄에 앉아 거미줄에 거릴 먹이를 기대하며 낙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악인의 생명이 끝나는 날 그 소망은 산산조각 다 깨어질 것입니다. 악인이 죽는 그 날에는 악인이 즐겨하던 생각도 그 자취를 감추며 그 소망도 사라져 버립니다.

7. 환란에서의 의인과 악인 8절에 “의인은 환란에서 구원을 얻고 악인은 와서 그를 대신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의인은 환란에서 구원받고 악인은 의인이 구원받은 그 환란을 의인 대신 받게 된다는 말입니다. 에스더서에 모르드개가 사형당해야 할 그 사형 틀에 악인 하만이 모르드개 대신 죽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로부터 구출을 받았으나 애굽 군사들은 거기 빠져 죽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성도들이 너무나 고기하기에 그는 의인과악인과 그 환란의 자리를 바꾸신 것입니다. 이처럼 의인은 하나님께 구원함을 얻으나 악인은 그 형벌을 대신 지는 것입니다.

8. 의인과 사특한 자의 입 9절에 “사특한 자는 입으로 그 이웃을 망하게 하여도 의인은 그 지식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느니라”고 했습니다. 의인은 사회를 유익하게 하여도 악인은 사회를 멸망시킵니다. 이는 중상의 해로움을 말하고 있습니다.

9. 동감의 대상과 반감의 대상 10절에 “의인이 형통하면 성읍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패망하면 기뻐 외치느니라”고 했습니다. 네로 황제가 죽은 후에 로마 사람들이 기뻐하였고 불란서 혁명 때에는 악인 로베스 피엘의 죽음이 모든 불란서 사람에게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선한 자가 형통할 때와 악한 자가 멸망할 때 세상은 기뻐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백성의 마음 가운데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 있다는 뜻입니다. 10. 정직한 자의 축원과 악한 자의 말로 11절에 “성읍은 정직한 자의 축원을 인하여 진흥하고 악한 자의 법을 인하여 무너지느니라”고 했습니다. 축원이라는 말은 기도한다는 뜻입니다. 성읍은 의인의 기도로 인하여 진흥한다고 했습니다. 사 37장에서 이스라엘이 앗수르의 침략을 당할 즈음에 의로운 왕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 나라를 구원하였습니다. 고대 희랍의 통나무속에 사는 철인 디오게네스는 “아덴 시민아 불의, 사특, 거짓으로 통치하지 말지니 그런 정책은 일시적으로 지지받고 인기있을지 모르겠으나 기대와는 달리 떨어진다. 집은 기둥과 용골이 튼튼해야 하듯이 사회는 정직하게 다스려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정직한 자는 그 사회의 참된 발전과 부흥을 위해 옳은 길을 제공해 주나 악인은 자기 소욕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합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의인과 함께 교제를 나누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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