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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그네에게 권하는 말씀 (벧전 02: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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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 나그네 인생

11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했습니다. 인생은 나그네입니다. 이 세상은 역전과 같아서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가고 하는데 이는 다 나그네이기 때문입니다. 100년 전 사람은 아무도 만나볼 수 없는 정류장과 같이 되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남녀, 부귀의 모든 유무를 막론하고 다 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나그네로서의 인생은 적어도 가장 기본적인 세 가지의 질문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인생은 어디서 왔으며, 무엇 때문에 살고 있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성경은 분명한 해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즉 인생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가, 하나님을 위해 살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원리요 기독교의 가장 기본적인 인생관인 것입니다. (l) 나그네 인생의 가는 길은 본향입니다. 사람의 본향이 하늘이라 함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영혼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은 인생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 것인지를 알지 못하며 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는 아무런 소망을 갖지 않았습니다. 오직 살았을 때 잘 먹고 잘 놀고 잘살자고 하는 것이 저희의 삶의 이유인 것입니다. 저희들은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간다고 하면서도 저 세상이 어디인지는 알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오고 가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는 무지합니다. 본향 없이 헤매는 불쌍한 영혼들 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야 될 곳은 천국입니다. 천국은 하나님이 계신 곳,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 앞서간 모든 성도들이 있는 곳입니다. 또한 천국은 영생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2) 세상 여행에 고난이 있습니다. 육신이 약해서 질병의 고난이 많습니다. 만병이 인간을 괴롭힙니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인간은 주야로 태산준령 없는 고난과 강을 맞이합니다. 무슨 일이든지 세상의 일에 고난이 없는 것은 없습니다. 창 3:17-19에 “하나님이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먹지 말라 한 나무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며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먹으리라”고 한 것은 그 유래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하든지 고난이 따라옵니다. 땀이 나는 수고와 찌르는 가시와 거친 장애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착수한 일의 중요성보다 주위 환경의 투쟁의 가시가 더 많습니다. 나그네 행로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태산을 넘을 때도 있습니다. 천재지변으로 흉년을 당하여 경제적 곤란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질병과 환난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전쟁으로 많은 생명이 희생되기도 합니다. 인생의 나그네 길은 원근은 알 수 없으나 모두 이러한 나그네의 세상의 고통 속을 쉬임없이 가고 있는 것입니다.

2. 나그네의 생활 원칙 11절 하반에 “나그네와 행인(行人)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制馭) 하라”고 하였습니다. (1) 사람은 나그네의 생활에서 정욕을 이기지 못하여 범죄 하는 일이 많습니다. 갈 5:17에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또 요1서 2:16에서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라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고 그의 심각함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롬 13:14에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사탄이 인간을 넘어뜨리는데 있어서 최대의 무기가 곧 정욕인데 이것을 우리는 물리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명장 삼손도, 그리고 다윗도 이 정욕 때문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정욕의 불꽃이 타는 대로 쫓아가는 사람, 향락에 굶주린 사람, 육욕이 크게 자라는 대로 방임해 두는 사람은 급기야는 영력을 잃어버려 사탄의 사슬에 꼼짝 못하도록 묶이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정욕을 제거하라. 그렇지 않으면 도리어 정욕에 우리가 제거될 것입니다. 먼저 육정을 제거함으로서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살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 12절 상반에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의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선행으로서 전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나그네 인생의 목적인 것입니다. 마 5:16에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한 것이나 벧전 3:1-2에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은 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로 봄이라”고 한 것은 백 마디의 말보다는 한 가지의 선행이 가장 효과적인 전도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땅 위에서 명예와 권세 부귀와 향락만을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급급하는 사람들은 인생은 엄연한 나그네라고 하는 진리를 망각했거나 또는 알면서도 일부러 외면해 버린 천한 현실주의자들입니다. 결 론 나그네 인생에 대한 베드로의 권면은 단 두 마디뿐입니다. 첫째,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하였으니 이는 소극적 방면을 가르친 것이요 둘째, 선한 행실을 가지라! 하였으니 이는 적극적 방면을 가르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날마다의 세상 생활 가운데서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고 불신의 사회 앞에서 선한 행실을 가지기엔 우리의 의지가 너무나 약하고 우리의 인간성이 너무나 죄악적인 것을 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문의 권면대로 순응하기 위해서는 인위적인 결심이나 노력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가 우리와 함께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의 강력한 능력이 나에게 임할 때에 우리는 비로소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고 자신을 쳐서 주께 복종시킬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우리 마음속에 내주하실 때 비로소 우리는 선한 행실을 가져 불신 사회에 빛을 발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람 있는 나그네의 인생을 살기 위해 이 시간 성령을 더욱 충만히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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