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가난한 자를 생각하라 (갈 02:10)

첨부 1


갈 2:10에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 생각하는 것을 부탁하였으니 이것을 나도 본래 힘써 행하노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 가난한 자는 잊혀지기 쉬운 존재요 멸시되기 쉬운 이유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특히 가난한 자를 생각하고 돕는 일을 힘쓰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할 이유란 가난한 자를 생각하라 한 것은 하나님께서 분부하신 명령이기 (신 15:7-11) 때문입니다. 가난의 이유는 질병 때문이거나, 무능 때문이거나, 남용 때문이거나, 게으름 때문이거나, 천재지변 때문일 수가 있습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간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땅 위에 가난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며 기독교인이 살고 있는 사랑의 고장에 가난한 이웃이 신음하고 있다는 것은 은혜로운 일이 못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 주변에 있는 가난한 형제들 돕는 일에 힘쓰라고 특히 부탁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우리와 함께 거하면 그 가난한 형제에게 마음을 강퍅히 하지 말며 우리의 손을 움켜쥐지 말고 반드시 우리 손을 그에게 펴서 그 요구하는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 주라고 명령하십니다.

2. 가난한 자를 생각하는 것은 교회가 해야 할 임무입니다(행 2:45) 교회가 하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치심에 의한 것으로 전도와 교육과 구제로 집약됩니다. 그리고 전도나 교육은 구제 행위를 통하여 강력한 뒷받침이 되어가는 것이므로 결국 교회는 구제에 중점을 두고 그 임무를 수행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초대교회는 집사를 세워 구제 업무를 전담케 했으며(행 6:3), 바울은 그의 전도 활동을 구제 활동과 병행시켰던 것입니다(롬 15:25). 근년에 치르러 한국교회의 예산은 해마다 급성장을 해가고 있습니다. 경하할 일입니다. 그러나 그 막대한 예산액의 지출면을 살펴볼 때 좋아만 할 수 없는 형편입니다. 극소수의 교회를 제외한 대다수의 교회가 예산액의 거의 대부분을 자체유지에만 투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초라한 판자집 지대에서 일류회사 사장실을 무색하게 하는 호화판 당회실이나 꾸며놓고 수천만원짜리 파이프 올겐이나 구비해 놓고 버스니 승용차를 굴린다고 해서 그것이 곧 큰 교회일 수는 없습니다.

3. 가난한 자를 생각하는 것은 주님을 섬기는 일입니다(마 25:40) 저마다 주님을 보다 잘 섬기고 싶어하고 또 주님의 일을 잘 받들고 싶어합니다. 좋은 생각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섬기는 구체적인 길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에는 어디나 가난한 형제들이 있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이런 형제를 조용히 돌보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곧 주님을 섬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잠 19:17) 고 하는 말씀은 바로 이 사실을 밝혀줍니다. 내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베푸는 온정이 곧 주님께 베푸는 온정임을 명심하고 특히 가난한 자에게 마음을 쏟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경건이요 고난의 동참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