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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얍복 강변의 야곱 (창 32: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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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비극이 어쩌면 야곱의 객지 20년의 생활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철학자 흡수가 말한대로 “ 인간은 인간에 대하여 늑대간의 관계 ” 라고 했듯이 현대인들은 사람들을 무서워하고 항시 불안한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어려운 문제와 직면한 야곱은 이제 얍복강 가에서 하나님과 만나는 체험을 합니다. 그가 20년 전 떠날 때 축복의 약속을 하신 벧엘의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는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야곱의 기도 생활을 통해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1. 얍복강 도강전의 야곱 (1) 거짓되고 이기적인 야곱 에서와 야곱은 쌍둥이입니다. 야곱은 태어날 때 에서가 먼저 태어나는 것이 못마땅한듯 에서의 발뒤꿈치를 잡고 태어났습니다. 야곱은 자신에게 유익된 일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했습니다. 당시 사회에서는 장남에게 모든 특권이 부여되었고 차자부터는 아무런 권리가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동생으로 태어난 냉대를 감수해야 하는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이런 자기의 운명에 과감히 도전했습니다. 어느 날 사냥에서 돌아온 형 에서는 배고픔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야곱은 허기진 에서에게 죽 한 그릇을 가지고 유혹하여 장자의 기업을 빼앗은 것입니다. 또한 눈이 어두운 아버지를 속여 형 에서에게 돌아갈 아버지의 축복 기도를 가로채었습니다. 이런 야곱의 이기적인 행동으로 말미암아 가정에도 평화가 깨지고 온 식구는 다 고통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평소에 대범하던 형 에서도 이 이상 참을 수 없어서 동생 야곱을 죽이기로 했습니다. 이 사실을 안 야곱은 더 이상 가정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어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외삼촌 집으로 망명의 길을 떠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을 속이고 남에게 고통을 준 야곱에게, 남에게 속고 남에게 고통을 당하게 했습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에게 열 번이나 품삯을 받지 못해 속았고, 자기 아들들에게 속아 사랑하는 아들 요셉을 잃은 고통을 10여년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마음은 언제나 죄의식 때문에 늘 괴로움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부모 곁을 떠난 타향에서의 20년은 고독과 향수병으로 잠못 이루는 밤도 많았고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고향 하늘을 쳐다보아야만 할 때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떠날 때 빈손으로 갔으나 이제 돌아올 때는 많은 가족과 골짜기를 메울 만큼의 큰 가축 떼를 몰고 오는 축복을 의식할 때 야곱의 감회는 깊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혀 아버지와 형을 속였던 야곱은 부르짖기를 창 32:11에 “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하옴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냄이니이다 ” 라고 했습니다. (2) 조건적인 신앙 믿음은 사랑과도 같은 것이며 믿음이 조건적인 것으로 될 때 그 신앙은 추한 신앙으로 전락해 버립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야곱은 서원기도 하기를 창 28:20-22에 “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축복을 흥정하고 있는 육에 속한 야곱의 모습을 발전케 됩니다. (3) 자신만을 위해 사는 야곱 형과 아버지를 떠난 야곱의 생활은 참으로 하나님의 축복과 돌보심이 없었더라면 한순간도 살 수 없었던 생활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한순간도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본 일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외삼촌 라반에게 있을 때도 14년은 아내를 얻기 위해서, 나머지 6년은 재산을 모으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축복 속에 큰 떼를 이루었으나 야곱은 그 중 한 마리 양도 하나님을 위해서 번제로 드린 일이 없습니다.이같이 육에 속한 야곱은 자신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2. 얍복 강변의 야곱 (1) 홰개 자복했습니다. 얍복 강변에서 야곱은 모든 가족들을 건너가게 하고 소와 양떼들을 건너 보내고 자기 혼자 남아 있었습니다. 다투기 좋아하던 야곱은 이제 얍복 강변에서 회개자복하게 되었습니다. 자기 일생에 범한 모든 죄를 여기에서 자복한 것입니다. (2) 날이 새기까지 씨름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씨름하는 것은 하나의 힘내기가 아닙니다. 분투 노력의 신앙이요 전투적인 기도였습니다. 간절한 성도들의 소원이요 간구입니다. 우리들도 기도할 때 이런 자세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야곱의 씨름은 한 시간 두 시간 씨름이 아니였습니다. 밤을 세워가면서 씨름한 것입니다. 날이 새기까지 쉬지 않고 계속적으로 씨름한 것입니다. 이렇게 씨름하는 중 야곱을 이기지 못한 천사는 마지막에 야곱의 환도뼈를 쳐서 위골이 되게 하였습니다. 환도뼈는 인체 중에 가장 힘있는 부분인데 위골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1) 인간의 연약함을 알게 하려 함입니다. 2) 얼마나 간절한가를 시험하려고 한 것입니다. 3) 승리는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인식케 함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환도뼈가 위골되어야 합니다. 물질의 환도뼈, 그 밖에 모든 환도뼈가 위골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됩니다. (3) 축복을 소원하는 야곱 새벽에 천사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으면 갈 수 없다고 놓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야곱은 수단 방법이 좋아야 사는 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내게 축복하소서라고 간절히 간구한 것입니다. 그는 이제 육에 속한 자에게 영에 속한 자로 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3. 얍복강 도강 이 후 이스라엘 (1) 겸손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야곱은 이제 도강 후에서 형을 만나니 나아가서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 형에게 가까이 나아갔습니다. 야곱은 겸손해졌습니다. 도강하는 야곱은 새로워졌습니다. “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 라는 말을 몸으로 체험하고 실천한 것입니다. (2) 은혜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장자의 기업만 있으면 어디를 가든지 살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도망 후에는 사고가 달라졌습니다. 장자의 기업보다 하나님의 은혜로 재물보다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3) 축복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얍복 강변 이 후 야곱의 이름은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야곱이라는 뜻은 속인다는 뜻이묘, 이스라엘이라는 뜻은 승리의 뜻입니다. 여기에 세 가지 뜻이 있습니다. 1) 하나님이 힘써 주시겠다. 2) 하나님이 싸워 주시겠다. 3) 하나님이 거느려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면, 이삭은 인내의 조상이요, 야곱은 승리의 조상, 축복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의 형편은 어떻습니까 얍복강 도강 이전입니까 얍복 강변입니까 얍복강 도강 이 후 입니까 모두 얍복강을 건너 새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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