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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초막절 (레 23:3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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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초막절에 관한 말씀입니다. 초막절은 3대 명절 중의 하나로 모든 남자들이 참예할 수 있는 절기입니다. 이 초막절의 기본적인 성격은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초막절의 영적 교훈을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초막절의 규례 초막절은 7월 15일에 거행되는 행사입니다. 그것은 칠일 동안 계속되어 지켜져야 합니다(34절). 이것은 속죄일이 지난지 5일만에 거행되는 행사로 깊은 반성과 슬픔을 지난 후 기쁨의 자리에 참예한다는 것은 매우 의미 심장한 것 입니다. 초막절 첫 날과 끝 날은 안식일로 지키며 거룩하고 성스러운 날로 지켜졌습니다. 이 절기의 7일 동안은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집을 떠나야 했습니다. 곧 여인이나 어린이들도 집을 떠나 울창한 나무, 특히 증려나무 가지로 엮어 만든 초막에서 지내야 했습니다(40-42절).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해야 했습니다(4절). 그들은 춤을 추고 하나님께 찬양 하는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사용하여 그 날의 즐거움을 표현했습니다. 일반 백성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중의 현자와 장로들도 성소의 들에서 그렇게 했습니다.

2. 초막절의 의의 본문 43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 이니라” 즉 광야에서 천막 생활을 했던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서 초막절을 지낸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시초는 애굽의 노예였습니다. 그들은 그 곳에서 심한 노역과 괴로움을 당하여야만 했습니다. 그 때의 상황을 성경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서 애굽을 다스리더니 그가 그 신민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갈까 하노라 하고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출 1:8-11)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출애굽 사건은 자유의 사건이요, 해방의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출애굽의 여정 중에도 함께 하셨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보호하시고 인도 하셨습니다. 초막절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데 그 근본적인 의의가 있는 것 입니다. 사람들은 망각을 잘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받을 때만 감사하지 시간이 지나면 그것에 대한 감사도 없고 잊혀지기 조차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복음서에서도 지적되고 있습니다. 눅 17:11-19에 고침받은 열 사람의 문둥병자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어느 날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다가 한 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때 문둥병자 열명이 예수님을 향해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였습니다. 이들의 간청을 들은 예수님께서 는 가서 제사장에게 나은 몸을 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열 명의 문둥병자들은 그 말씀대로 제사장에게 가다가 자신들이 나음을 입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기뻤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신 예수님에 대해 사례를 표시한 사람은 이방인 한 사람 뿐이었습니다. 열 명 중 한 사람만이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흡은 어디 있느냐” 신앙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데서 증진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는 사람은 신앙의 소멸을 경험하게 됩니다. 신앙이 깊은 사람일수록 어려운 일을 당할 때나, 좋은 일을 당할 때나 한결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게 됩니다. 초막절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회상 하면서 기뻐하는 과정이 초막절 절기 동안 계속 진행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에게 이러한 초막절이 있기를 바랍니다.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시고 기뻐하시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초막절의 영적 의미 초막절은 장막에 거하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 하고 감사하는 절기 입니다. 영적인 의민에서 볼 때 이 초막절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미 스가랴서 11장 16절에는 하나님의 예배가 이 초막절을 지킴으로써 이루어지리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영적인 의미에서 초막절은 무엇입니까 (1) 첫째, 그것은 우리가 살 곳은 이 세상이 아니고 오히려 이 세상과 단절하고 영원한 도성을 소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장막에 거함은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였습니다.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목표는 장막 자체가 아니라 가나안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기독교인의 궁극적 목표는 이 세상이 아니라 천국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장막과 같은 곳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을 마치 영원한 집인양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초막절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세상은 장막이며 언젠가는 가야할 곳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천국에 인도하기 위해 친히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다. 참으로 귀한 은혜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항상 마음속에 두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초막절을 지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였듯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항상 회상하면서 우리의 진정한 처소는 예수님께서 예비하신 천국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2) 둘째, 우리는 이러한 은혜를 기억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참으로 기뻐할 줄 알았던 사람입니다. 어떠한 환경이든지 그의 기쁨을 뺏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는 깊은 감옥 속에 갇혀서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우리를 기뻐하라고 권할 정도였습니다.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빌 3:1) 무엇이 이토록 바울을 기뻐하게 만들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항상 기억하였기 때문입니다.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 3:8). 그렇습니다. 진정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아는 자들은 기뻐해야 합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초막절은 속죄일이 있은 후 5일 후에 거행되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의 죄를 속하심을 입었다면 초막절은 기쁨절기일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우리의 죄를 값없이 사하신 은혜입니다. 참다운 속죄, 완전한 속죄를 주님께서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쁠 수 밖에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기쁨에 다 동참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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