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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하나님의 법궤를 모신 아비나답의 집은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아비나답은 그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히 구별하여 그를 중심으로 여호와를 섬겼기 때문입니다. 유대의 크고 작은 도시들이 많이 있고, 여호와를 섬긴자들도 많이 있었으나, 여호와의 축복을 받은 자는 오직 산에 있는 아비나답 집이었고, 이로 말미암아 그 후 20년간을 이스라엘 온 족속이 이 집에 있는 여호와를 사모하여 여호와의 축복에 동참케 되었습니다. 아비나답의 집은 여호와의 축복받은 교회이며 가정입니다. 이는 오늘도 역시 여호와를 진심으로 모시기만 하면 누구나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믿으면 살 것이요, 믿지 않으면 죽게 됩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엄격히 축복과 저주의 하나의 시금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1절에 “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궤를 옮겨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 놓고 그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히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더니 ” 라고 했습니다. 벧세메스 사람들은 하나님의 제를 잘못 모심으로 기럇여아림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궤를 보내였던 것입니다. 기럇여아림 사람들은 기쁨으로 하나님의 궤를 모셔 갔으며, 벧세메스 사람은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부끄러워 했습니다. 그들이 살륙 당한 것은 자의적인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마땅한 응보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기럇여아림 사람들은 하나님의 궤를 모실 때 참으로 귀한 손님을 환영하며 맞이하듯이 존경과 외경, 그리고 참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중하게 환대하는 가운데 모시고 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궤를 모실만한 합당한 장소를 준비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 하나님의 궤를 모실 공적 건물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궤를 아비나답의 집에 모셨는데 그 집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아마 그 성읍에서 제일 좋은 집이었을 것으로 예측되며, 그 집주인은 그 성읍에서 가장 경건하며, 하나님의 궤를 매우 사모하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벧세메스 사람들은 들판 위에 있는 돌 위에 하나님의 궤를 그대로 방치해 두었으며, 제사장의 성읍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자기 집에 그것을 모시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기럇여아림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평민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궤를 집안으로 모셨는데, 그 집에서 가장 좋은 방에 모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하나님의 궤를 안치할 곳을 찾아 내십니다. 기럇여아림사람들이 아비나답 집에 하나님의 궤를 모시고 아비나답의 아들 엘리아살을 성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습니다. 엘리아살은 기럇여아림 사람들 중에서 신앙이 깊고 경건한 젊은이며 동시에 그러한 최상의 일을 할만큼 열심이 있었던 사람일 것입니다. 엘리아살은 하나님의 법궤를 모시되 하나님의 법궤가 다시는 블레셋 사람들에게 빼앗기지 않도륵 지키는 깃 뿐만 아니라 호기심에 가득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법궤가 놓인 땅을 깨끗이 청소하고 늘 고상하게 꾸미는 일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궤를 모시는 법도의 원리에 벗어나는 일이었습니다. 엘리아살은 레위 족속, 더우기 아론의 후손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아살이 제사장의 성직을 평신도가 감당하게 됨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한고 있는 시대적 난점에 비추어 볼 때 능히 용서받을 수 있는 처사였습니다. 엘지아살은 기럇여아림과 제사장 성읍 벧세메스의 레위 족의 동의를 얻어 성직의 일을 맡도록 성별했으며, 하나님의 궤가 금방 포로에서 해방된 것과 같은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정식으로 엄숙한 가운데 모시기는 기대하기 어렵고 있는 형편에 따라서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예루살렘에 있어야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이스라엘에서 서구로, 서구에서 우리 나라에까지 옮겨왔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사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때까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세계 방방곡곡에 다니시며 옳겨갈 것입니다. 2절에 “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년 동안을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기럇여아림 성읍에 두는 것은 서글픈 일입니다. 다시 하나님의 성 실로에 모tu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실로는 아직 황량한 채로 있었습니다. 아니면 놉이나 기브온, 그것도 아니면 회당과 제단이 있는 다른 곳에 모시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하나님의 법궤를 모실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고 애국심에 불타는 사랑이 일어날 때까지는 그대로 있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의 궤는 20년 이상이라는 매우 긴 기간 동안 멀리 떨어지고 궁벽한 곳에 자리잡고 찾아오는 이도 없었고, 거치 무시된 상점의 성읍에 머물러 있었으며, 그 오랜 후 다윗이 옮겨가기까지의 오랜 기간 동안 하나님의 궤는 기럇여아림에 있었습니다. 2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궤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궤가 없는 제단에서 제사 지내는 것이 만족하지 못했고, 하나님의 특별하신 임재의 표시가 없는 가운데 그들은 날마다 드리는 속죄의 제사를 제 격식대로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스로의 처지를 생각해 보고 하나님을 찾아 헤메며 탄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무엘의 설교를 듣고 성령께서 그들의 마음을 감화해서 깨달은 것 같습니다. 이제 회개와 갱신의 경향이 이스라엘 온 백성들에게 나타났습니다. 참다운 회개와 회심은 하나님을 찾아 탄식하는 데서부터 시작됩기다.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우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계시며 우리가 계속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한 우리는 파멸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 가운데 다시 임하시게 하시지 않는 한 우리에게는 안식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궤를 소유하고 그것을 들여다 보거나, 그것을 자랑거리로 삼을 때보다 차라리 하나님의 궤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은혜를 찾아 찬미할 때가 더 좋은 때였습니다. 은혜의 방법이 너무 흔해서 사람들이 그것을 천시하는 것보다, 그것이 부족하여 사람들이 애써 찾아 헤매는 모습을 보는 것이 더 좋습니다. 이제 하나님 법제는 실로에서 기럇여아림 사가로 옮겨지고 이스라엘 지위는 떨어졌습니다. 이 때 한 사람의 영계의 사람 사무엘이 나타나 이스라엘을 지도한 결과 크게 부흥되었으니 오늘 우리 신앙의 부흥의 길이 무엇인가를 잠시 배우고자 합니다.

1. 여호와 사모 사람은 종교 열정이 식어질 때 그 때부터 생명은 시들고 신앙은 껍질 밖에 남지 않게 됩니다. 부부간에도 연정이 끊어질 때 이미 부부가 아니고, 친자간에 애정이 끊어질 때 부자는 벌써 형식 뿐입니다. 친구간에 우정이식어질 때 친구가 아닙니다. 정이라든지, 애정이라든지. 우정이라든지, 열정, 감정, 감격 등 고상한 정서가 식어져 버릴 때 이는 사회의 폐인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종교는 무엇으로 성립하느냐 신앙이란 결국 무엇이냐 하는 곧 하나님에 대한 애정, 사모, 앙모 그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애정, 사모, 앙모가 끊어질 때 힘과 신앙의 생명은 땅에 떨어지고 마는 것은 정한 이치입니다. 그리고 선인관계는 끊어지고 맙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모의 정이 없어질 때 교회는 의식과 형식만 있고, 사업이라는 것만 남고 생명은 죽고 맙니다. 따라서 영적 기분과 사랑과 열정과 희열과 화평은 다 없어지고 사막의 풀포기와 같이 돌 위에 가시나무와 같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하나님을 앙모하는 신앙 운동만이 신앙 부흥 운동입니다. 시42:1-2에 “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 라고 했고, 시 84:1-2에 “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었나이다 ” 고 하는 하나님에 대한 열정이 있어야 신앙은 부흥합니다.

2. 전심으로 주를 향할 것입니다. 계명의 제 1계명은 마음의 뜻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새 계명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성도가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갈멜산상에서 백성을 향하여 외친 말씀은 “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 서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참 신이여 든 그를 좇을 것이 아니냐 ” 고 하였습니다. 여러분께 한 순간에 그것도 빨리 왼손으로는 정사각형을, 그리고 오른손으로는 원을 그린다 하면 비록 어떤 재주있는 사람이라도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마음이 한 순간에 두 곳에 쓸 수 없고, 손은 아울러 움직일 수 없는 까닭입니다. 우리 성도가 전심으로 하나님에게 향하지 아니하고 세상과 하나님, 죄와 의, 사회와 교회 두 몫을 보려 하면 맛잃은 소금이 되고 말 것입니다. 교인이 교회 일에 전심치 아니하고, 신자가 신앙에 전심치 아니하며, 목사가 성역에 전심치 아니할 때 전혀 무의미한 자가 되고 맙니다. 오늘날에는 참 신자를 요구합니다. 이제 전심하여 하나님을 향하고자 하는 자의 주의할 사항이 하나 있으니 이것은 곧 자기를 죽이는 것입니다. 자기 볼 일을 다 보고 전심으로 주를 향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본문에 이르기를 “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의 우상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가운데서 끊어버리고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 고 하였습니다.

3. 회개 운동입니다.미스바 부흥운동은 회개 운동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물을 길어다가 여호와 앞에 부었습니다. 이것은 회개를 상징했던 것입니다. 물을 붓는 것 같이 우리의 마음을 여호와의 제단에 바쳐야 할 것입니다. 욜 2:12-13에 “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리하면 모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고 복을 주시겠다 ” 고 했습니다. 여호와 앞에 물을 붓는 것같이 마음을 붓고, 옷을 찢는 것 같이 마음을 찢어 우리의 죄악을 통회자복해야 합니다.

4. 집중 집회입니다. 미스바 집회는 집중 집회였습니다. 분산적이요 파멸적인었던 이스라엘민족을 사무엘이 미스바로 일시에 다 소집한 것입니다. 여호와를 중심하여 통일을 꾀하였습니다. 합심을 고취하였습니다. 분리 분산 공작은 사단의 공작입니다. 소의로써 대사와 대의를 망각하는 것은 소인의 처사입니다. 개인, 교회, 한 지방, 전 교회가 집중 운동, 일원주의로 나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는 형식론이 아니라 정신적 일치를 말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집중에는 대의 명분하에 아니되면 안되니, 대의 없는 곳에 집중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 그리스도의 구원, 교회의 신앙, 성직의 존엄, 성도의 의무 등 대의 명분하에 집중 단결하여 하나님의 교회로, 영광의 길로 나아가며 승리의 역에 도달케 하도록 서로 힘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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