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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 10계명 탐심에 대하여 (신 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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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계명은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입니다. 간음, 도적질, 불성실한 증언 등이 일어나게 된 것은 인간의 마음에 있습니다. 예수께서도 그것을 지적했습니다. 눅 6:45에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신명기에 깊이 간직된 통찰력을 발전시켰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외적으로만 선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적으로도 선하기를 바라십니다(마 5:21-48).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기 자신과 같이 이웃을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막 12:28-21, 롬 13:8-10).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윤리의, 중심인 사랑의 문제에 있어서 예수와 그리스도 교회는 다만 구약 성서를 본 딴 것 뿐입니다.

1. 마지막 계명은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입니다 이 말씀은 세상의 법보다 한걸음 앞서고 있는 것을 봅니다. 대개의 법전은 구체적인 행위에 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으로 끝내지 아니하시고 우리 마음 속에 생겨나는 탐심을 향해서 금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이 말은 이런 뜻이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을 감찰하고 계시는 분이 계시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이웃의 마음을, 인간의 마음을 감찰하십니다. 대하 16:9에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신다”고 했습니다. 자기에게 향하는 그 마음을 하나님은 보신다고 했습니다. 삼상 16:7에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했습니다. 또 대상 28:9에 “여호와께서는 뭇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사상을 아시나니” 라고 했고, 시 7:9에는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심장을 감찰하시나니”라고 했으며 렘 11:20에는 “하나님은 폐부와 심장을 살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보십니다. 하나님 앞에는 빛과 어두움이 일반입니다. 어떤 그 무엇으로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즉 사람이 하나님 앞에 외식으로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몰라도 하나님은 다 아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 마음속에 있는 악한 생각, 간음과 살인과 방탕과 음탕한 것을 다 아십니다. 어떤 청년이 주님에게 찾아와서 “선한 선생님이여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주님은 그 마음을 다 아시고 “계명을 지켰느냐”고 물으니 “다 지켰다”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또 말씀하시기를 “내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고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고 했습니다. 이 청년은 예수가 누구인지도 알았습니다. 영생이 얼마나 귀하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런데 탐심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비틀거리며 힘없는 발걸음으로 예수님께로부터 물러갔다”고 했습니다. 탐심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주님에게서 멀리하게 만듭니다.

2. 제 10계명은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의 대상이며 한 생명이 온 천하보다도 귀한 존재인 것을 확인시켜 주는 명령 입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사람의 값을 돈과 바꾸려는 풍조가 짙어집니다. “얼마나 된 사람인가”보다는 “얼마 받느냐”를 자랑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한 생명은 온 천하보다 더 귀하다 했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희생시켜 나를 구원시켜 주었습니다. 온 천하보다 온 우주보다 나의 생명을 사랑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사랑을 아십니까 이렇게 귀한 우리 존재가 이 세상의 몇 푼의 물질을 탐해서 내 일생을 다 망각하고 세상으로 향해 나가 산다면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성경은 탐심을 경계합니다. 아담이 탐심으로 선악과를 먹고 에덴에서 쫓겨났습니다. 사울 왕은 황소 몇 마리를 탐하다가 그의 왕관을 잃었습니다. 발람 선지자는 욕심을 부리다가 결국 선지자의 위대한 사명을 버리고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가룟 유다의 탐심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니 밸릭스 황제의 탐심은 사도 바울의 그 영광의 메시지를 듣고도 “나중에 내가 시간이 나면”이라고 복음듣기를 유보 했습니다. 그 탐심이 예수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만나는 길을 막아버린 것입니다. 어떤 분은 예수는 차차 믿겠노라고 늙어서 믿겠노라 하는 분이 있는데 이것도 탐심입니다. 지금 믿으면 손해날 것 같고 무엇인가 내게 있는 것을 빼앗기는 것 같으니까 지금은 내 마음대로 살다가 나이들어 천국문 가까울 때 예수 믿어 구원받고 칭찬받겠다는 탐심이 있기에 우리 신앙을 좀 막게 합니다.

3. 우리가 이 탐심의 죄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습니까 (1) 믿음으로 이깁니다. 요1서 5:4에 “하나님께로써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긴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이김은 이것인데 우리의 믿음이니라고 했습니다. 믿음이 탐심에서 이기게 합니다. 공중에 나는 새를 먹이시고 들에 피는 백합화를 입히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근심 걱정 다 맡기고 탐심을 물리치고 살아야겠습니다. (2) 세상의 무가치한 것을 무가치하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잠언은 말합니다.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이 없다는 말입니다. 돈으로 만족했다는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재물은 우리 눈만 즐기게 합니다. 탐심은 우리로 끝없는 갈증을 줍니다. 탐심으로 만족은 없는 것입니다. (3) 영적 일에 더 힘써야 합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나라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일에 더욱 힘쓸 때 물질에서 자유함을 받습니다. 엔두류 카네기는 돈을 열심히 벌었으나 훗날 그는 “나로 하여금 물질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는 많은 사립대학을 세우고 사회에 기여를 하고 하나님의 일에 크게 헌신하게 된 사람입니다. (4) 자족하는 정신입니다. 히 13:5에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라고 했고, 딤전 6:6-8에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이니라”고 했습니다.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에 큰 이익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데 내게 주신 이 물질을 참 만족하게 생각하는 비록 적지만 그것을 감사하게 생각할 때 올바른 신앙생활에 큰 유익이 됩니다. 사도 바울은 “풍부에 처할 줄도 알고 비천에 처할 줄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시 말하거니와 환경이나 소유나 여건에 의해서 우리의 행복이 지배받지 않은 특권이 있습니다. 이것은 성도만 누리는 영광입니다. 많은 부자들이나 많은 세도가들은 자기가 있을 때는 즐거우나 없을 때는 슬퍼하고 또 가진 것 때문에 더 큰 목마름 때문에 슬퍼하지만 우리 성도는 우리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않음을 알고 하나님을 기뻐하고 감사하지 않습니까 영광스러운 생각을 할 때마다 그 영광스러운 천국이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더욱 감사한 것은 천국 영광에 우리가 참석할 수 있다는 은혜에 부름받았다는 사실입니다. “탐심을 물리치라”는 계명을 기억하시며 “주여 나로 하여금 우리 하나님을 더욱 사랑케 하옵소서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케 하옵소서”라는 깊은 기도가 이 시간 우리 모두 심령에서 이루어지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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