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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마당만 밟지 말라 (사 01: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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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그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주신 사랑 의 경고입니다. 옛날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에게 예배 드리는 의식은 매우 성스럽고 엄격했고 장엄하고도 경건했습니다. 그러나 시일이 흘러가고 의식을 반복하석 수행하는 동안 이사야 시대에 와서는 예배의식이 형식에만 치우쳐서 참 예배 정신을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 예배 의식은 신본주의에서 인본주의로 전환하고 생명적 의식에서 형식적 의식으로 점점 속화되어 갔습니다. 그래서 그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저들의 형식적인 예배를 가증스럽게만 보셨으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는 고사하고, 반대로 하나님을 괴롭히고 아프게 하여 예배하는 자신들에게도 아무 유익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서 저들의 타락상과 예배의식이 가증함을 일일이 지적하여 회개를 촉구하면서 엄히 경고하신 말씀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구약 예배와 신약의 예배가 형식은 다르지만 예배의 정신은 동일합니다. 형식적으로 의식만 드려진다고 하면 아무리 많은 사람이 구름떼 같이 모 여서 예배의식이 다체롭고 장엄할지라도 결국은 성전 뜰만 랍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내 성전 뜰만 발지 말라“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 시간 함께 말씀을 상고하고자 합니다.

1. 성전만 헛되이 왔다 간다는 뜻입니다 성전에 오는 목적은 하나님에게 예배하려는 것인데 그 목적에 어그러지거나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돌아가게 되니 그것이 헛된 수고요 헛된 걸음이요 결국 마당만 밟고 돌아가는 격이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성전에 나오지만 습관적으로 오고, 흑은 자기 수양으로 설교나 들으러 오는 사람, 혹 사교적으로 무슨 대인관계에 목적을 두고 나오는 사람, 흑은 자기의 체면유지로 부득히 얼굴만 보이러 오는 사람, 또 는 자기 출세의 목적 달성을 위해 나오는 사람들이 허다합니다. 12절에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은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예배는 아무런 성의가 없고 신령한 교제와 은혜의 기쁨이 없습니다. 11절에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라고 탄식했고, 13절에 “헛된 제물”을 더 이상 가져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경배하려는 정신이 없는 예배는 곧 헛된 예배인 것입니다. 우리가 성전에 나오는 것도 귀하지만, 하나님이 받으시고 내가 큰 은혜를 받는 참된 예배를 드리는 것이 더욱 귀한 일입니다. 요 4:23-24에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예배는 먼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는 적어도 세 가지 마음을 가지고 드려야 하겠습니다. (1) 주님을 뵙고자 하는 마음으로 예배는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드리러 성전에 모이는 것입니다. 참으로 예배의 중요성을 모르는 자가 어찌 그리스도인이라 하겠습니까 우리는 정말 주를 뵙고자 하는 뜨거운 중심을 가지고 예배를 드려야 믿음도 생기고 축복도 임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2) 주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심령으로 행 10:33에 고넬료가 베드로 앞에서 “말씀하옵소서 내가 듣겠나이다” 라고 했듯이 우리는 주의 종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서 겸손히 들어야 하겠습니다. (3) 바치고자 하는 마음으로 롬 12:1에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라” 고 말씀하듯이 우리의 몸도 마음도 중심도 하나님께 드리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만 진정한 예배가 되는 줄 믿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하나님의 청지기 입니다. 그러므로 주 앞에서 받은 것을 잘 활용했다가 또한 받은 것을 주 앞에 계산해 드려야 합니다. 이렇게 예배는 주를 뵙고자 하는 마음, 주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마음, 바치고 싶은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 참 예배인 것이니 여러분은 하나님 앞 에 참 예배를 드려서 성전 마당만 밟고 가는 신자가 한 사람도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2. 성전을 더렵혔다는 뜻입니다 13절에 “본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 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고 했습니다. 그러면 성회와 더불어 악을 행한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1) 예배 시간을 이용하여 작당, 분쟁, 분멸시키는 것입니다. (2) 옛날 예루살렘 성전에서 매매하던 것처럼 교회를 자기의 이익으로 이용하여 장사 속으로 나오는 사람입니다. (3) 예배 시간을 이성 교제 시간으로 이용하고 예배당을 이성 교제 장소로 여긴다면 이 또한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일입니다. (4) 하나님께 예배한다는 것이 우상 섬기는 사람처럼 사람의 눈가림 만 하고 외식과 허위와 불순과 혼잡으로 예배드린다면 역시 성회와 더불어 악을 행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신성을 파괴하는 모든 사상과 행동은 다 성전을 더럽히는 것이 됩니다.

3. 회개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어찌하여 무수한 재물과 살진 짐승의 기름과 우양의 피를 기뻐하지 않는다(1:11)고 했으며, 하나님께서 왜 저들의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 성회로 모이는 것을 가중히 여기며 싫어한다(1:13-14)고 했으며, 하나님께서 어찌하여 저들이 기도하려고 손을 펼 때 눈을 가리우고 듣지 않겠다(1:15)고 하였겠습니까 그 이유는 저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1:15) 즉 범죄한 까닭이라고 했습니다. 1:16-l7에 “그러므로 너희는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라” 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회개치 않으면 어떤 예배든지, 어떤 예물이든지 하나님께서는 가납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 51:16에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고 했고, 잠 28:9에 “사람이 하나님의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 기도는 가증하니라” 고 하였으며, 시 66:18에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않으신다” 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전 뜰만 밟지 않으려면 먼저 회개하여야 합니다.

4. 성전을 위하여 충성과 봉사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성전에 나와 예배 드리는 자는 진심으로 자기가 하나님 앞에 죄인인줄 알아서 회개하는 마음으로 나의 속죄의 축복을 받으며 구원의 은총에 감격하여 하나님께 헌신과 봉사를 드리는 것이 참된 예배자의 태도인 것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 성전에 나왔다가 간 후에는 성전을 사모하고 사랑 는 마음도 없어져서 봉사할 생각도 안하니 결국 성전 뜰만 밟고 돌아가는 자 밖에는 되지 않는 것입니다. 성도가 은혜 받은대로 감사하며 봉사하는 곳이 바로 성전입니다. 교회는 봉사자로 이룩되어 나갑니다. 봉사자에게 오는 유익은 첫째, 하 나님을 기쁘게 합니다. 둘째, 교회가 부흥합니다. 셋째, 자신의 믿음이 향상되고 축복을 받습니다. 나그네와 같이 성전 뜰만 밟는 생활을 하지 말고 헌신하며 봉사하는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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