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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스라엘의 반란 (왕상 12: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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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범죄에 대한 징계로 하닷과 르손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며 독립운동을 펼쳤으나(왕상 11:14-25), 이스라엘의 국기를 뒤흔드는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신복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솔로몬을 대적함은 이스라엘에 대한 반역이었기에 이스라엘에 아주 심각한 타격을 주었던 것입니다. 솔로몬에게는 암몬 여인 나아만의 소생으로서 르호보암이 있었는데 독자였으므로 솔로몬이 죽자 자연스럽게 르호보암이 왕위에 올라갔습니다(왕상 11:43). 르호보암은 왕으로서 그의 조부 다윗이나 부친 솔로몬 보은도 매우 우매한 자였습니다. 르호보암은 노인(장로)들의 충언은 듣지 아니하고 오히려 소년들의 감언이설에 귀를 기울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르호보암은 이스라엘 열 지파의 반란에 구실을 만들어 주게 되었던 것입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은 배반하여 그 장막으로 돌아가고, 르호보암은 아도니람을 이스라엘에 보내어 회유하려 했으나 도리어 그가 참변을 당하게 되자 예루살렘으로 급히 도망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을 왕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1. 이스라엘의 배반 16절에 온 이스라엘은 르호보암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뇨 이새의 아들에게서 업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라 다윗이여 이제 너는 네 집이나 돌아보라” 고 했습니다. “이새의 아들에게서 업이 없도다”라는 말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뇨”와 같은 내용의 말로써 반복을 피하고자 한 대귀적 표현으로 이스라엘 열 지파의 반감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러한 말은 다윗에 대적할 때마다 사용되는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삼하 20:1). 이스라엘은 자기들에게 유익이 될 때에는 다윗을 찾으며, 반감이 있게 되었을 때에는 거침없이 배반하는 그러한 간사한 신앙을 가졌던 것입니다. 삼하 5:1-2에서 이스라엘은 다윗에게 “보소서 우리는 왕의 골육 이니이다 전일 곧 사울이 우리의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은 거스려 출입하게 한 자는 왕이시었고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입으로 인정하며 하나님까지 인정했다고 한 그 말을 번복하며 다윗과 우리가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배덕하는 자들의 사악함을 봅니다.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할지라” 라고 외쳤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해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라고 외치는 것을 봅니다. 다윗과의 단절은 하나님의 언약을 파기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거룩한 씨는 아브라함에서 다윗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며(마 1:1) 하나님은 다윗과 맺은 언약을 통하여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일시적인 고역을 참지 못하였고 여로보암의 충동질에 유혹되어 하나님의 언약에서 떠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된 것입니다.

2. 르호보암의 어리석음 르호보암은 왕이 되었으나 실로 왕이 될 자격이 없는 자였습니다. 그는 우매한 자였으며. 자신의 권위와 정권욕에만 사로잡힌 자였습니다. 장로들의 충고를 거절했으며 간사한 자들의 말은 청종하였던 것입니다. 결국 그는 강압정치를 강행하였던바 이스라엘로 하여금 반감을 품게 하였고 반란의 구실을 만들어 주었던 것입니다. 18절에 르호보암은 장막으로 돌아간 이스라엘 백성에게 아도니람을 보내어 돌에 맞아 죽게 합니다. 아도니람은 다윗 때부터 부역을 감당해 온 감독이었습니다. 즉, 아도니람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좋지 못한 관계에 있는 자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아도니람을 르호보암은 그의 강압적인 정책에 불만을 품고 반역한 백성에게 보낸 것은 그가 계속 자기의 뜻을 강제적으로도 해 보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아도니람은 돌에 맞아 죽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행위인 것입니다. 르호보암의 이런 어리석은 행위로 이스라엘은 다윗을 배반하여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운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범죄로 인한 징계고 이스라엘의 분열을 이루기 위해서 르호보암과 여로보암은 도구로 사용하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의 나라는 수에 있지 않음 이스라엘의 열 지파는 다윗의 집과 관계를 끊고 그의 장막으로 돌아가고 이제 다윗의 집을 좇는 자는 유다 지파뿐이었습니다. 21절에 보면 베냐민 지파도 유다 지파와 같은 쪽에 있게 되는 것을 봅니다. 다수의 지파가 다윗의 집을 버렸던 것입니다. 민주주의 제도 하에서 언뜻 보기에는 이것은 매우 합당한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왕의 강압 정책에 못 이겨 다수가 그 왕을 버리고 새로운 왕을 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뜻으로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경우는 매우 다른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신정국가이기 때문에 다윗이나 솔로몬은 형식적인 왕이었고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이는 하나님이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 곧 하나님의 나라였던 것입니다. 이들의 반역은 하나님 나라의 도전이며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수에 있지 않습니다. 다수의 지파가 분리하였지만, 하나님의 통치는 그 곳에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는 수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주권이 인정되고 하나님이 다스리는 곳에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반역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르호보암의 우매한 정치를 통해 솔로몬에게 내린 징계를 이루시며, 반면에 하나님과 맺었던 언약을 파기하는 자들에게는 여로보암을 통해 하나님을 떠나 자기의 소욕대로 사는 백성으로 남게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며, 다윗의 후손으로 인해 거룩한 씨가 계승하게 되는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친히 다스리시며 약속하신 언약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 죄 있는 자를 결코 죄 없다 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그러나 자기를 찾는 이에게 상 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찬양하며, 우리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돌리는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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