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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상 숭배에 대한 경고 (출 34: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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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돌비의 내용은 첫 돌비에 기록되었던 그대로를 기록하였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을 생략하고 있으며, 다만 10절에서 16절까지는 산발적으로 기술하고 있는 말씀 중에서 하나님께 관한 계율, 즉 제 1에서 제 4계명까지의 내용을 보여 줄 뿐입니다. 그것은 곧 가나안 토족들과 언약을 맺지 말라는 것이며 상종치 말며 혼인도 맺지 말라는 엄격한 규제를 가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가나안 원주민들, 즉 이방인과 언약을 맺지 말라하심은 저들은 이스라엘 백성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이방 민족들로서 다른 신을 섬기며 우상을 만들어 숭배하는 자들이며, 또 모든 신을 음란히 섬기는 자(음란은 곧 우상 숭배에 대한 명칭입니다. 그리고 우상 종교는 제사 후에 남녀가 춤을 추며 간음하는 것이 상례입니다)들인 만큼 상호 교류할 수 없는 이질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가나안 족은 인간 중심으로 사는 옛 성품을 대표하는 자들이라는 영적 해석을 내릴 수 있는 자들로 대표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언약을 주시면서 “너는 내가 오늘 명하는 것을 삼가 행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언약을 현대식 용어로 말하면 쌍무계약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능력으로 큰 이적을 행하셔서 가나안 족속들을 두렵게 하여 쫓아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하시는 것이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명령을 삼가 지키는 것이였습니다. 이 언약을 다른 말로 말씀드리면 선 보호, 후 순종이었습니다. 또는 선 은혜, 후 감사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은혜로 보호하고 구원하여 줄터이니, 너희들은 이 은혜를 감사하면서 순종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원리는 은혜 선행주의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사건에 선행하고 사람의 행동은 다 하나님의 은혜에 뒤따라 간다는 말씀입니다.

1. 질투하시는 하나님(14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가나안 땅의 우상 숭배하는 풍조와 합하지 말라”고 하시며 그 땅의 거민들과 언약을 맺지 말고, 우상의 단을 깨뜨리고 아세라 상을 찍으며 그들이 섬기는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가나안 족속의 뿔들을 너희의 아들들의 아내로 삼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14절에서 “나는 질투의 하나님이라”고 언급하신 사실에서 거룩한 백성을 향하신 여호와의 사랑의 심도를 능히 헤아려 볼 수 있습니다. 질투란 곧 사랑을 빼앗긴 자의 분노입니다. 우리들의 사랑의 대상이 타인의 침해를 받아 그 사랑이 분산되었을 때 의례히 질투의 감정을 발산케 됩니다. 여호와는 여기서 하나의 의인법적 표현으로 당신의 사랑의 대상인 성도들이 우상 예배와 다른 신을 섬길 때에 느끼는 그의 분노와 애탐을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특히 우리가 여기서 유의할 점은 율법이 선포되는 시내산은 애굽과 이스라엘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신자들의 위치란 앞을 보고 전진하면 약속의 땅 가나안 복지요 뒤로 돌아 후퇴하면 우상의 나라인 애굽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지점에서 애굽이냐, 가나안이냐, 율법이냐, 황금 우상이냐의 기로에 서서 결단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어느 길을 택할 것인지 신중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사랑과 엄격하신 공의 하나님의 사랑은 질투할만큼 크십니다. 에덴에서 쫓겨난 아담, 하와에게 구원의 길을 주셨습니다. 창 3:15에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 지은 아담과 하와를 에덴에서 내쫓았습니다. 그의 엄격성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노아와 그 식구들에게는 방주를 마련하여 구원해 주셨지만 악인들은 홍수로 멸망시켰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두 천사를 보내어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하기 직전에 롯의 가족을 구원하였으나 사악한 소돔에는 불유황을 내려 소멸시켰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의 뿐만 아니라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습니다(요 1:4). 그는 세리와 죄인들에게는 친구가 되었으나 스스로 의롭게 여기는 외식하는 자들에게는 적이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우선 예수님께서는 채찍 노끈을 만들어 아버지 집을 더럽히는 장사군들을 내쫓았습니다. 제자들을 축복하신 예수님은 무화과나무를 저주했습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 그의 축복을 설교했습니다만, 마태복음 23장에는 화에 대한 힐책과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엡 3:19)을 읽을 수 있는가하면, 또한 어린 양의 진노(계 6:16)도 읽을 수 있습니다. 본문 출 34장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그 복을 수천대까지 이르겠으나 하나님의 계명을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자손 3대, 4대까지 저주하리라 했습니다.

3. 하나님의 선민의 의무 12절에 “너는 스스로 삼가 네가 들어가는 땅의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라 그들이 너희 중에 올무가 될까 하노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성별의 요구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마귀의 자손이 멍에를 같이 할 수 없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출 34:13에 “너희는 도리어 그들의 단들을 헐고 그들의 주상을 깨뜨리고” 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불륜이나 음주에 대항하는 운동에 참여하여 사회를 개선하고 세상을 개선하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생활의 본을 보여주어 사회를 하나님 나라로 만드는데 앞장서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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