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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갑절의 영감을 주옵소서 (왕하 02: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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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적으로 볼 때 세례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물 세례와 불 세례 또는 성령 세례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두 가지 세례를 다 받는 것이 좋습니다. 롬 8:9에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니라”고 하였습니다. 고전 12:3에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주의 영이 나를 거듭나게 하시고 또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기적의 사람, 엘리야가 승천하기 전에 그의 제자였던 엘리사는 스승에게 갑절의 영감을 구한 것 같이 오늘의 우리에게도 갑절의 영감이 요구됩니다.

1. 엘리사는 왜 영감이 갑절이나 필요했습니까 (1) 엘리사 때는 엘리야 선지 시대보다 이스라엘 땅에 죄악이 갑절이나 관영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보다 더 위대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 야망이나 영웅심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아합과 이세벨의 정권이 부패하였고, 그의 아들 아하시야 왕 시대는 더욱 부패하였으며 여호람 왕 시대는 그 보다 더욱 더 부패하였기 때문에 꼭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그 부패한 것들을 신앙으로 개혁하고 재건하려고 해도 인간의 힘 가지고는 할 수 없었으며, 오로지 하늘에서 주시는 능력 즉 갑절의 영감을 받기 전에는 밭갈던 농부인 엘리사가 그런 일을 감당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엘리사는 사회적으로 무질서한 시대에 살았습니다. 폭군 아합은 죽고 아하시야 왕과 여호람이 이스라엘 왕이 되었을 때입니다. 왕을 비롯한 백성의 모든 지도자들이 우상 숭배에 앞장섰고, 백성들은 정치적 경계적으로 무질서한 사회 속에서 살았습니다. 이런 때에 하나님을 바로 섬기려는 사람들은 많은 위협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1) 어두움은 빚을 미워하고, 2) 불신앙의 사람은 신앙의 사람을 박해하며, 3) 우상 숭배 자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합니다. 요 3:19에 “빚이 세상에 왔으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빚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빚을 미워하여 빚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좇는 자는 빚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앞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죄악의 세력을 주먹으로 이길 수 없습니다. 어두움의 세력도 창검으로는 물리치지 못합니다. 악령의 세력을 인간의 수단 방법으로 정복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이길 수 있습니다. 갑절의 영감이 있어야 합니다. 슥 4:6에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죄악을 이기며 날마다 세상을 이기려면 성령님의 역사가 끊임없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편지할 때 세월이 악하다고 하면서 엡 5:18에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2) 앞으로 해야 할 일이 갑절이나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바알과 아세라의 우상 종교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여호와의 능력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흉년과 기근과 전쟁의 모든 원인을 하나님의 축복의 동기로 알고 종교개혁을 단행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또 선지 학교를 설립하여 많은 주의 일군을 양성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엘리사는 해야 할 일이 갑절이나 많았던 것입니다. 이같이 엘리사처럼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 시대 사람들에게 1) 하나님을 보여줄 사명이 있습니다. 2) 진리를 사수하고 또 전락할 사명이 있었습니다. 3) 불의를 파하고 정의를 부르짖을 사명이 있습니다. 4) 도탄 중에 있는 자기 백성들에게 새 소망의 떡을 주는 사명이 있습니다. 엘리사는 많은 영혼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해야 할 사명이 있었습니다. 그는 선지자 엘리야의 과업을 이어받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갈 사명을 자각했던 것입니다. 엘리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있어서 신앙적인 인재 양성의 필요성도 일찍 자각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가 가진 “갑절의 영감”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영감없이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성령의 역사없이 죄악을 이기지 못하며 사단을 이길 수 없습니다. 내가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1) 그리스도의 빚을 발할 수가 있습니다. 2) 진리의 역군이 될 수 있습니다. 3) 내가 받은 사명을 기쁨으로 수행할 수 있습니다. 4) 내가 갑절의 영감을 받아야 의에 살고 십자가의 도가 생명의 도임을 밝힐 수 있습니다. (3) 인간은 다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마음을 세 가지 방향으로 나누어 생각합니다. 1) 지적인 것과 2) 감정적인 것과 3) 의지적인 것이 그것입니다. 여기서 문제되는 것이 균형인데 이런 균형을 잘 맞춰서 사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지적 방면으로, 또 어떤 사람은 감정적인 방면으로, 또 어떤 사람은 의지적인 방면으로만 치우쳐 살면서도 자기 자신이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어져 있는 것은 모르고 완전한 줄로 생각하는데 문제가 생기고 시비가 있는 것입니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 세상에 완전한 인간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모세도 감정을 억제하지 못했고, 엘리야도 죽기를 간구한 때가 있었으며, 요나도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도망을 갔던 비겁한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불완전하고 연약한 인간일지라도 일단 하늘의 은사인 성령을 충만히 받을 때 완벽한 성도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연약하고 무식한 농부인 엘리사가 성령을 충만히 받았을 때 왕도 세우고 선지 학교의 교장일도 보고 여호와의 이적과 기사를 성경상 예수 이외에 가장 많이 행했던 것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엘리사가 나이 90세가 되어 세상을 떠나게 되었을 때 요아스 왕이 내려와서 얼굴에 눈물을 흘리면서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하며 울었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엘리사는 온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을 합친 것 이상의 능력을 가진 종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는 원수에게서 나라를 보호할 수 있는 국방력을 가지고 계셨던 분이었습니다. 그가 생존해 있는 동안 모압의 대군이나 아람 왕 벤하닷이나 사방의 민족들이 두려워했을 정도로 엘리사는 엘리야의 영감을 두 몫이나 요구하여 그대로 받았으며 또한 두 몫의 일을 그의 평생토록 했습니다.

2. 어떻게 해서 갑절의 영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1) 최선의 것을 구했습니다. 1) 자신의 부귀와 영화를 구하지 아니하고 갑절의 영감을 구했습니다. 2) 엘리사는 사명 완수에 필요적절한 것을 구했습니다. 3) 하나님 영광,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위주로 구했습니다. 4) 믿음으로 구했습니다. 5)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했습니다. 엘리사는 바로 구했기 때문에 받은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눅 11:9-13에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너희 중에 아비된 자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눅 12:32에 “우리 하나님은 그의 나라도 우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신다”고 했습니다. 롬 8:32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은사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시 81:10에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크게 구하면 크게 받고, 작게 구하면 작게 받고, 구함이 없으면 받을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신령한 은사마저 다 빼앗깁니다. 한나는 아들을 구해서 받았고 솔로몬은 지혜를 구하고 받았습니다. 에스더는 아하스에로 왕에게 민족을 구하였는데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를 가지고 결단적인 기도를 드린 바 그대로 다 되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더 좋은 것을 구했으니 갑절의 영감을 구하였으므로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2) 믿고 순종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약속하기를 “나를 네게서 취하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려니와 그렇지 않으면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엘리사는 이 말씀을 깊이 명심했습니다. 얼마 후 홀연히 엘리야 선생이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는데 보니 엘리야의 주위에는 불수레와 불말이 있었습니다. 엘리사는 당황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스승의 말씀을 명심하고 끝까지 승천하는 엘리야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인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소리치면서 엘리야만을 쳐다보았습니다. 이 때 능력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에게 순종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십니다(행 5:32). (3) 성령의 두루마기를 평생토록 소중히 간수했습니다. 성경 말씀에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은혜를 받지 못하였다는 뜻이 아니고, 받긴 받았는데 그것을 잘 간직하지 못하고 받은대로 다 쏟아버려 오래 지니지를 못한다는 뜻입니다. 성경 중에는 처음에는 성령으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육신으로 끝낸 인물들이 적지 않습니다. 사울 왕도 처음에는 성령의 감동을 받았고 그래서 예언까지 했으며 “사울도 선지자냐”고 하는 속담까지 생겼으나 그 성령의 감동을 끝까지 지키지 못하므로 결국에는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신약의 가룟 유다도 처음에 주님을 따를 때는 진실하고 지혜가 있고 남보다 뛰어난 두뇌로 회계일까지 맡아봤으나 그가 나중에 돈에 탐욕이 생기고 공금을 사사로이 쓰면서 여러가지 물질의 죄를 지었고 결국에는 주님을 파는 그런 극단의 타락을 했던 것입니다. 또한 데마도 주님의 종들과 복음을 전파할 때는 굉장히 열심이 있었으나 그도 나중에는 바울을 떠나 세상으로 나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성령으로 시작해서 성령으로 끝마친 훌륭한 믿음의 발자취를 남긴 분이었습니다. 1) 엡 4:30에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2) 행 5:3에 “성령을 속이지 말라” 3) 살전 5:19에 “성령을 소멸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의 은혜를 지속하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마귀가 우리를 약하게 만드는 힘보다도 성령님께서 우리를 강하게 만드시는 힘이 훨씬 더 강하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예배에 참 석하시는 여러 성도님들에게 옛 선지 엘리사에게 임한 갑절의 영감이 충만히 내리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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