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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브라함의 실수 (창 2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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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아브라함이 팔레스틴의 남방 그랄에 이주하였을 때 전에 애굽에 내려갔을 때처럼(12장) 자기의 아내를 누이라고 인간에게 속인고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라를 취하려다가(1-2절) 하나님의 경고를 받고 사라를 돌려 보낸 기록입니다. 아브라함은 헤브론 마므레 상수리 숲 자기 장막에서 조용히 약속의 한해를 “이삭을 낳겠다” 하고 기다리고 있었더라면 좋을 뻔 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참고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살고 있는 가나안 땅은 하나님으로부터 약속받은 땅이요, 축복의 땅이었습니다. 거기서 그는 이미 20여년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과 교통하던 땅을 등지고 남으로 내려가 그랄이라는 이방 땅에 거처를 잡았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 앞에서와 인간들 앞에서 아브라함은 또 실수를 했습니다.

1. 아브라함의 실수

(1) 첫째, 인내치 못해서였습니다. 창 15-16장을 읽어 보면 15장에서 분명히 후사의 허락을 받았는데, 그는 16장에서 보면 하갈을 취하여 후사를 얻겠다는 인위의 방도를 취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기 방법대로 행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실로 신앙의 성과를 보기까지는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2) 둘째, 이방에 내려간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내려간 그랄은 당시 블레셋 나라의 수도였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땅이 아니었습니다. 이방 땅에 간 이들은 다 무수한 고생을 했습니다. 롯의 시어머니인 나오미, 대사사인 삼손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을 멀리 떠난 사람들은 항상 어려움을 겪으며 고생을 하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자신의 생각대로 하나님을 멀리 떠나서는 안되고 항상 주 안에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3) 세째, 사람을 두려워한 것입니다(2-11). 아브라함이 이런 거짓말을 하게 된 것은 사람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보다 더 사람을 두려워함은 온갖 실패의 원인이 됩니다. 그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인 것은 사람이 두려워서였습니다. 2절에 “그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음으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보내어 사라를 취하였더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그랄 왕 “아비멜렉”은 “왕은 나의 아버지”, 또는 “왕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아비멜렉은 방랑의 유목생활을 청산한 후 그랄에 살고 있던 원주민을 몰아내고 그 곳을 보금자리로 하여 전쟁을 좋아하는 왕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을 두려워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항상 그와 동행하신다는 것을 잊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 사라를 지켜주시는 하나님을 망각했을 때 그는 용기를 상실했습니다. 아브라함은 30년 전 애굽으로 내려갔을 때 했던 거짓 술책을 재연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일지라도 순간적으로 심령의 눈이 어두워질 때 그 영혼이 방황하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이 하나님을 떠날 때 곧 실수가 따랐습니다. 썩은 채 버려둔 폐수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온 가족의 건강을 해치는 법입니다. 회개하지 않은 채 묻혀 둔 죄악은 모름지기 우리들의 신앙생활에서 기쁨과 만족과 감사를 다 앗아가고 슬픔과 고통과 실수만을 안겨줍니다. 창세기에 자기 아내를 누이라 한 사건이 세 번 나옵니다. 1) 아브라함이 애급에 내려잤을 때(창 12:13). 2) 아브라함이 그랄에 우거할 때(창 20:2). 3) 이삭이 그랄에 거하였을 때(창 26:7). 아브라함의 실수는 그의 아들 이삭에게까지 물려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2절에 “또 그는 실로 나의 이복 누이로서 내 처가 되었음이라”고 한 기사를 보니 사라는 아브라함의 이복 누이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금 사라는 그의 아내입니다. 그는 남편으로서 아내의 정조를 보호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하거늘 아내를 보호하지 아니했던 것입니다. 사라는 이복 누이이지만 이런 구실로 아내의 안전을 포기했다면 비겁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닙니다. 말을 하다가 보면 본래 목적과 동기에서 벗어날 때 있습니다. 이것은 일견 거짓말로 간주되나 실제로는 거짓말이 아닙니다. 반면 아브라함의 경우 남을 오판하도록 하기 위해 사실의 일면을 숨긴다는 것은 고의적 범죄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사람을 두려워 한 아브라함은 씻을 수 없는 실수를 한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을 두려워하면 반드시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생명을 보존코자 한 거짓말로 자기 아내 사라를 영영히 아비멜렉에게 빼앗길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2.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아비멜렉은 꿈 속에서 하나님의 경고를 들었습니다. 3절에 “네가 취한 여인을 인하여 네가 죽으리니 그가 남의 아내임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17절 말씀에 보니 그랄 왕과 그의 아내와 여종들에게 질병이 내린듯 합니다. 아비멜렉은 사라를 데려갔으나 그를 가까이 하지 않지 않았습니다. 가까이 하기 전에 하나님은 그 일을 방지하신 것입니다. 아비멜렉이 결백하고 의로워서 사라의 순결이 보종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에게 질병을 주어서 범죄를 방피했던 것 뿐입니다. 7절에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돌려 보내지 않으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정녕 죽으리라”고 했습니다. “아내를 돌려보내라”하신 말씀은 “본래되로 회복시켜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친구 아브라함은 큰 실수를 저질러 놓았으나 하나님은 아비멜렉에게 아브라함은 그 신분이 높다는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실패는 이중적이었습니다. 개인적 불신앙으로 인한 실수요, 이교도들 앞에서 망신이었으나 하나님은 이를 통해 은혜와 자비를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선지자들은 끝까지 책임지고 보호하시는 분임을 나타낸 것입니다. 미리암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모세를 비방할 때 하나님은 민 12:1-10에 “모세는 지면에 모든 사람보다 온유하다”고 변호하시고, 미리암에게는 저주의 문둥병을 앓게 하셨습니다. 대하 26:16-23에 웃시야 왕이 교만하여 성전에서 분향하려 들었습니다. 그 때 제사장 사가랴가 80명의 제사장들을 데리고 와서 “왕이여 범죄하였으니 여호와께 영광을 얻지 못함이라”고 제지했습니다. 그런데 웃시야 왕은 이에 대하여 제사장 앞에서 노를 발하다가 문둥병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언제든지 자기 선지자 편에 서시고 자기가 보낸 사자를 보호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기 선지자의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미리암을 치료하셨고, 욥의 기도를 들으시고 세 친구를 치료해 주셨으며,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으시고 아비멜렉과 그 식구들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자기의 사람을 인도하고 보호하시는 분이심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3.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후대했습니다

아비멜렉은 꿈 속에서 하나님의 책망을 듣고 아침에 일어나 아브라함을 책망했습니다. 9절에 “네가 어찌하여 나와 내 나라로 큰 죄에 빠질 뻔하게 하였느냐 네가 합당치 않은 일을 행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아비벨렉은 자신은 무죄하고 모든 허물의 책임은 아브라함에게 있다고 돌렷습니다. 하나님의 존귀한 선지자가 이방 왕 앞에서 이런 문책과 힐문을 당했으니 수치며 추태였습니다. 책임 추궁을 당연히 받을만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가 이방인에게 책망을 받는 것과 같이 오늘 날 하나님의 자녀들이 불신자들에게 부끄러운 질책을 당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비멜렉은 사라를 아브라함에게 돌려보냈습니다. 그리고 풍부한 선물로 후대했습니다. 아비멜렉은 명예훼손에 대한 보상을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선지자에게 바칠 도리를 다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다 더 사람을 두려워하게 되면 항상 실수를 하고 죄를 범하기 쉽습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항상 하나님 앞에 서서 경외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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