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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로뎅이 입술을 깨물며 극복한 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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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댕이 프랑스의 대조각가 되기까지는 비상한 인내와 노력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로댕은 너무 가난한 월급쟁이 가정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처음에는 본격적인 미술학교에 갈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노력으로 미술학교 입학시험을 보았지만 세 번 다 보기좋게 낙제하고 말았다. 거기에는 까닭이 있었는데 그것은 로댕이 생각하는 조각과 미술학교 선생들이 생각하는 조각에 대한 주장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었다. 로댕은 참된 조각이란 자기의 정신이 그 조각 속에 들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선생들은 그저 겉모양만 아름답게 꾸미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로댕은 낙제했다고 실망하지 않았다. 도리어 마음을 더 단단히 먹고 입술을 깨물며 결심을 더 굳게 한 후 꾸준히 노력했다. 결국 1875년 그의 나이 36세 때 그 유명한 ‘청동시대’라는 작품으로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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