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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모세의 마지막 축복 (신 33: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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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성서에는 집안이나 공동체의 어른이 죽을 때 마지막 축복을 유언으로 남기는 예가 있습니다. 이삭이 그러했고(창 27장), 야곱이 그러했으며(창 49장) 또 다윗도 그러했습니다(삼하 21:1-7). 모세가 죽기 전 이스라엘 여러 지파에게 마지막 유언으로 남기는 축복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의 문맥으로 보았을 때 요셉 족이 우세하고 단 족은 북쪽으로 이주했으며 시므온 족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또 부족에 따라 그 내용이 길고 짧으며 또 문학적인 형태와 종교적인 내용도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아 부족 동맹시대 말기나 왕정 초기에 제의 공동체에서 여러 부족이 행진할 때 사용되던 제의적인 문구들이 단편적으로 수집된 것이 신명기 사가에 의해 이 자리에 삽입된 것이라고 봅니다. 순서는 요단 동편 르우벤 족으로부터 시작하여 지형적인 위치에 따라 시계 반대 방향의 순서를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고대 근동 사회에 있어서 부족의 족장이나 가장이 운명직전에 남긴 축복은 철회할 수 없는 유언으로 남았습니다. 그것은 이삭이 야곱에게 준 축복(창 27장)으로 보아 알 수 있습니다. 부족이나 가문의 지도권은 이처럼 구두 축복에 의해 계승되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모세의 축복은 참으로 의미있는 축복이었습니다. 모세의 축복은 그 구조상 세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즉 서론(2-5절)과 축복(6-25절)과 결론(26-29절)부분입니다. 서론에서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타나신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스런 자기 계시와,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신 일 그리고 그가 이스라엘 모든 족속을 지배하시는 왕이 되심을 제시합니다. 서론 부분의 히브리어 원문이 정확히 보존되지 못했기 때문에 여러 귀절을 정확히 번역할 수가 없습니다. “세일”은 가나안의 남쪽 에돔의 영역이요 “바란”은 또한 “바란 광야”라고도 불리워집니다(민 10:12). 가데스바네아는 그 지역 안에 있거나 그 가까이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산들과 연류되고 자연현상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은 이스라엘 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점입니다(삿 5:4-5, 시 18:7-15, 68:7-9, 합 3:3-15). 그를 옹위하고 있는 일반 성도는 그의 목적을 위한 도구로 생각된 것 같습니다. 이 표현은 천사들을 통해 율법이 주어졌다는(행 7:53, 갈 3:19, 히 2:2) 유대교 신앙에서 생긴 것이었습니다. 5절의 여수룬(Jeahurun)이란 단어는 이스라엘에 대한 시적인 호칭이요 그것은 곧게 선 자(upright one)이라는 뜻입니다. 33장 1절은 구약 성경에서 예언자에게 사용하는 호칭인 “하나님의 사람”(수 14:9)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축복은 그 자체로 효력이 있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2-5절은 모세의 축복에 대한 서론 부분으로서 여호와께서 왕이 되어 시내산에 강림하심을 찬미하고 있습니다. 이 시는 여호와가 그 위엄 가운데 나타나실 때 원수들을 물리치시고 그의 백성들의 왕이 되는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가 시내산에서 천군 천사의 호위를 받으며 이스라엘을 돕기 위하여 행군해 온다는 것은 드보라의 노래(삿 5:4-5)와 하박국의 노래(합 3:3)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의 기원과 그들의 모든 우월성의 시초는 시내산에서 나타나신 하나님에게 돌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떠오르는 태양과 같이 영광을 나타내셨으며 모세를 통하여 영구한 유업으로 율법을 내리셨고, 사랑으로써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으며 그들의 왕이 되실 것을 계약하셨습니다. 모세가 축복하는 순서는 야곱의 아들들의 연령의 순서도 아니며 광야에서의 지파들의 장막의 위치의 순서도 아니요 또한 언약의 땅을 분배받은 순서도 아닙니다. 어쨌든 각 지파의 예언된 역사와 현실화 될 역사를 서로 비교하여 말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6절에 “르우벤은 살고 죽지 아니하고 그 인수가 적지 않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우선 야곱의 장자 르우벤에 대하여 말합니다. 그는 근친상간의 죄로 장자의 상속권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그의 후손들은 그 위치를 보존하게 될 것이라 합니다. 요단 동편에 위치한 르우벤 족은 계속적인 압몬 족의 침입으로 존폐의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민 26장의 인구 조사에서는 그 수가 적지 않았고 또 야곱의 장남으로 한 때는 부족의 지도적 역활을 했지만(창 49장) 역사적으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부족으로 남게 됩니다. 모세의 축복에는 시므온 족에 관한 언급이 없습니다. 이 지파는 그 시가 쓰여질 때 이미 유다에 흡수되었기 때문에 그냥 지나친 것입니다. 야곱의 예언대로 이스라엘 온 지역에 흩어진 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유다 족에 관해서는 싸워서 이기기를 바란다는 기원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유다 족이 중앙 성소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유다도 원수들에게 공격을 받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유다는 충성된 지파로서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있는 지파이므로 전쟁에 승리하여 평안히 돌아오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레위를 위한 축복 기도에는 둠밈과 우림이 경건한 아론 또는 온 이스라엘 지파의 대표인 모세와 영원히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대 제사장의 흉패에 달았던 이 신비한 둠밈과 우림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한 기구로 알았습니다. 레위 지파에게 이와 같은 특권이 허락된 것은 맛사와 므리바에서 당한 시련에서도 충성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을 반역하였고 모세와 아론까지도 실수하여 넘어졌던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그들의 가장 친근한 혈연까지도 하나님의 명에 따라 희생하는데까지 주께 헌신하였기 때문입니다(출 32:26-29). 그래서 레위 지파는 그 민족을 가르치는 일과 주님께 희생의 제물을 드리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받으실 것이며 또한 그들은 모든 원수에게서 구출 될 것이라 했습니다. 12절에 베냐민은 야곱의 사랑하는 아들이었으니 그 지파는 역시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를 받으며 안전하게 살 것이라고 합니다. 베냐민을 가리켜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라고 했습니다. 이같은 표현은 어린 아이가 아버지의 어깨 위에 기대앉아 아버지의 총애와 보호를 받은 것을 말하는데 이것은 예루살렘 성소가 베냐민 지파안에 속해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베냐민은 원래 북쪽 지파들과 가까왔으나 나중에는 남쪽 유다 지파의 압력으로 유다 지파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13-17절에 요셉 지파의 축복이 있습니다. 요셉에게 내린 축복이 가장 깁니다. 요셉이라는 이름은 그의 두 아들인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후예인 지파에게 흔히 쓰여집니다. 요셉에 대한 축복은 곡식이 풍부히 나는 땅과 이슬과 단비의 혜택과 감람나무와 포도나무가 무성함을 빌었습니다. 이 훌륭한 상속은 불붙는 가시나무 숲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신 그 분과 형제들에게서 팔리운 요셉을 높이시던 분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이 지파는 온 세상의 무서운 민족들을 뒤집어 엎을 능력을 가질 것입니다. 곧 이들은 “에브라임의 만민이요 므낫세의 천천”입니다. 즉 요셉의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장황하고 아낌없는 축복 가운데 “그 형제 중 구별한 자”라는 칭호를 받았습니다. 이 지파가 받은 축복의 특징은 경제적 번영과 군사적 힘이었습니다. 그들은 아마 이 시가 쓰여지던 때 가장 번성하였던 것 같습니다. 요셉은 형제 중 “머리”이며 하는 이 축복은 요셉 지파의 농경적인 풍요와 군사적 우월성을 노래하며 요셉을 가리켜 “구별한 자”라고 부른 것도 히브리어로는 “나실인”이라는 말로써 그 형제 중 특별히 뛰어난 사람임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같은 표현은 아마도 요셉 부족의 정치적인 우월성 때문인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요셉을 가리켜 숫송아지라고 한 표현은 요셉 지파에게 속한 벧엘 성소에서 지켜진 송아지 숭배를 가타내는 것이라고 봅니다. 황소는 가나안의 풍요의 신 엘의 상상이며 첫 수송아지는 가장 생식력이 강한 짐승이라는 뜻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가나안의 신화적인 이미지가 여호와 종교와 혼합되어 사용하고 있음을 봅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언급된 것은 레위 지파가 탈락된 다음 이스라엘 부족 공동체를 열 두개로 지속시키기 위해 요셉 지파를 둘로 나누게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북왕국의 중요한 지파를 형성합니다. 18-19절에 스불론과 잇사갈은 나가서 일하거나 집에서 쉬거나 언제나 기뻐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각 민족을 여호와의 성산으로 불러다가 주님께 합당한 아름다운 제사를 드릴 것이며 바다와 땅의 보화가 다 그들의 것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스불론과 잇사갈을 하나로 묶어서 취급하고 있습니다. 스불론은 페니시아 해변에 정착하여 바다 무역의 길을 트고 잇사갈은 에스드랜 골짜기에 정착하면서 가나안 족의 억압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두 부족은 다불산에서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았습니다. 20-21절에 갓 지파는 자기들을 광대케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리라 했습니다. 이 호전적인 지파는 영악하고 힘센 암사자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갓은 점령지의 일부를 제일 먼저 차지할 것이며 서부 판도를 점령할 때에 앞장을 서서 전력하여 약속에 충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이들은 이스라엘 다른 지파들과 협조하여 하나님께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요구하시는 바를 모두 이루게 될 것입니다. 22절에 단 지파 또한 사자로 비유하였는데 곧 굴 속에서 뛰어나와 먹이를 잡는 어린 사자라고 하였습니다. 단 지파는 북쪽으로 이주하여 바산 지역에 정착하였습니다. 단은 갈릴리 지역에 정착한 북쪽 지파입니다. 단과 납달리와 아셀 부족이 모두 이 지역에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23절에 납달리는 번영과 주의 은총을 약속받았습니다. 그는 서쪽 바다편과 남쪽편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의 판도는 바다에 접하지는 않았지만 바다의 풍부함과 남방의 풍성한 열매의 혜택을 받게 됩니다. 24-25절에 “네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아셀은 자손이 번성할 것이며 형제들에게 귀염을 받고 그 땅은 감람나무가 풍부할 것입니다. 그 요새의 견고함은 철과 구리 같으며 그 능력과 안전함이 한평생 계속될 것입니다. 아셀은 부유하고 힘있는 지파로 알려졌습니다. 그들이 정착하는 갈릴리는 올리브 나무가 많았고 북쪽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늘 방어적인 태세를 갖추어야 하며, 적의 공격에 대비하여 늘 힘을 확보해 둘 필요가 있었습니다. 26-29절 말씀은 결론으로 능력 많으신 하나님은 언제나 민활하게 이스라엘 백성을 돌보아 주신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돌보심은 하나님이 직접 가나안 땅의 주민들을 패배시키신 일과 또 그 땅에서 내신 산출과 그의 백성을 안전케 하시고 보호해 주신 일 가운데서 증명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수레를 타고 하늘을 날으시는 분으로 찬양하고 있습니다. 결론부의 찬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수룬이 이스라엘의 대적들을 물리쳐서 약속의 땅에 거하게 함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28절에 “곡식과 포도주와 이슬”은 전형적인 축복의 용어(창 27:27) 이며 땅의 풍요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29절의 “높은 곳”은 “등”으로 고쳐 저어야 하며 따라서 이스라엘은 대적의 등을 짓밟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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